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철학의 창조적 확장, “배치”를 통해 역사와 과학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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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철학의 창조적 확장, “배치”를 통해 역사와 과학을 읽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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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들뢰즈: 역사와 과학 | 마누엘 데란다 지음 | 유충현 옮김 | 그린비 | 264쪽

이 책은 철학자, 실험영화 감독, 소프트웨어 디자이너인 저자가 들뢰즈 철학을 성찰하면서 쓴 일곱 편의 글을 한데 묶은 것이다. 신유물론의 대표 주자인 저자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소개한 발아적 개념들을 창조적으로 확장하고 수정하며 새로운 형이상학, 즉 유물론적 형이상학을 제안하는데, 그 근본 개념은 배치와 잠재성이다.

저자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통찰이 갖는 가치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것을 확장하고 때로는 수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역사적, 우발적 사건으로서의 배치들이다. 배치는 역사성을 갖는다. 여기서 역사란 특정한 시기에 부분들이 상호작용하여 우발적 사건으로서 전체(배치)가 생겼다는 의미이다(상향 인과성). 그러나 일단 배치가 자리하면 배치는 부분들이 고립되었을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창발적 속성이 생겨나 부분들을 제한하고 권한을 준다(하향 인과성). 이처럼 배치 개념에서는 인과성의 화살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환원주의나 신비주의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부분들은 ‘외부성의 관계’를 이루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떨어져 나갈 수도 있고, 다른 전체와 접속하기도 한다. 이처럼 실체나 본질과 달리 배치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변이가 내재적 속성으로 주어진 역사적 독립체다. 부분들의 우연한 만남 혹은 상호작용의 사건, 요컨대 세계에 거주하는 유일한 독립체들은 사건으로서의 배치들이다. 들뢰즈가 다소 모호하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들뢰즈는 모든 것이 은유가 아닌 실재라고 말했지만) 것을 저자는 다양한 사례(사회적 배치들, 언어적 배치들, 군사적 배치들)를 들면서 상세히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

들뢰즈 & 가타리

배치는 현행적인 것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들뢰즈의 개념 쌍(현행적/잠재적)을 도입한다. 잠재적인 것은 실재하지만 현행적이지 않은, 그러나 가능한 것이다. 모든 배치는 자신의 개별적 특이성을 구성하는 현행적 부분을 갖지만, 동시에 보편적 특이성, 즉 가능성들의 공간도 갖는다. 데란다는 상이한 많은 과학들(분자 생물학, 천체물리학, 화학, 위상기하학)을 가로지르며 이를 예증하려고 시도한다. 외연/강도의 구별은 현행성/잠재성과 연결될 때 그 형이상학적 의미를 얻는다. 현행성은 외연적 지도 위에 그려지고, 잠재성은 강도의 지도를 요구한다. 외연적 지도 위에 그려지는 몰적인 선과 분자적 선들은 배치의 현행적 국면을 묘사한다. 그런데 외연적 지도에 묘사하기 어려운 종류의 선이 있다. 바로 탈주 선이다. 이는 현행성과 잠재성을 잇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데, 이를 지도에 표기하려면 상당히 복잡한 작업이 필요하다.

원서 & 저자 마누엘 데란다

여기서 저자의 가장 대담한 시도가 등장한다. 마지막 장인 「위상 공간에서의 들뢰즈」에서는 모든 양상을 필연과 가능으로 환원하는 낡은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해 잠재성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배치가 변할 수 있는 방식들의 집합. 이는 수학적으로만 지도에 표기할 수 있는데, 이 지도가 위상 공간이다. 그 공간을 특징짓는 특이점들의 궤적과 그 궤적이 무한히 접근하는 끌개들을 조사하면 그 공간을 결정짓는 어떤 경향이 발견된다. 끌개는 특이점들의 집합이 가닿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결코 현행화되지 않지만, 그 공간에 실재적 효과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잠재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잠재적인 것은 대칭 깨짐 연쇄를 통해 점차 계량 가능한 것이 된다. 강도적 문턱들은 언제나 n-1의 차원을 갖는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유물론적 형이상학에서 가능성의 공간들의 구조는 언제나 초월적이지 않고 내재적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개별 대상들이 잠재적 다양체가 되는 방식은 들뢰즈가 제기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어떻게 잠재적인 것이 현행적인 것이 되는가에 대해, 즉 개별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그는 들뢰즈의 개념을 수학과 과학의 용어로 번역하면서 과학철학의 문제를 푸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이는 상이한 학문들과 들뢰즈의 사유를 엮어 형이상학이 묻힌 자리 위에 그것을 다시 살려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현대 수학과 과학의 최근 흐름과 들뢰즈 연구의 공명을 증명하는 저자의 노력은 이 책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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