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우주: 〈오리진〉 〈여섯 개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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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본 우주: 〈오리진〉 〈여섯 개의 수〉」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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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_〈문화정전 제 30강〉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30강>_ 김형도 서울대학교 교수의 「과학으로 본 우주: <오리진> <여섯 개의 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5. 근대 과학과 인간의 삶’ 제 30강 김형도 교수(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강연 중 <여섯 개의 수> 관련 부분을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과학으로 본 우주: <오리진> <여섯 개의 수>

김형도 교수는 “우리가 관측하고 있는 우주의 모습은 왜 이와 같은 모습일까 혹은 우리는 왜 이런 우주에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현대 과학이 어디까지 답을 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우주 진화 140억 년’을 다룬 닐 디그래스 타이슨과 도널드 골드스미스의 『오리진』과 ‘마틴 리스가 들려주는 현대 우주론의 세계’라는 부제를 단 『여섯 개의 수』, 두 책을 보조 텍스트로 삼는다. 그렇게 볼 때 현대 물리학, 즉 “양자역학(혹은 더 구체적으로 표준모형)과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물리학의 두 기둥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거의 모든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힉스 입자와 우주상수” 문제라는 “가장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고 하며 그들이 “21세기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한다. 

지난해 12월 12일, 김형도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30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br>
지난해 12월 12일, 김형도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30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이번 강연의 주제는 우리가 관측하고 있는 우주의 모습은 왜 이와 같은 모습일까 혹은 우리는 왜 이런 우주에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현대 과학이 어디까지 답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 인류는 놀라우리만큼 성공적으로 우주 전체의 모습과 그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됨과 동시에 막연히 품고 있던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버려야만 하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많은 현상들은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과학기술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현대 물리학의 성취는 20세기 들어 방사능 물질의 붕괴와 원자핵을 묶어두는 약한 상호작용과 강한 상호작용의 이해를 통해 표준모형이라는 이론으로 완성되었다. 표준모형은 중력을 제외한 모든 물질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론으로 지금까지의 거의 대부분 실험 결과들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전기와 자기가 전자기 상호작용으로의 통합되었고, 표준모형은 전자기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을 전자기 약력으로 통합한다. 표준모형에서 강한 상호작용(강력 혹은 핵력)은 전자기 약력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가 가능하고, 표준모형을 넘어서 전자기 약력과 강력이 대통일 이론이라는 큰 틀에서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대통일 이론과 중력을 통합하는 그야말로 대통일 이론을 꿈꾸는 끈 이론에 따르면 물질과 상호작용을 이루는 궁극적인 본질은 1차원 끈이며, 끈의 다양한 진동을 통해 우리가 보는 다양한 기본 입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 아직 물리학자들이 끈 이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해가 부족하여 구체적인 우주의 모습에 대해 답을 해줄 수는 없지만, 우주의 여섯 가지 수가 왜 그 값을 가지는지와 같은 질문이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 1980년대 모든 것의 이론으로 끈 이론이 제안되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의 이론이 완성되면 우주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숫자를 이론에서 예측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희망은 1995년 끈 이론의 2차 혁명에 의해 산산이 깨졌고, 1997년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끈 이론에서 충분히 많은 다른 물리 상수를 가지는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급진적인 제안은 끈 이론은 양의 값을 가지는 우주상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주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여섯 개의 수에 대해 끈 이론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매우 다른 물리 상수를 가진 우주가 이론적으로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지금과 같은 모습일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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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리스가 현재 우리 우주의 모습을 설명하고 인류를 포함한 생명이 존재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수로 제시한 여섯 개의 수는 다음과 같다.

N, 엡실론(Epsilon, ε), 오메가(Omega, Ω), 람다(Lambda, λ), Q, D.

