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심리와 동물 행동 진화의 연속성을 입증한 사회생물학, 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의 기원과도 같은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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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심리와 동물 행동 진화의 연속성을 입증한 사회생물학, 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의 기원과도 같은 고전!
  • 김성한 전주교육대·진화윤리학
  • 승인 2021.0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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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에게 듣는다_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찰스 다윈 지음, 김성한 옮김, 사이언스북스, 532쪽, 2020.11)

■ 역자에게 듣는다_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찰스 다윈 지음, 김성한 옮김, 사이언스북스, 532쪽, 2020.11)

우리가 뜻하지 않게 정글을 탐험하다 원시 부족과 마주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표정이나 행동 등을 통해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그들 또한 즐거울 때는 웃고, 슬플 땐 울며, 화가 날 때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마음 상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을까? 이는 단지 인간끼리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반려동물, 특히 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들에게 감정이 없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반려동물이 어떤 표정이나 행동을 보여줄 때, 그들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해 낸다. 그런데 같은 종이 아님에도 우리가 그들의 감정 상태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러한 현상들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뿐, 왜 그것이 가능한지를 좀처럼 파악해 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이러한 공통적인 현상의 이면을 확인해 보고자 했고, 그로부터 자신이 창안해 낸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증거를 찾아내고자 했다. 바로 이와 같은 노력의 산물이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은 1859년 다윈이 현대 진화론의 탄생을 알리며 <종의 기원>을 출간하고, 1871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인간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됨을 보이기 위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출간한 지 불과 1년 만에 출간한 책이다. 애초에 이 책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의 일부로 포함시키려 했는데, 내용이 너무 많다보니 별개의 책으로 출간했다고 한다. 

다윈이 책에서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인간과 동물이 희로애락을 느낄 때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표정이나 행동, 그리고 신경 생리학적·해부학적 특징을 면밀히 분석하여 양자가 공통의 기원을 가지며, 진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음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다윈이 표정이나 행동에 대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막상 다윈이 진화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진화에 대한 설명을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를 살펴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이 진화를 옹호하고 있는 서적인지, 아니면 표정이나 행동을 분석하고 있는 서적인지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가 놓쳐선 안 되는 것은 다윈이 표정이나 행동에 대한 서술, 그리고 그 이면을 이루고 있는 원리 등을 설명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인간과 동물의 공통성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다윈은 인간에게서 확인되는 얼굴 근육을 원숭이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비록 여기서 직접적으로 진화론을 거론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주장을 통해 인간과 여타 동물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이들이 모두 진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된 존재임을 우회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다윈이 책에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의 공통성을 보이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방법은 가설 연역적 방법이다. 이는 어떤 가설이 참임을 전제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한 여러 증거 자료들을 제시하는 방법인데, 다윈은 궁극적으로는 진화론이 참임을, 좀 더 가깝게는 인류에게 나타나는 감정 표현이 공통적임을 전제로 삼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보하려 한다. 그가 이러한 증거의 후보로 생각하는 대상은 유아와 아동, 정신병자, 선천적인 맹인, 다른 인종들, 얼굴 근육에 전기 자극을 주었을 때 나타나는 표정, 예술 작품 등이다. 이와 같은 후보군을 선정한 이유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인 전형적 표정이 나타난다면 이를 대체로 선천적인 생물학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타인들의 표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타인들을 따라 할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어떤 감정 상태에서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표정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 표정이 인류에게 공통된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윈은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정 감정 상태에서의 표정이나 행동이 표현될 때의 구체적인 모습과 신경생리학적인 변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함을 밝힘으로써 궁극적으로 진화론이 인간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됨을 입증하고자 했다.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의 성공에 힘입어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또한 출간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인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는데, 이렇게 된 데에는 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동물을 의인화하고 있다는 문제, 자료의 수집과 처리 방식의 문제, 양육보다 본성에 편향되고 있다는 문제, 그리고 후천적 형질의 습득을 인정하는 라마르크주의적 설명의 문제 등이 한몫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이후 진화론이 오용됨으로써 본의 아니게 약육강식과 생물학적 결정론 같은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오용으로 인간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이 인간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임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오용될 가능성 때문에 이를 외면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 1970년대에 들어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을 출간한 이래, 인간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가 재차 각광을 받고 있는데, 진화심리학은 이를 대표하는 분야 중 하나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진화론적인 접근을 다룬 다윈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도 재차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최근 이 책은 감정과 표정을 그 자체로 연구하는 폴 에크만(Paul Ekman)으로 대표되는 미세 표정학이라는 분야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은 이런저런 분야에서의 역할로 부활의 징후를 보이고 있으며, 최소한 이들 분야에 대한 심화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은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한 전주교육대·진화윤리학

진화 윤리학자. 「도덕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과 다윈주의 윤리설」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동물해방』, 『사회생물학과 윤리』, 『섹슈얼리티의 진화』, 『나누고 누리며 살아가는 세상 만들기』, 『어느 철학자의 농활과 나누는 삶 이야기』 등을 쓰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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