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상태바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1.10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간소개]

■ 광기와 우연의 역사: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388쪽

저자 츠바이크는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로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색하는 주옥같은 전기를 남겼다. 츠바이크는 인물의 내적 고뇌와 갈등,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당시의 시대정신에 관심을 쏟으며 심리학적 통찰력을 발휘한다.

총 14편의 역사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는 키케로에서 메흐메트 2세, 발보아, 헨델, 루제 드 릴, 웰링턴, 나폴레옹, 괴테, 서터, 도스토옙스키, 필드, 톨스토이, 스콧, 레닌 그리고 윌슨에 이르기까지 서양사의 획을 그은 인물과 이 인물들이 만든 운명적인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에피소드들은 기원전 1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나 사건들을 다룬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남자이며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그룹에는 서구 문명이 세계의 주도권을 쥐는 데 힘을 보탠 탐험가와 식민지 개척자, 기술발전의 선구자들(발보아, 서터, 스콧과 필드)이 속해 있다. 유럽인 대부분이 식민지 개척의 역사를 진보의 역사로 여겼던 시절, 츠바이크는 이 에피소드들에서 그런 진보의 추악한 면을 들여다본다. 발보아와 서터의 이야기는 신대륙의 발견과 정복의 역사가 실은 약탈과 살인으로 얼룩진 야만의 역사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진보의 양면성을 고려하면 일개 건달에 불과한 발보아 같은 인물이 초인적 자기희생을 감수해 가며 문명의 진보에 공헌했다는 아이러니가 이해된다. 자신을 오스트리아인이라기보다는 유럽인이라고 여겼던 츠바이크는 기술과 학문이 발전하여 공간적 거리가 좁혀질수록 유럽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져서 유럽 공동체라는 감정이 다수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유럽의 강대국들은 각자 보유한 기술을 앞세워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무리한 경쟁을 벌였고 민족주의적 감정을 부추겼다. 첨단 장비를 동원한 스콧의 남극 탐험조차도 대영제국의 영광에 봉사한다는 구닥다리 명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이성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감당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기에 과학 기술의 진보가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염려로 츠바이크는 해저 케이블의 영웅 필드의 에피소드를 마무리한다. “시간과 공간을 정복한 인류가 영원히 하나로 뭉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인류는 이 웅대한 통합을 파괴하려는 광기에 계속 사로잡혀서 자연을 통제하는 바로 그 능력으로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려 드니 안타까울 뿐이다.” 80년 전에 쓴 구절이 지금 읽어도 너무 공감이 가지 않는가!

두 번째 그룹은 운명의 순간을 겪는 작가와 작곡자들(헨델, 루제 드 릴, 괴테,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을 다루고 있다. 츠바이크는 이 중 세 에피소드(헨델, 루제 드 릴, 괴테)에서 마치 창작의 열기에 휘말린 예술가를 숨어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이 걸작이 탄생한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여기서 우연(절망의 순간에 읽은 신의 말씀, 혁명을 적군으로부터 지켜내겠다는 격앙된 분위기, 노년에 찾아온 비극적 사랑)은 촉매가 되어서 예술가의 창조력을 최고도로 끌어올린다.
 
세 번째 그룹은 키케로, 메흐메트 2세, 그루쉬 원수, 레닌, 윌슨과 같은 전투지휘관과 정치가를 다룬다.

츠바이크는 “늘 패배한 자의 운명에 마음이 가고, 전기를 쓸 때면 늘 현실 공간에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도덕적 의미에서 옳게 행동한 인물에게 마음이 간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에서도 승승장구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패배자들에 초점을 맞춘다. 츠바이크는 “윤리적 각성과 화해를 통한 세계의 평화”라는 꿈을 추구했다. 비록 용기가 부족하고 우유부단하며 패배하기도 했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매진한 “별처럼 빛나는” 인물들의 삶은 우리에게 공감과 감동 그리고 각성을 안겨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