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의 세계: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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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세계: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1.1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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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29강>_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화학의 세계: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5. 근대 과학과 인간의 삶’ 제 29강 이덕환 명예교수(서강대 화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생태계에서 자립을 꿈꾸는 화학의 세계


이덕환 교수는 “화학 물질이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도 존재할 수” 없음에도 이제까지 화학에 대한 논의가 “화학의 화려한 성과와 끔찍한 부작용에 관한 문제”에 그치고 있다며, 198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독특한 인식을 담고 있는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The Same and Not the Same)』라는 책의 저자로서 “시인과 사상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로알드 호프만(Roald Hoffmann)이 강조하는 화학의 세계를 살펴본다. 즉 화학의 핵심을 “물질을 만들어내는 합성, 혼합물의 조성을 밝혀내는 분석, 그리고 혼합물의 분리와 정제”라고 보면서, 호프만이 이야기하는 화학의 동이부동(同而不同)한, “대립적이고 이원적인 특성을 소개”한다. 그럴 때 화학이란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 사이의 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넘어 “그런 구별 자체를 부정”하며 “대립을 통한 아름다움”을 학문적 생명으로 삼는 데 더해 “생태계로부터 자립”과 “사회 민주화에 대한 기여”를 그 성과로서 이루어왔다고 평한다. 

지난 12월 5일, 이덕환 명예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29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20세기는 화려한 ‘화학의 세기’였다.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물질(物質)의 정체와 변환에 대한 화학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물질적 풍요가 실현되었다. 화학을 이용한 녹색 혁명과 생활·위생 환경 개선의 성과는 대단했다. 

그런데도 화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화학이 만들어낸 오염과 독성이 자연 환경과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화학 물질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화학 혐오증(chemophobia)도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화학 물질이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도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화학과 화학 물질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자세는 비겁하고 패배주의적인 것이다.

화학에 대한 논의는 화학의 화려한 성과와 끔찍한 부작용에 관한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는 198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고, 시인과 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로알드 호프만이 강조하는 화학의 세계를 살펴본다.

1. 화학의 시인, 로알드 호프만

대학에서도 인문학과 예술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호프만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인과 사상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화학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호프만은 「산소」(2001)1)와 「그래야만 했는데」(2006) 등의 희곡도 썼고, 1988년 미국의 공영방송(PBS)을 통해 「화학의 세계」라는 화학 대중화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The Same and Not the Same)』(1995)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독특한 인식과 사상을 담은 호프만의 수상록이다. 호프만은 특히 화학의 창조적 예술성에 주목한다. 화학에 숨겨진 다양한 대립적 이원성(duality)에 대한 호프만의 해석이 흥미롭다.

1) 문학과 과학의 만남

1993년 서울대학교의 제4회 서남(瑞南) 초청 강좌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호프만 교수는 미당 서정주 시인과의 대담에서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정신적이고 영적(靈的)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영적 존재가 반드시 신(神)의 존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영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수용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심지어 수학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도 음악이나 미술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평형(平衡)을 이루고, 문학과 윤리가 기본이 되며, 거기에 과학이 첨가되어 조화로운 기술 문명을 형성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호프만 교수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확실한 입장을 밝혔다. 자연과 인간을 가장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들이 앞장서서 다른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에 필요한 정확한 과학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과학자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특히 과학의 오용과 남용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부작용을 최소화시켜야 하는 것이 과학자의 막중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장도 빼놓지 않는다.

2) 과학 연극 「산소」 

희곡 「산소」는 호프만이 경구 피임약을 처음 개발한 스탠퍼드의 화학자 칼 제라시와 함께 쓴 작품이다. 과학연극(SciArt) 「산소」의 주제는 18세기 산소 발견의 사례를 통해서 과학적 발견의 우선권과 과학자의 윤리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다. 과학적 혁명과 정치적 성향의 관계도 「산소」의 흥미로운 소재이다. 

