‘아테네 역병’에서 코로나19를 성찰하다…“역병의 진정한 치료제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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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역병’에서 코로나19를 성찰하다…“역병의 진정한 치료제는 정치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1.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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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아테네 팬데믹: 역병은 어떤 정치를 요구하는가 | 안재원 지음 | 이른비 | 180쪽

이 책은 기원전 430년에 발생한 ‘아테네 역병’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를 인문학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성찰해본 것이다. 저자는 ‘역병과 정치’의 관점에서 그리스 고전들을 새롭게 읽어낸다. 투키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소포클레스(『오이디푸스 왕』), 에우리피데스(『미친 헤라클레스』), 플라톤(『국가』), 호메로스(『일리아스』)와 그들의 대표 작품이다.

그리스 고전기 인문학자들은 역병이 초래한 혼란의 사회상을 해부했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와 새로운 정의관을 제시하려 고민했으며, 나아가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며 더 나은 세상을 열고자 했다. 역병은 자연 질병인 동시에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 질병이다. 공동체의 문제라는 점에서 통치자의 리더십이 중요하고 정치적 결정과 해법이 요청된다.

스핑크스로 상징되는 자연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고, 인간은 거기에 답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21세기의 스핑크스인 코로나가 지금 다시 묻고 있다. 우리의 답은 언제나 똑같다. “그것은 인간이다.” 호메로스가 ‘벌거벗은 인간’을, 소포클레스가 ‘나’를, 플라톤이 내면의 ‘영혼’을 발견하였다면, 지금 우리가 코로나 덕분에 발견한 것은 국경 너머로 생존 조건과 생활 공간을 확장한 ‘인류’일 것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1년이다. 백신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팬데믹은 3차 유행으로 접어들면서 더욱 위세를 떨치고 있다. 코로나가 사회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친 한해, 이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각종 보고가 넘쳐났다. 빚어낸 사회 현상의 단면, 달라진 일상의 모습, 다가올 세상의 변화 등을 주목했다. 하지만 문명사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드러낸 사건인 만큼, 우리는 그 이면의 근원적인 것을 성찰해볼 때다. 그것은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반성적 물음으로 귀결된다. 25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사회에서도 그랬다.

아테네 역병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2년째(기원전 430년)에 발생해 정치적 문화적으로 문명화된 아테네 사회를 황폐화시켰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역병을 직접 겪고 살아남아서 법률, 종교, 도덕 등 모든 문명의 기제가 해체된 국가 재난의 상황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는 해군 제독으로 전쟁에 여러 차례 참전한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대표작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역병을 정치적 ‘정화’(katharsis)의 측면에서 보아내고 오이디푸스의 진실한 통치자 상을 새롭게 부각한다(그는 테베를 더럽힌 ‘오염물’에서 아테네의 신성한 ‘보물’이 된다).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와 달리 <미친 헤라클레스>에서 통치자의 경솔함과 성급함이 어떤 파국을 불러오는지를 드러낸다. ‘헤라클레스의 힘’이 상징하듯, 그 통치자가 권력의 토대로 삼고 있는 ‘애친증적’(愛親憎敵, 친구를 사랑하고 적을 미워하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플라톤은 역병이 일어난 지 50년 뒤에 이런 선배들의 고민을 종합적으로 성찰하며 <국가>(기원전 385~375년)를 저술한다. 재난 상황에서 개인이나 공동체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이 ‘정의’임을 강조하고, 궁극적으로 좋은 나라 좋은 인간을 만드는 정치의 길이 무엇인지를 모색한다. 무엇보다 플라톤은 당대 아테네 사회를 지배하던 ‘애친증적’의 배제주의 정의관과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현실 추수주의(追隨主義) 정의관을 극복하려 했다.

▲ 아테네의 역병 , 마이클 스위어츠, 1652-1654(출처=wikipeida)
▲ 아테네의 역병 , 마이클 스위어츠, 1652-1654(출처=wikipeida)

마지막으로 저자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는다. 투키디데스ㆍ소포클레스ㆍ에우리피데스ㆍ플라톤이 분석하고 통찰한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뿌리 깊은 두 정의관을 뛰어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에 자리 잡은 용서와 화해, 즉 사랑의 힘을 성찰하는 데 이른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언제나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고전인 <일리아스>는 분노와 슬픔을 넘어 화해와 용서로 갈무리된다. 이는 역병이나 전쟁과 같은 재난의 상황에 처할 때, 인간이, 더 나아가 인류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를 제시해준다. 저자는 이런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원수마저도 사랑해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코로나가 결코 물러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스핑크스로 상징되는 자연은 인간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져왔고, 인간은 거기에 답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답은 언제나 똑같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전쟁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을 더 두려워했다. 그때도 재난은 정권의 안위와 존립을 흔드는 요인이었고, 공동체의 통합을 저해하는 사회 불안의 핵심 인자였다. 역병이 초래한 기근(경제)은 배고픈 시민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정치가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대중에 영합하거나 그들의 욕망을 이용했다. 또 그 원인과 책임을 놓고 희생양을 만들어 배제와 낙인을 찍기도 했다. 전쟁이 상존하던 시기에 ‘친구를 사랑하고 적을 미워하라’는 전통적인 정의관은 마땅했지만, 어쨌거나 함께 가야 하는 내부의 정적을 향해서는 분열과 배제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는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아테네 사회를 성찰하며 역병의 진정한 치료제가 정치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렇게 역병은 정치의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역병은 치료만 하면 되는 자연 질병처럼 보이지만, 전염의 속성 때문에 순식간에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 질병의 양상을 띤다. 공동체의 문제인 한, 통치자의 리더십이 중요하고 정치적 결정과 해법이 요청된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코로나19의 현실은 그 생생한 증거일 것이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경제를 살리는 문제,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야 하는 문제들 앞에서 중대한 시험에 직면해 있다. 사실, 역병이라는 재난을 상대하고 극복하는 과정은 한 나라의 총체적 역량을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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