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디지털-인터넷 기술의 ‘불타는 유토피아’ 한복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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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디지털-인터넷 기술의 ‘불타는 유토피아’ 한복판에 서 있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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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불타는 유토피아: ‘테크네의 귀환’ 이후 사회와 현대 미술 | 안진국 지음 | 갈무리 | 408쪽

우리 시대에 기술과 예술은 어떤 양상을 보이며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팬데믹은 예술계에 어떤 충격을 주고 있는가? 인공지능의 시대에 누가 예술가인가? 지적재산권은 창작자를 양성하는가, 플랫폼 기업의 배를 불리는가?

저자는 현대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변화들을 인공지능, 팬데믹, 복제, 저작권, 스마트폰, 짤, 밈, SNS, 뉴트로, 제도권미술, 인류세, 포스트휴먼, 재난, 커먼즈 등의 키워드와 접속시켜 사유한다.

우리는 기술이 인간을 유토피아로 인도하리라 기대했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공유,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데이터. 이러한 바람은 디지털-인터넷 기술에 불을 지폈다. 디지털과 무선 정보통신 기술, 빠른 정보 이동과 처리 기술, 많은 데이터를 촘촘히 저장할 수 있는 하드웨어는 디지털-인터넷 기술의 연료가 되어 불길을 키우고 있다. 기술주의 유토피아는 활활 타면서 찬란한 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디지털-인터넷 기술의 불길은 이율배반적으로 유토피아를 태우며 그곳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불타는 유토피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보편기계로서 ‘개방된 민주적 공간’을 형성하리라고 기대했던 ‘디지털-인터넷’이 악플과 신상털기, 마녀사냥, 가짜뉴스 등이 넘쳐나는 사악한 기계로 변하고 있다. 데이터 기술발전은 모든 것을 자동으로 분류, 예측, 실행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하여 생활의 편리함을 주고 있지만, 그 시스템 틈바구니에서 인간은 데이터 눈알 붙이기(데이터 라벨링)를 하거나 온라인의 초단기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복제는 더욱더 쉬워졌고, 저작자의 권리 보호를 중요하게 여기는 목소리가 높아져 저작권은 점점 더 강조, 강화되는 추세이지만, 사실상 저작권 수입은 창작자보다는 플랫폼을 만든 테크 기업이나 저작권을 구매한 법인 저작자의 몸집을 불릴 뿐이다.

고도화된 기술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합이 역사상 유례없는 편의와 자유를 실현한 듯 선전된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는 인류세를 맞이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제시하며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결국 성장제일주의라는 고전적인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 부스러기가 태산처럼 모여 만들어낸 빅데이터는 지금 가야 할 길과 저녁 외출을 하며 입을 복장과 내일 날씨까지 알려주는 확률 절대자가 되었다. 확률 절대자는 사람의 모든 것을 지정해주며, 확증편향을 일으키고, 사회를 획일화하고 있다. 우리는 빅데이터라는 확률 절대자가 알려주는 대로 같은 길로 가고, 같은 코스의 맛집을 들르고, 같은 방식으로 프러포즈를 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예술의 양상은 어떠한가? 디지털 기술이 예술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 이 책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은 복제, 변형이 손쉽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우선 예술가의 작업 방식을 바꿨다. 과거에는 손으로 종이에 직접 예비 드로잉을 했다면, 오늘날의 작가들은 디지털 프로그램에서 복사, 붙이기, 편집, 삭제 기능을 사용한다. 작업 중간에 실수하면 바로 작업을 뒤로 돌려 실수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다. 저자는, 실수와 오류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나오는데, 예술가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면서 혹시 그런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한다.

또한, 웹아트나 넷아트는 모든 사람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평등하게 작품을 접하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었다. 오늘날 그러한 기대는 포스트-인터넷 아트라는 형태로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인다. 미술 제도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면서 비물질적 디지털 데이터를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상은 빛이 바랬다. 이제 온라인에 떠도는 비물질적 이미지들을 물질화시켜 그것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같은 미술 제도권에 전시하는 포스트-인터넷 아트가 부상하고 있다.