2. 화학의 역사 

화학의 역사는 매우 길다. 인류가 50만 년 전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화학의 시작이었다. 화학적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가 물질의 화학적 정체를 본격적으로 알아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에 시작된 근대 과학의 결과였다.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이 19세기 초에 ‘원자’의 개념을 이용해서 복잡한 화학적 변화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자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확실하게 밝혀낸 것은 1905년 물속에 떠 있는 꽃가루의 브라운 운동을 분석한 아인슈타인이었다.

현대의 화학은 118종의 ‘원소’와 원자들의 화학결합(化學結合)으로 만들어지는 ‘분자’들의 정체와 변환을 이해하기 위한 중심(中心) 과학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분자의 종류는 1억 종이 넘고, 지금도 하루에 수천 종의 새로운 분자들이 확인되거나 합성되고 있다. 화학은 일상생활과 산업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실용(實用) 과학이기도 하다.

3.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한 화학 

화학의 핵심은 물질을 만들어내는 합성(合成), 혼합물의 조성을 밝혀내는 분석(分析), 그리고 혼합물의 분리(分離)와 정제(精製)다. 물리학적 이론을 근거로 화학 물질의 성질과 변환을 설명하는 물리화학(物理化學)과 화학물리(化學物理)도 있다. 이 글에서는 로알드 호프만이 강조하는 화학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한(同而不同)’ 대립적이고 이원적인 특성을 소개한다.

1) 화학 물질의 정체성 

화학에서는 자연에 존재하거나 우리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물질의 정체와 그 변환을 연구한다. 물질에 대한 화학적 의문은 “이것은 무엇인가?”에서 시작된다. 정체성에 대한 화학적 질문은 사실 매우 복잡한 것이다. 자연이나 실험실에서 화학 물질이 합성되는 과정 때문에 모든 물질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분자 세계의 다양성도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물리적으로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화학적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동위 원소도 있다. 다행히 분자의 생리적 기능은 동위 원소의 구성이 다르다고 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분자들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분자 세계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한 정체성의 핵심이다.

2) 화학적 이원성의 매력

화학에서의 대립성이나 이원성은 단순한 이원론을 넘어선다. 화학의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테제’와 ‘안티테제’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다차원적인 것이다. 어떤 분자는 다른 분자와 비슷할 수도 있고, 해롭거나 이로울 수도 있고, 발견되거나 창조될 수도 있고, 조용히 서 있거나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런 대립을 통한 아름다움이 화학의 생명이다.

화학에서는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의 구분이 애매해진다. 생물체에서만 만들어진다고 믿었던 복잡한 유기 화합물을 실험실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자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물질을 합성하기도 한다. 결국 화학은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 사이의 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구별 자체를 부정해버렸다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우리의 생활과 산업이 모두 화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학은 화학자들에게도 흥미로운 것이지만, 화학을 이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것이다. 화학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양극화되고, 이원화됨으로써 긴박한 대립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런 대립을 통해 쉽게 볼 수 없는 자연의 긴박감을 인식하게 된다.

화학 물질의 정체에서 시작되는 화학자들의 의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정체에 대한 그런 의문이 우리 내부의 감정 세계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자 세계에 의해서 연결되는 위험성과 안전성과 같은 대립적인 심리 요소들로 표현되는 물질과 마음의 연결 고리를 통해서 우리의 화학 물질에 대한 이원적인 인식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4. 화학의 창조적 예술성

과학은 대부분 자연에서 과학적 사실을 ‘발견(發見)’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한 ‘창조(創造)’를 목표로 하는 예술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1) 과학과 발견

과학은 ‘자연에 숨겨진 비밀을 벗겨내는 것’이라는 진부한 관념에는 역사적, 심리적, 사회적 이유가 담겨 있다. 발견의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환원주의는 과학이 추구하는 이해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창조하는 것은 환원주의적 분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이해에 해당한다. 

