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전사 스코트족(the Scots)의 나라 스코틀랜드(Scot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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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전사 스코트족(the Scots)의 나라 스코틀랜드(Scotland)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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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36)_ 용감한 전사 스코트족(the Scots)의 나라 스코틀랜드(Scotland)

 

“나는 스코트인이다, 그러므로 나는 싸워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개척해야만 했다.”  
“I am a Scotsman, therefore I had to fight my way into the world.” 

                            -------- 19세기 시인이자 소설가인 월터 스코트경

 

조선 선조와 인조대의 대학자요,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의 4대 문장가로 손꼽히는 상촌 신흠(1566~1628년) 선인의 『象村集』을 읽다보니 책의 서문을 써 준 인사들의 면면이 여간 아니다. 선생을 포함 계곡 장유, 택당 이식과 함께 조선 중기의 4대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인 월사 이정귀의 서문도 들어 있었다. 여러 인물들 가운데 특이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몇 간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혈통을 잊지 않으려고 성씨를 지어내고, 이름에 항렬을 사용한다. 윗대 이름의 일부에 새로운 이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계보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상촌집에서 내가 본 姓들은 영 낯설었다. 粼(물 맑을 린), 稚(어릴 치), 夢(꿈 몽) 등 아무래도 우리나라 성이 아닌 듯 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성의 세 사람이 이름은 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었다. 흥미롭게도/공교롭게도 各人의 名字가 옥보(玉甫), 승보(繩甫), 부보(符甫)로 고대에 남자 이름 후미에 붙어 미칭(美稱)으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父’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가리키는 접사로 기능하는 ‘보(甫, fǔ)’를 공유하고 있었다. 살펴보니 이름이 ‘부’나 ‘보’로 끝나는 역사적 인물이 무척 많다. 신라장군 이사부(異斯夫), 거칠부(居柒夫), 장건(張騫)이 서역행에 대동한 흉노 출신 통역 감보(甘甫), 詩聖이라 불리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 字는 子美)...

요즘은 듣기 힘들지만, 과거에 연말이면 특히 12월 31일에 거리 어디에선가 빠짐없이 들려오던 스코틀랜드 노래가 있었다. 로버트 번스(Robert Burns)가 1788년에 쓴 “Auld Lang Syne”을 전통 민요로 만든 음악이 그것이다. “Auld Lang Syne”이라는 스코틀랜드 말은 표준 영어로 “old long since”, “days gone by”, “old times” 등으로 번역되는데, 합창 부분 첫머리에 “For auld lang syne”이 나오므로 “옛날을 위하여(for the sake of old times)”라고 옮기는 편이 더 어울린다. 

수년 전 “연기 자욱한 오래된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에든버러(Edinburgh)에 갔다. 5월 하순치고는 날씨가 춥고 고약했다. 무엇보다 음산했다. 하이랜드(highland) 특유의 을씨년스러움과 회색빛 톤의 건축물들이 이뤄내는 음산함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영어 Edinburgh의 기원은 스코틀랜드 켈트어 뚜운 에티언누(Dùn Èideann[ˈt̪uːn ˈeːtʲən̪ˠ])에 있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 말의 의미는 “에이딘 (성이 있는) 언덕” 또는 “에이딘 (언덕 위의) 성채[요새]”(the dun or hillfort of Eidyn)다. 영어 dun은 켈트어 Dùn에서 유입되었는데, 인도 지명 Kashmir, Jaisalmer에 쓰인 ’mir’, ‘mer’처럼 “언덕(위의 성채/도시)”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Èideann을 지명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고대의 지명은 부족이나 부족장의 이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위의 인도 지명에서 Kash는 부족명이고, Jaisal은 인명이다.  

Edinburgh는 스카치위스키로 유명한 나라 스코틀랜드의 수도다. 스코틀랜드는 “스코트족의 땅”이라는 말이다. 영어 land는 고대 게르만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에딘버러는 에든버러셔(Edinburghshire)라고도 불렸다. 버러는 게르만어에서 들어온 city라는 의미의 말이고 셔(shire)는 county를 가리키는 어휘다. 스코트족에 대해서는 차후 살펴보려 한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사람은 주거지가 필요하다. 무리의 생활 기반이 농경이냐 상업이냐에 따라 주거지의 특성은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안정된 사회는 구성원들의 집회나 단순한 만남과 같은 활동을 위한 공간을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안전지역이 필요하였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주거지 주변에 울타리를 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슬라브어 고로드, 게르만어 부르그, 그리스어 아크로폴리스, 인도어 미르(메르) 등이 그와 같은 집회와 방어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도시는 울타리 내부에 종교 의식을 거행할 사원을 중심으로 교역을 위한 시장 그리고 정치, 행정, 사법 기관 등이 자리 잡으면서 현대적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게르만어 부르그(burg)에서 비롯된 영어 버러(borough)는 애당초 城市를 의미했다. 역시 같은 고대 게르만어에서 파생된 후기 라틴어 부르구스(burgus)의 후손인 프랑스어 bourg, 이탈리어어 borgo 등이 같은 뜻의 말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성곽도시를 뿌르(pur)라 지칭했다. 자이뿌르, 우다이뿌르 등의 지명에서 그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이 전파되어 태국에서는 촌부리에서 보듯이 부리(buri)가 되었다. 우리말에도 영향을 미쳐 황산벌, 서라벌, 산굼부리(제주도의 지명), 바람부리(강릉의 지명)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지명을 보면 그 지역이 어떤 집단에 의해 건설되었는지, 또는 어떤 집단의 언어가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도시 이름이 아바드(-abad)로 끝나면 그 곳은 이슬람의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라마바드, 하이데라바드가 그 예다. 돌궐어로 도시는 켄트(kent) 또는 칸트(qand)라고 하는데 우즈베키스탄의 타시켄트, 사마르칸트가 있다. 이 도시들은 한때 돌궐족의 주요 활동 무대였고 현재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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