인공지능도 예술에서 중요한 화두이다. 인공지능은 디지털과 빅데이터, 딥러닝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현대 미술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다. 인공지능 작가들은 기능적으로 인간만큼, 혹은 인간보다 더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질문들이 제기된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단순히 도구로만 활용해야 할 것인가, 도구 이상의 인간 조수(비서)로 활용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과 동등한 새로운 종의 예술가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인공지능 작가는 예술가인가?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예술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가? 예술계에서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 책은 진단한다.

코로나19는 예술계에도 커다란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직면하여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미술관은 그 주요 활동들인 전시와 교육이 거의 마비된 상황이다. 그래서 전시와 교육 활동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튜브로 전시 투어 영상을 올린다거나 전시장을 그대로 스캔하여 온라인 가상갤러리로 구현하는 등의 방식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일상화된 비대면 상황에 예술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온라인 전환’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으며, 좀 더 광범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열린 문제라고 이 책은 말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회성 전염병이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가 불러온 재앙인 만큼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예술에서도 필요하지 않은지, 이 책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어려운 사정에 처한 대다수 예술가들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지적재산권’, ‘저작권’에 대한 통념을 의문에 붙인다. 시각예술에서는 특히 저작권이 학문 연구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책에 따르면 시각예술 연구서적이나 잡지를 출판할 때, 이미지 저작권료가 제작비의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출판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하고, 이런 현실은 동시대 미술 연구서적보다는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고전 미술 연구로 미술서적 출판이 쏠리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저작권 전쟁은 창작자와 복제자 사이의 다툼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기업들을 비호하며 저작권법을 갱신하고 수호하는 정치인이 있고, 저작권법의 수혜자인 저작권 보유자들에게 고용되어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법률가들이 있으며, 법률가들을 고용하여 적극적인 저작권료 수취 캠페인을 펼치는 기업가들이 있다. 저작권은 단순히 저작자의 권리를 넘어서,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기업은 저작권을 사들여 저작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득을 얻는다. 플랫폼은 저작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거래를 맺어주면서 저작자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다. 지금까지 저작권 전쟁에서 보이지 않았던 세력들을 드러내고 그들이 하는 행위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이 책은 인류가 직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커머닝(commoning)과 커먼즈(commons)를 이야기한다. 커먼즈, 커머닝은 우리말로 공통장, 공유지, 공유재, 공통의 것 등으로 번역되는데, 우리 삶과 세계의 ‘공통’적인 측면들을 드러내는 대안적인 용어로서 예술은 물론이고, 사회운동, 정치학, 사회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00년대 들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이 책에서 커머닝은 “공통의 것으로 잘 조직하기 위해 개입하고 관리하는 행위”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공통의 것으로 잘 조직하기 위한 행위가 커머닝이라면, 이 책은 예술도 커먼즈일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술이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역할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인류 공통의 난제들을 우리가 피부로 느끼게 되고, 사회 시스템이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술은 상상력으로 그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나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럴 때 ‘커머닝 예술 행동’이란 공통의 이익을 위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의 한 단면일 것이다. 커머닝 예술 행동은 공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행동하는 예술을 의미한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은 기존 질서가 가지 않았던 길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장이다. 커머닝 예술 행동은 예술적 상상력을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공통의 것으로 조직하여 함께 대안적 예술을 형성하거나 누리는 예술 행동이다.

커머닝 예술행동은 이 책의 핵심 질문,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응답이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비영미권 미술관 협의체인 ‘인터내셔널’은 2009년에 “예술의 비판적 상상력이 시민의 제도이자 시민권과 민주주의 개념의 촉매제”로, “예술과 예술 기관이 … 전반적인 제도의 공식적인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논의하기 위한 적합한 플랫폼”이라고 선언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 이후, 사회 시스템이 오작동하고 있었음이 밝혀졌을 때, 예술은 인류 공통의 난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은 인류의 난제를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각인시키고, 시스템이 상상력을 잃었을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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