2) 화학적 합성의 찬가

화학의 가장 유별난 특징은 새로운 분자를 창조해내는 합성이다. 새로운 물질의 합성에 대해서는 환원주의적 설명이 의미가 없다. 화학에서의 창조는 발견과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화학자들은 새로운 분자만 합성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자의 합성 방법도 창조해내고 있다. 

더욱이 화학자들은 분자의 ‘구조’에서 다양한 미학적 요소를 찾는다. 호프만은 분자의 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학적 요소를 분석했다. 분자의 세계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형식미(formal beauty) 이외에도 유용성(utility), 풍요성(richness), 함축성(concentration), 새로움(novelty) 등 다른 분야에서는 찾기 어려운 미학적 요소가 작동한다.

결국 새로운 분자를 만들어내는 화학 합성은 화학의 핵심이 되는 멋진 활동이고, 그런 합성이 있기 때문에 화학은 예술에 가까운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화학의 핵심에는 역시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분자가 있기 마련이다. 분자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과학적인 필요성, 경제적인 고려, 전통과 미학적인 고려 등에 의해 밝혀졌다.

3) 환원주의의 용도와 한계

학문에도 일종의 계급 질서가 있고, 분야에 따라서 “이해”의 의미가 다르며, 이해의 수준에 대한 상대적 가치도 서로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의 실체는 다양하다. 이해에는 하나의 현상을 더욱 깊은 것으로 환원시키는 고전적 환원주의에 해당하는 ‘수직적’ 이해도 있지만, 관심으로 가진 현상을 같은 분야 안에서 분석하고, 같은 정도의 복잡성을 가진 개념과의 관계를 알아내는 ‘수평적’ 이해도 있다. 수평적 이해는 환원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가 현대 과학의 발전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환원주의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예술이나 인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미 확립되어 있는 개념의 복잡성과 계급 질서의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이해가 정말 인간적인 이해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환원주의적 철학에 대한 집착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수직적 이해를 유일한 이해의 방법이라고 고집한다면, 과학자와 예술가 또는 인문학자와의 관계는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다. 자칫하면 과학자들 스스로가 환원적 이해가 가능한 몇 가지 문제로 한정되는 아주 작은 상자에 갇혀버리게 될 수 있다.

5. 생태계로부터 자립과 민주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은 화학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화학 물질을 소비하면서 생존한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식량, 소재, 연료를 모두 자연 생태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의 화학은 인류에게 생태계로부터의 자립과 민주화의 꿈을 실현시켜주었다. 

1) 생태계로부터의 자립

수렵 채취 시대의 인간은 식물의 열매, 줄기, 뿌리와 동물의 고기를 식량으로 소비했고, 자연에서 채취하는 돌과 나무로 도구를 만들었으며, 마른 장작과 낙엽을 연료로 썼다. 인간도 야생의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야만 했다.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면서 인류는 거칠고 위험한 야생과 분리된 마을과 도시에서 비교적 안전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인구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인류는 여전히 자연 생태계에 의존해야만 했다. 

19세기 중엽에 화학적 합성 기술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연 생태계로부터의 본격적인 자립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소재를 마음껏 만들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에 본격적인 화학 산업이 등장하자 사정은 더욱 빠르게 변하면서 삶의 질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제는 식량과 소재의 과소비에 의한 천연자원과 생물자원의 고갈과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2) 사회 민주화에 대한 기여

화학 기술을 활용하지 못했던 과거의 세상은 결코 낭만적인 낙원이 아니었다. 과거의 삶이 자연과 조화로운 것이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극도로 비참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견뎌낼 수밖에 없는 극심한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지극히 비윤리적이다. 그런 사회일수록 일반적으로 개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극심한 것도 사실이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현대 기술이 가져다준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성과다.