이 값들이 지금 우주의 관측 값과 다른 값을 가진다면 사소한 차이에 의해서도 지금과 같은 우주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생명이 존재하기도 어려운 우주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좀 더 기본적인 물리학 이론의 관점에서 여섯 개의 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여섯 개의 수 가운데 몇 개의 수는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왜 우리 우주에서 그 값을 택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단지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때에만 생겨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약한 인류 원리’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 우주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하는 이론은 일반 상대성 이론과 표준모형이다. 좀 더 쉬운 예로 뉴턴의 역학은 특정 시점에서 물체의 위치와 속도가 정해지면 이후 물체의 운동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서 시작하는 물체의 위치와 속도가 어떤 값이어야 하는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자연이 허용하는 한 물체는 어느 곳에도 존재할 수 있고 어떤 속도도 가질 수 있으므로 물체가 운동을 시작하는 위치와 속도를 예측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어떤 예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데이터를 투입해주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정보를 인풋 데이터(input data) 혹은 바운더리 컨디션(boundary condition)이라 부른다. 우주의 시작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바운더리 컨디션이 주어지고 나면 원칙적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의 운동이 이 태초의 인풋 데이터에 의해 모두 주어져야 하지만,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양자역학은 인풋 데이터가 주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양자 요동에 의해 단지 확률에 의해서만 이후의 운동을 특정할 수 있다.

오메가, 람다, Q는 우주의 팽창에서 필요한 인풋 데이터에 해당한다. 우주가 시작한 시점을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구체적인 값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지금 우주의 값으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유추해보는 것이 최선이다. 이와 달리 N, 엡실론, D는 이론이 예측하는 값에 해당하는데, N은 중력과 전자기력의 상대적 크기, 엡실론은 강한 상호작용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는 값이고, D=3은 공간 차원이다.

보다 근본적인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두 가지 문제는 N과 람다이다. 먼저 기본 입자인 두 전자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력과 중력의 상대적 크기인 N에 대해 살펴보자.

N=1037은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이다. 중력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힘이지만 동시에 미시 세계의 기본 입자의 입장에서 가장 미약한 힘이다. 양성자 혹은 전자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자 할 때 전자기 상호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하,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지 아닌지의 여부 등이 중요하지만 이와 달리 중력의 효과는 너무나도 미미해서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호의 전하는 서로 당기고, 같은 부호의 전하는 서로 밀어내는 전자기 상호작용의 성질에 의해 양성자와 전자는 우주가 식으면서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를 이룬다. 이와 같이 전기적으로 중성이 된 원자들끼리는 전자기 상호작용의 효과가 거리가 멀어질수록 빨리 감소하여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서는 전자기 상호작용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질량에만 의존하는 중력 효과는 서로 당기는 힘으로 원자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커진 질량에 비례해서 중력의 효과가 커지며 결과적으로 태양계의 행성들의 운동은 전자기 상호작용이 아닌 중력의 효과에 의해 잘 기술된다. 거시적인 천체의 운동은 전자기력을 고려할 필요없이 오로지 중력 이론인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대부분 이해 가능하다.

