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글 발전에서 여성의 구실은 절대적이었다
상태바
조선시대 한글 발전에서 여성의 구실은 절대적이었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1.17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간소개]

■ 조선시대 여성과 한글 발전: 여성이 아니었으면 훈민정음이 살아남았을까? | 김슬옹 지음 | 역락 | 600쪽

이 책은 <훈민정음> 해례본(1446) 간행 후 조선 말까지 훈민정음(한글) 발달에 여성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를 밝힌 책이다. 이는 훈민정음 발달이 여성의 어문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밝히기는 것이기도 하다. 어문생활사 관점에서 그 맥락을 분석하고 의미를 밝혔다.

세종대왕은 해례본에서 한문으로 인해 말과 글이 유통이 안 되고 한자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유통이 안 되는 언어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바로 한글은 사람 중심으로 보면 다양한 계층이 유통이 되게 하는 그런 문자였고 실제 그런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유통을 촉발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 이들이 지배층 여성, 곧 왕실 여성들과 양반가의 여성들이었다.

조선시대 한글 발전에서 여성의 구실은 절대적이었다. ‘암클’이란 말은 그런 절대성에 대한 징표의 말이며 상징적인 말이고, 한글과 여성을 함께 낮게 보았던 양반 사대부들을 비판하는 역설의 말이다. 양반 남성 지식인들은 조선말까지 한글을 지식 실용화 도구로 전면화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18, 19세기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와 같은 실학자들조차 한글 사용을 거부했을 정도였다.

1부는 여성의 훈민정음 사용 배경과 의미를 살폈다. 1장에서는 조선시대 비주류 문자였던 한글이 소수자였던 여성에 의해 사용된 맥락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 목적과 방법을 제시했다. 2장에서는 문자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의해 문자의 권력과 남녀 차별 기호로 작동하게 된 흐름을 밝혔다. 남존여비가 심화되는 성리학 교조주의 가운데서 지배층 여성이 어떻게 한글이 확산되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는지 살폈다. 3장에서는 한글 발전은 바로 소수자 여성과 이류 문자 취급을 받은 한글의 역설적 결합임을 밝혔다.

2부는 가사와 소설 문학 분야에서 여성들의 한글 사용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폈다. 4장에서 여성들이 창작과 향유 대표 주체인 여성 가사를 분석한 결과, 가사는 여성들의 표현과 소통을 통한 사회적 참여를 부추겨 여성 정체성을 강화하였고 언문일치 확산과 더불어 우리말 표현 정립과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5장의 한글소설 역시 언문일치의 토대 마련과 입말성을 반영한 낭독문화 등을 통해 한글 확산에 이바지했다. 또한 한글소설은 여성들의 고급 글쓰기 규범서 역할을 하였고, 궁체와 같은 한글문화 정립에 디딤돌이 되었다.

3부는 주요 생활문 분야로 한글편지, 제문, 실용서 등을 통해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을 위한 한글 사용 역사와 의미를 따져 보았다. 6장 여성들의 한글편지에 의한 훈민정음 발달 의의는 공공성, 관계성, 정체성과 주체성, 표현성 측면에서의 의미를 분석했다. 7장 생활문에서 여성의 한글 사용 맥락과 의미로 가장 큰 가치는 생생함과 소소함, 자잘함의 미학이다. 곧 생활문은 한글을 한글답게 여성을 여성답게 만든 문학으로, ‘나다움’을 살리는 길이었다. 8장 제례와 죽음 관련 분야에서 한글 제문은 남성과 여성, 산자와 죽은자, 관련된 지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끈이었다. 9장 실용서 분야에서 여성의 한글 사용은 한글의 질적 사용 가치를 여성들이 높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성 사대부들은 실학자들조차 실용서에서 한글을 배제했지만 여성들은 상언, 요리서, 백과사전류에서 한글을 사용해 한글의 실용적 가치를 높였다.

4부는 세기별로 여성의 한글 사용 주요 맥락을 밝히고 여성이 한글을 사용한 의미를 통합 규명하였다. 10장에서 밝힌 세기별 역사적 의미로는, 우선 15세기의 훈민정음 반포 후 초기 문헌인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이 여성과 직접 연관된다고 보았다. 또한 왕실 여성들의 언문 사용은 공적 틀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궁녀들 사이에서는 언문이 주요 의사소통 도구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6세기에는 조정 대신들이 왕실 여성들에게 보내는 공문을 한글로 쓴 사례와 여성이 상소문(상언)을 한글로 접수한 의미를 밝혔다. 또한 궁인의 한글편지가 멀리 사찰에까지 전달된 사례도 있었다.

▲ 조선시대 여성과 한글 발전_음식디미방
음식디미방

17세기에는 한글소설을 통해 여성 독자들의 한글 사용과 유통이 많이 이루어졌다.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과 같은 실용서와 여성들의 한글 상소문 등이 정부에 접수되는 등 한글의 실용적 가치가 적용된 시기였다. 18세기에는 가사와 한글소설이 더 널리 퍼졌고 천주교를 통한 한글 보급과 확산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19세기에 여성들의 한글 사용이 급증하고 그로 인한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이 높아졌다. 특히 성차별 타파 정신이 담긴 자생적 천주교 도입이 천주교 관련 문서들을 통해 일반 여성들까지 확산되었다.

11장에서는 여성의 한글 사용 통합적 의미를 규명했다. 먼저, 역사적 의미로는 조선말까지도 민중들은 대다수 한글조차 모르는 문맹이었지만 왕실 여성과 양반가 여성들이 지배층 여성으로서의 상대적 위치에서 한글 발전에 핵심 구실을 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밝혔다. 문화적 의미로 보자면 여성의 한글 사용은 한글문화의 ‘소통성, 생태성, 평등성, 미학성’ 등의 한글문화 그 자체였다. 국어사적 의미로는 한글만 쓰기, 언문일치, 생생한 우리말 기록 등의 어문생활 발전에 여성이 핵심 구실을 하였다. 인문적 의미로는 조선시대 여성은 소수자(약자) 지향, 소통과 나눔, 여성 정체성 강화 등으로 여성다움과 나다움으로 한글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성리학적 이념에 기반을 둔 남성 사대부들의 한자 중심 태도는 역설적으로 한글문화와 한글 발전에 여성을 우뚝 세우는 결과를 가져왔고 여성들은 한글문화를 자신들의 문화와 남성들과 소통하는 문화로 세우고 가꿔 나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