문명의 혜택은 극소수의 지배층에게만 돌아갔다. 실제로 생산성이 극도로 낮았던 전통적인 농경 사회에서는 오히려 사회적 차별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 농경에서는 7명의 농민이 일을 해야만 10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산된 식량은 실질적으로 지배 계급에 속하는 3명이 독점했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런 생활이 19세기 말까지도 계속되었다. 

현대의 화학 집약적 농업은 20세기 초 독일의 프리츠 하버에 의해 개발된 ‘질소 고정법’과 1960년대의 녹색 혁명으로 완성되었다. 화학 비료와 합성 농약이 수질과 토양 오염을 일으키고, 생태계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학 농업이 아니라면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를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적 화학 농업을 포기하고 전통 유기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이웃에 대한 가장 단순한 의미의 동정심도 없는 비인간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생물 중에서 유일하게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 사회를 이룩한 생물 종이다. 인류의 생활은 과학과 기술에 의해 엄청나게 바뀌었다.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화는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화학을 비롯한 과학이 사회 민주화를 이룩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는 뜻이다.

3) 염료와 사회적 차별

거의 모든 전통 사회에서 옷의 색깔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었다. 엄격한 복식 제도는 염료의 생산이 매우 어려웠던 탓이 크다. 대부분의 염료 생산은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했다. 19세기에 석탄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산업 폐기물인 콜타르에서 얻은 아닐린으로부터 짙은 보라색 염료를 인공적으로 합성하게 되면서 옷의 색깔로 신분을 과시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화려한 색깔의 옷을 마음대로 골라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화학의 발전이 사회적 신분의 격차를 과시하는 수단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6. 화학자의 사회적 책무성

과학자들이 성직자들처럼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에게 호기심, 이타심, 합리적 동기 등이 원동력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비합리적이고 어둡고 칙칙한 심리적 요소가 진리를 추구하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과학자도 역시 윤리적으로 완벽한 인간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 사회적 재앙

화학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재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 나쁜 물질은 없다. 그런 물질을 다루는 우리 인간의 부주의가 문제가 될 뿐이다. 세상에 근본적으로 나쁜 분자는 없다. 분자는 분자일 뿐이다. 화학자들은 그런 분자를 변환시켜서 새로운 분자를 만들고, 기업가들은 그것을 판매하며, 우리 모두는 그런 분자를 사용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화학 물질의 이용과 오용에 책임이 있다.

과학자들은 스스로의 본성 때문에 창조와 발견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과학자들은 자신의 창조물이 어떻게 이용되고, 오용되는지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리고 새로운 물질의 위험성과 오용 가능성을 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사실 과학자들은 인류에 대해 그런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 되는 셈이다.

화학에 의한 물질적 풍요에도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 산업적 합성에 사용되는 천연자원의 고갈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합성 물질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폐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무시하기 어렵다. 아무리 인체와 환경에 무해한 합성 물질이라도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인공 합성 물질을 포기할 수는 없다. 플라스틱을 포기하면 목재 수요는 다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디고나 알리자린 같은 합성염료를 포기하면 코치닐, 샤프론, 헤나와 같은 천연 염료가 더 많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천연 목재, 천연 염료, 천연 의약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땅과 물을 확보하기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무작정 천연물을 고집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2) 사회적 책무성

과학자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과학에서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실제로 과학에서도 실수와 오류, 그리고 의도적인 속임수를 피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것이 ‘진리(眞理)’가 아니라 ‘지식(知識)’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실 과학자는 예술가에 훨씬 더 가까운 존재다. 화학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화학자는 세상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을 창조해내는 예술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높은 수준의 윤리를 기대하지 않는다. 