전자기 상호작용의 크기에 비해 중력 상호작용의 크기가 왜 이렇게 미약한지를 이해하는 것은 지난 40년간 입자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고려되어왔다. 상호작용의 크기는 상호작용 상수와 전하 혹은 질량에 의해 결정된다. 상호작용 상수는 임의의 값을 가질 수 없고 가장 큰 값이 1에서 10 정도의 값이다. 이보다 큰 값을 가질 경우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상호작용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고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새로운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이루어져야만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전자기 상호작용으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호작용 상수의 값은 클 수 없다. 전하의 크기는 원칙적으로 큰 값일 수 있지만 기본 입자의 전하량을 1로 정해놓았을 때의 상호작용 상수에 그 최대값이 적용되므로, 매우 큰 전하량을 가지는 우주에서의 상호작용 상수는 그만큼 더 작아야 하므로 전자 전하량의 크기가 1일 때의 상호작용 상수는 1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값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제 상대적 크기는 중력의 크기 문제가 된다. 중력 상호작용 상수는 뉴턴 상수인데, 뉴턴 상수는 플랑크 질량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값으로 주어진다. 전자기 상호작용과 중력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이유는 두 힘 모두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힘의 상대적 크기가 거리에 무관하게 잘 정의가 되기 때문이다. 중력의 크기는 뉴턴 상수와 중력이 작용하는 두 질량의 곱에 비례하는데, 전자기 상호작용과 비슷한 크기의 힘이 되기 위해서는 질량이 플랑크 질량이 되어야 한다. 자연의 기본 입자의 질량은 플랑크 질량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데 전자를 포함한 표준모형의 기본 입자의 질량이 플랑크 질량에 비해 극히 작은 이유를 물리학자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표준모형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를 받았던 많은 이론들은 공통적으로 기본 입자의 질량이 작은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들이었는데,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인 CERN의 입자가속기 LHC(Large Hadron Collider)에서 표준모형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입자를 발견할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지금까지 새로운 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세계 최고의 석학들도 이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하였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N이라는 큰 수를 이해하는 문제는 동시에 힉스 보손의 질량이 왜 그렇게 작은지를 이해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수십 년간 입자물리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많은 물리학자들로 하여금 표준모형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안내서가 된 문제이지만, 동시에 CERN의 LHC에서 힉스 보손 이외의 어떤 새로운 입자 혹은 새로운 물리 현상도 발견되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학자들을 절망시킨 문제이기도 하다.

우주상수 람다는 이론물리학의 최대 난제이다. 아인슈타인이 장 방정식을 완성하고 허블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전 물질의 존재에 의해 자연스럽게 팽창하는 우주를 정상 상태로 만들기 위해 처음 도입한 우주상수는 아인슈타인이 인생의 후반부에 본인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불렀던 것이다. 우주상수의 값에 따라 우주의 운명은 극단적으로 달라지는데 우주상수의 값이 양으로 큰 값일 경우 우주는 순식간에 가속 팽창을 해버려 물질과 복사가 뭉칠 틈도 없이 광대하고 공허한 공간을 남긴다. 이와는 달리 우주상수의 값이 음으로 큰 값일 경우 우주는 매우 짧은 시간에 감속 팽창을 한 후 다시 수축해 사라져버리는 운명을 지니게 된다. 흥미롭게도 지금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우주는 이 우주상수의 값이 0에 매우 가까운 값이어서 아인슈타인 이후 거의 100년간 사람들은 우주상수의 값이 0일 것이라고 믿어왔다.

어떤 값이 매우 작을 경우 반드시 그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사의 경험에서 반복적으로 배워온 결과 엄밀하게 그 값이 0인 것을 측정 혹은 증명을 통해 보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광자의 질량, 중력자(존재한다면)의 질량은 0이라고 믿어진다. 마찬가지로 우주상수도 존재한다면 매우 작은 값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 값이 0이고, 왜 우주상수가 0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는 방법을 택해왔다. 

과학적 아이디어는 우주상수가 0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그런 우주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새로운 현상 혹은 새로운 입자를 예측한다. 실망스럽게도 우리가 태어나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이러한 새로운 현상 혹은 새로운 입자를 지니고 있지 않고 따라서 지금의 관측 결과와 부합하면서 우주상수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던 우주상수 문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서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말 초신성을 이용해 정밀하게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하게 되면서 최근 들어서야 우주가 가속 팽창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측정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우주상수의 존재를 고려하는 것이다. 어떤 수가 0이라면 정확하게 어떤 보존 법칙이나 대칭성 이론에 의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0이 아닌 아주 미세한 작은 수의 경우 그 수를 설명하기 위한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우주상수는 현대 과학이 모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줄 것이라는 매우 낙관적인 전망에 처음으로 회의를 가지도록 만든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우주상수의 문제는 초기 조건의 문제와 비슷한 성격일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우주상수가 다른 값인 우주가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므로 다양한 우주의 존재 가능성이 있고, 이 가운데 우리는 지금 측정된 우주상수의 값을 가진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넓을수록 다양한 환경이 존재할 가능성이 커지고, 무한히 넓다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우주는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를 확장해가면 매우 작은 우주상수를 가진 우주가 오로지 다양한 가능성에 의해 존재하기 위해 전체 우주는 매우 커야 한다. 4차원 시공간이 함께 묶여 존재하므로 우주의 크기를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깊은 논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지만 일단 여기서는 공간적으로 충분히 큰 우주를 상상하도록 하자. 태양계 안에서도 다양한 행성들이 존재하며 이 행성들은 거의 같은 재료로 뜨거운 가스 원반으로부터 생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양계의 주 에너지원인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매우 다른 환경의 대기 성분을 가진다. 태양계와 유사한 시스템이 많을수록, 포함하고 있는 행성들이 많을수록 더욱 다양한 대기 환경을 가진 행성들이 존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크기가 클수록 다양한 우주상수를 가진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 우주상수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우주상수가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고 하는 다중 우주의 가능성을 부인하기가 쉽지 않다.

