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운동의 연장통, 푸코 담론을 혁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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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운동의 연장통, 푸코 담론을 혁신하라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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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푸코와 장애의 통치 | 셸리 트레마인 엮음 | 박정수·임송이 옮김 | 그린비 | 528쪽

이 책은 푸코의 철학을 통해 ‘장애’를 고찰한 책으로 ‘정신지체’, ‘손상’, ‘결함’ 등을 갖고 있다고 간주된 이들을 둘러싼 정치, 법률, 제도, 담론을 푸코의 개념과 사유로 분석하고 있다. 각 챕터를 담당한 장애학 연구자들은 임상의학, 광기, 정신분열증, 교육학, 감옥에 대한 푸코의 역사적 연구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배제와 통합의 실천들, 교육학, 건강 담론들을 서로 관련지음으로써 푸코의 텍스트와 사유가 지닌 현재적 가치를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푸코가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 지점에서 오늘날 ‘사회적 장애 모델’의 한계를 넘어설 필요와 전망을 담고 있다. 사회적 장애 모델에 입각한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금지한 법 제정을 이끌어 냈으며, 장애인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 있게끔 여러 복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냈다. 문제는 장애인을 사회에 통합시키는 그 ‘정상화’ 프로그램에 내재하는 또 다른 권력과 담론이다. 정상화 권력과 정상성 담론에 대한 푸코의 비판적 분석이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억압’이나 ‘차별’, ‘배제’라는 단어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장애인의 신체와 품행에 미시적으로 작동하는 권력의 시선과 담론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미덕은 후반기 푸코의 연구주제인 ‘통치성’과 ‘자기-돌봄’을 충실히 검토하고 있으며, 푸코의 논의를 구체적인 장애 현실을 분석하는 연장통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전반기 푸코에 갇혀 있는 한국의 지식 사회에 후기 푸코의 시야를 공급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가 자신의 책은 아카데믹하고 총체적인 지적 사유의 수단이 아니라 전략, 정찰 등의 명분으로 오로지 투쟁의 현실과 결합되기를 원한 것처럼, 장애인 운동의 전략 수립을 위한 연장통으로 푸코의 사유가 활용되는 방법을 보는 것은 푸코 연구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푸코의 사유는 강단이 아니라 이렇게 운동 현장의 연장통으로 활용되는 방식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  푸코
푸코

무엇보다 이 책은 한국의 장애인 운동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한국의 장애인 운동은 목숨을 건 이동권 투쟁을 통해 저상버스,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특수교통 수단을 만들었으며, 탈시설 투쟁으로 장애인 자립생활 센터와 활동지원사 제도,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와 주간돌봄 센터 등 지역사회 통합 시스템들을 쟁취했다. 사회적 장애 모델에 따라 그들은 장애를 손상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의 산물로 재정의하고, 억압의 사슬을 철폐하고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의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자립 기반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 책은 대략 20년 일찍 그 과정을 밟아 온 영미권 장애인 운동에서 새롭게 제기된 과제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정상화 프로그램으로 지역 사회에 형식적으로 통합된 이후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는 무엇인지, 정상화 권력과 정상 담론을 넘어서는 싸움이 갖는 의미와 전략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꾸는 싸움은 자기를 변화시키는 싸움이라는 것, 그래서 지배적 통치체제와의 싸움은 그와 다른 새로운 자기-통치 방법과 집합적 주체 형성을 발명하고 실험하는 과정이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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