한편 정부·기업·언론의 전문성과 사회적 책무성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모든 화학 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사용법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업은 제품의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고, 실수가 드러날 경우에는 마땅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부의 책임도 무겁다. 언론과 소비자 단체의 사회적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 스스로 합리적인 태도로 화학 물질에 대한 상식을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과 안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화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더욱이 화학자들은 극도로 단순화된 합리성을 과도하게 추구하기 쉬운 습성을 가지고 있고, 개인적인 유혹을 쉽게 물리치기 어려운 성향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자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화학 재난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화학자들이 화학 물질의 부작용에 대하여 가장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화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화학적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3) 환경에 대한 책무성

환경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환경오염에 대한 사회의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화학자들은 환경오염의 모든 책임을 자신들에게 떠넘기는 사회의 인식에 대해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자들은 환경에 대한 사회의 관심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화학자들이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 화학 물질의 정체와 위험성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화학자이기 때문이다. 화학자들은 그런 정보를 효율적으로 사회에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화학 물질의 오용과 남용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해주어야만 한다. 화학 물질의 유용성과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아는 것이 민주 시민의 권리이면서 무거운 의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도 화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다.  

그런 과정에서 화학자들은 화학적 사실에 근거를 둔 과학적인 ‘위험 평가’와 심리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위험 인식’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환경 문제에 대한 정확한 위험 평가를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양의 물질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확인해야만 하기 때문에 고도의 화학적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위험의 인식에는 ‘분노 요소’라고 부를 수 있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4) 교육의 역할

교육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부분이고, 국민의 특권이면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그런 교육이 실패의 위기에 빠져 있다. 현실적으로 국민들의 과학에 대한 무지가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 부족이 권력의 기반을 위협하거나, 경제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는 과학을 통해 세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비결(秘訣)이나 비합리적인 신(神)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비주의가 바로 그런 결과다. 두 번째 문제는 과학에 대한 무지가 민주적 절차를 가로막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는 보통 사람들도 유전공학의 안정성, 폐기물 처리장의 위치 선정, 공장의 위험성 파악, 습관성 의약품의 규제 등의 문제에 직접 참여해야만 한다. 결정권은 전문가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손에 주어져 있다. 과학자들의 역할은 보통 사람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데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국민들에게도 의무가 있다. 스스로 과학에 대해 충분히 이해함으로써 사악한 의도를 가진 전문가들의 유혹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서의 화학 교육이 중요하다. 화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과 관심 있는 국민을 대상으로 효율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때 화학 교육에서는 핵심적인 지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7. 화학의 미래

앞으로도 화학은 일상생활과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화학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화학 기술의 활용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녹색 화학(green chemistry)’을 추구해야 한다. 녹색 화학은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폐해를 줄이고, 생산·소비·폐기의 효율 극대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녹색 화학과 함께 사회적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소비 절약도 필요하다.

그리고 합성 공정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부산물이나 폐기물의 양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독성이 강한 중금속이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강한 산(酸)·염기(鹽基)의 사용도 줄여야 한다. 독성이 없고, 공기 중에서 안정하고, 간단한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회수할 수 있는 촉매나 생체에서 사용되는 효소의 작용을 모방해 효율이 높은 촉매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산업적 합성에 사용하는 원료도 바꿔야 한다. 석유를 이용해서 합성한 물질은 재활용이 어렵다. 석유와 같은 소모성 자원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대신 사용한 제품을 회수하여 재활용할 수 있는 원료들을 활용해야 한다. 바이오매스(biomass)가 중요한 자원이 된다.

합성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촉매(觸媒)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상온(常溫)에서의 합성을 일반화시켜야 한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용매(溶媒)의 사용도 줄여야 한다. 합성 물질의 생산·소비·폐기의 모든 과정에서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독성을 최소화하고, 생산 과정의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생산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서 생산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화학이 지향하는 미래는 78억의 인구 모두가 함께 향유하는 화학적 ‘탄소 문화’의 세상이다. 물론 불필요한 낭비와 비효율적 소비는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가장 손쉬운 해결책인 인구의 감소나 삶의 질 저하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태양이 빛나고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이도록 해주고, 우주에 신비스러운 생명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며, 초연결 사회를 지향하는 인류 문명이 꽃필 수 있도록 해준 탄소의 소중함과 유용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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