왜 하필이면 우주가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이 합쳐진 4차원 시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질문은 매우 흥미롭다. 이 역시 만약 다른 차원의 우주라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보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시간 자체는 공간과 달리 방향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상대성 이론의 의미를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로우며 특히 시간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는 우주의 시작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어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현대 인류가 완벽한 이해를 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간략하게 압축해서 핵심적인 부분만을 설명하자면 블랙홀의 양자 정보 패러독스와 같은 문제들이 패러독스가 없는 방향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보이며, 미시 세계의 물리 법칙에서 시간의 방향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의 방향성은 통계적인 혹은 거시적인 계에서 나타나는 착시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공간 차원의 크기 D가 왜 하필 3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매우 흥미롭다. 4차원 공간에서는 공전 궤도가 불안정하여 태양계에서 행성의 공전 궤도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가 없다.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원자의 크기는 0이거나 무한대에 해당한다. 안정적으로 보어 반경을 가진 수소 원자가 존재할 수 없다.

상호작용 상수를 살펴보면 중력 상호작용의 뉴턴 상수를 제외한 전자기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 상수 모두 고전적인 정의로 질량에 따른 혹은 거리에 따른 의존성을 가지지 않는다. 이 성질은 공간의 차원이 달라지면 완전히 달라져 2차원 공간을 가진 우주에서는 표준모형에 존재하는 상호작용을 하는 이론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2차원이라면 미시 세계로 갈수록 상호작용의 크기가 커지게 되며 반대로 특정한 상호작용 상수를 가진 이론에서 거시 세계로 가면 상호작용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4차원이라면 이와 반대로 미시 세계에서 아무리 작은 상호작용 상수를 가지고 시작하더라도 거시 세계에서 상호작용은 점점 강해지고 결국 처음 시작한 이론을 이용해 아무것도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게 된다.

3차원의 상호작용은 매우 특이하게 상호작용 상수가 기본적으로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에서 같은 값을 가져 보다 정밀한 계산을 통해서만 아주 약한 의존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강한 상호작용의 경우 양성자의 질량에 해당하는 크기 혹은 핵자의 크기인 1페르미(fermi) 이하에서는 표준모형의 양자 색소 역학이 더 이상 자연 현상에 대한 효율적인 기술 방법이 되지 않고, 현상론적인 핵물리 이론을 통해서 혹은 컴퓨터 계산을 통해서만 강한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차원에서는 모든 상호작용이 이런 방식으로 기술되어야만 하고, 전자기 상호작용 같은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0.007의 값을 가지는 엡실론은 원자핵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지구의 모든 원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결정한다.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과정을 통해 수소 원자핵보다 큰 원자 수를 가지는 안정된 원자핵들이 만들어지고(철까지), 철보다 무거운 불안정한 핵들은 막대한 에너지를 내뿜는 초신성 폭발과 같은 과정에서 만들어지는데 이 모든 과정을 결정하는 것이 엡실론이다. 보다 물리적인 상수로는 강한 상호작용 상수와 가장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엡실론이 살짝 다른 값을 가진다면 다양한 원자들의 존재가 불가능해지고, 우주는 수소 혹은 수소와 헬륨 정도로 이루어진 매우 단조로운 모습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주에서 엡실론이 살짝 다른 값으로 주어졌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와 같은 가정은 보다 현실적인 질문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즉 보다 의미 있는 질문은 엡실론이 바뀐 세상에서 다른 상호작용 상수들도 달라져 새롭게 흥미로운 우주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표준모형이 알려주는 흥미로운 사실은 원자가 전기적으로 정확하게 중성인 것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자기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은 모두 아주 특별한 종류의 전하를 가진 입자들에 대해서만 모순이 없는 양자 이론이 가능해지는데 표준모형에서 쿼크와 렙톤들이 가지는 이런 전하들은 매우 특이한 형태여서 왜 세상에 쿼크와 렙톤이 존재하고 이와 같은 특별한 전하들을 가지는지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표준모형의 상호작용 상수들의 크기를 충분히 높은 에너지 스케일까지 혹은 충분히 미시 세계까지 양자 효과를 고려해 계산해보면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 스케일에서 전혀 달라 보이는 상호작용 상수들이 모두 비슷한 값을 가지게 된다. 이 관찰 결과에 착안해 표준모형의 상호작용들을 하나의 군에 의한 상호작용으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고, SU(5) 혹은 SO(10)이라고 하는 군을 이용해 표준모형의 모든 상호작용을 통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경우 가장 큰 대칭성은 매우 높은 에너지 스케일에서 명확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그 형태를 바꾸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일 이론에서 쿼크와 렙톤이 같은 입자였기 때문에 상호 변환이 가능하며, 매우 드문 일이지만 양성자 붕괴 실험을 통해 이론을 검증할 수 있다. 실망스럽게도 수십 년간 진행된 양성자 붕괴 실험에서 아직 단 하나의 양성자 붕괴 사건도 관찰된 바가 없기에 이 단순한 대통일 이론은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 초대칭성이라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대칭성과 합쳐진 초대칭 대통일 이론에서 예측하는 양성자 붕괴의 확률은 실험적인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아직 관측하지 못한 양성자 붕괴 실험 결과와 부합한다.

엡실론에 대한 논의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표준모형에서 엡실론은 강한 상호작용 상수와 쿼크의 질량에 의해 결정된다. 강한 상호작용 상수가 양성자의 질량을 결정하고, 강한 상호작용 상수와 업 쿼크, 다운 쿼크의 질량에 의해 파이온 중간자의 질량이 결정된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질량 차이를 무시한다면 헬륨 핵의 결합 에너지는 대체로 파이온의 질량에 의해 결정되므로 엡실론은 파이온과 양성자의 질량 비에 크게 의존해서 주어진다. 엡실론의 헬륨 원자핵의 결합 에너지를 헬륨 원자핵 전체가 가지는 질량 에너지로 나눈 값으로 간단하게 정의되지만 보다 기본적인 입자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강한 상호작용 상수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그 값을 결정하는 데 기여를 하게 되어 단순한 일대일 대응으로 논하기에는 어렵다.

그다음 우주의 오메가 값이 임계 에너지 밀도에 가까운 이유는 급팽창 이론이 설명해준다. 임계 밀도는 중력과 팽창 에너지가 정확하게 같아 우주의 전체 에너지가 0이 되는 물질의 밀도이다. 우주 전체의 물질의 밀도 측정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메가 값이 정확하게 임계 밀도에 해당하는지는 모르지만, 해당할 경우 우주 전체의 에너지가 0이므로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 적어도 에너지 보존 법칙을 위배하지는 않는다. 정확하게 임계 에너지 밀도를 가지지 않는 우주라고 하더라도 급팽창이 일어나고 난 이후에는 임계 에너지 밀도와의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급팽창은 공간을 지수함수적으로 팽창시키면서 우주상수를 제외한 모든 밀도를 매우 작게 만들어버리는데, 이때 팽창 에너지는 우주상수에 의해 결정되며 중력과 팽창 에너지의 평형 조건을 유지한다.

따라서 어떤 초기 조건에서 시작하더라도 임계 밀도를 가진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므로 현재 우주의 관측 결과를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된다. 급팽창을 통해 복사와 물질의 밀도를 작게 만들 뿐 아니라 곡률 또한 작게 만들어 우주가 매우 평평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우주가 정확하게 0의 공간 곡률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우주라고 하더라도 급팽창이 일어난 후의 모습은 0의 곡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풍선이 계속 커져 지구 혹은 그 이상의 크기가 되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쉽사리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Q는 우주 구조 형성의 씨앗이 되었던 미세한 밀도 차에 해당한다. 양자 요동에 의해 생겨나는 밀도 차는 급팽창이 일어날 때의 진공 에너지 값과 연관되어 있다. Q의 값이 지금보다 컸다면 보다 짧은 시간에 구조 형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우주의 대부분의 질량이 블랙홀로 이루어져 있게 되고, 수많은 별들과 은하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우주가 되어 생명이 존재하기에는 매우 거친 위험한 우주가 될 것이다. 좀 더 큰 Q의 값을 가진 우주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지는 않겠지만 현재 우주의 모습과 비교해 그 확률이 확연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Q의 값이 10만 분의 1보다 작다면 중력에 의한 우주 구조 형성이 매우 더디게 일어났을 것이고, 흥미로운 원소들도 은하와 별에 모이지 않고 은하 밖으로 떨어져나가 성간 물질로 부유할 것이다. Q의 값이 100만 분의 1보다 작아지면 가스가 중력적으로 응축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2000년대 초반은 암흑 에너지가 발견되면서 우주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활발하게 논의되던 시점이다. 당시 5년 후쯤이면 암흑 물질의 정체도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15년이 더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는 암흑 물질의 실체를 모른다. 양성자 질량의 100배 정도 되는 질량을 가지고 약한 상호 작용을 하는 윔프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후보였지만 수많은 암흑 물질 탐색 실험의 결과에 따르면 윔프는 암흑 물질이 아닌 것 같다. 동시에 윔프를 예측했던 아름다운 초대칭 이론 또한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전혀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실험에서 찾지 못하고 있다.

대신 2012년 수십 년간 학수고대하던 표준모형의 힉스 입자를 CERN의 LHC에서 발견하였고, 2015년 두 블랙홀이 병합하면서 방출한 중력파를 LIGO 실험에서 검출하였다. 힉스 입자의 성질을 정밀하게 측정하여 표준모형의 예측과 잘 일치하는 것을 확인해가고 있고, LIGO 실험은 두 블랙홀의 병합뿐 아니라 중성자별과 블랙홀, 두 중성자별의 병합에서 발생하는 중력파도 관측하였다. 갈릴레이의 망원경으로 우주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시작했고, 가시광선 관측을 넘어 적외선 망원경, 전파 망원경, X레이 관측 등 전자기파의 모든 스펙트럼을 관측하기 시작하면서 우주를 제대로 관찰하기 시작했다면, 최근에는 중성미자 망원경, 중력파 망원경까지 갖춰 종합적으로 우주 먼 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주가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양자역학(혹은 더 구체적으로 표준모형)과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현대 물리학의 두 가지 기둥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거의 모든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왜 힉스 입자의 질량이 양성자 질량의 133배인지, 왜 우주상수는 자연스러운 값의 1/10120인지와 같은 가장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론물리학자들은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든 학자들이 과학의 핵심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혁명적 이론이 태동하기 직전인 19세기 말 물리학은 완성되었고 아주 사소한 문제들만이 남아 있다고 여겨졌으나 고전역학과 전자기학의 모순, 흑체 복사 현상에서 출발해 고전 물리학 전체가 전복되고 과학적 세계관 자체가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대체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힉스 입자와 우주상수의 문제가 21세기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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