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상태바
배려
  • 김향은 고신대학교·가정학
  • 승인 2021.01.03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카데미쿠스]

사범대 재학 시절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갔었다. 하루는 실습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청각 장애아 학교로 가서 그곳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는 과제가 주어졌다. 교장 수녀님의 안내로 학교 곳곳을 살펴봤다. 개인적으로는 특수학교를 처음 가봤는데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특별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통합교육을 하고 있는 것도 새로웠고 고등부 수업으로 재봉교실, 도예교실 등 다양한 취업 준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마지막 견학 일정은 초등반 수업을 참관하는 것이었다. 1학년에서 3학년까지로 구성된 통합반의 국어 시간이었다. 손님 소개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전에 참관했던 고등반의 실기 수업은 수화로 진행되는 조용한 수업이었는데 이번 수업은 교사의 음성으로 진행되는 활기찬 수업이었다. 단어 하나하나 신경 써서 천천히 큰 소리로 또렷하게 발음하는 일에 혼신을 기울이는 교사의 모습은 감탄스럽고 존경스러웠다. 교생 일동은 교실 뒤편에서 관찰했다. 

그때 모두의 시선을 빼앗은 한 아이가 있었다. 반에서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유난히 산만한 행동을 했다.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대학에서 교육심리학 시간에 배운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를 의심케 했다. 그치지 않는 소란이 눈에 거슬리고 짜증스러웠다. 교사에 대한 평가는 불과 몇 초 만에 역전됐다. 아이를 제지하지 않고 방관하는 교사가 무책임하고 무능하게 생각됐다. 

한데 개의치 않고 수업을 계속 진행해오던 선생님이 갑자기 수업을 멈추고는 우리 교생들을 향해 돌발 질문을 던졌다. “뒤에 계신 선생님들, 이 아이가 지금 뭐라고 하는지 아시겠어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도대체 말소리도 아니고 저렇게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를 우리보고 어떻게 알아들으라고 물어보시는 건지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교생들 모두 묵묵부답으로 있었다. 그러자 교생들에게 힌트가 주어졌다. “사실 이 아이가 아까부터 선생님들 얘기를 한 거였답니다.” 

황당했다. ‘잘 나가던 수업을 이리 망쳐놓고 있는 것도 괘씸한데, 그게 바로 우리 교생들 때문이었다고’? 그러고 보니 아이가 아까 소리를 지를 때 몇 번이나 우리를 향해 뒤돌아보며 손가락질을 해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가 수업을 크게 훼방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보고 뭐라고 했다면, 저리도 법석을 피웠다면... ‘낯선 이가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영 불편하고 싫어서 그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별 기대 없이 정답을 기다렸다.

“이 아이가 아까부터 뭐라고 했냐 하면요... 뒤에 계신 선생님들 서 계시면 다리 아프실 텐데 자기 의자를 갖다 드리겠답니다. 제가 몇 번이나 괜찮다고 했는데도 선생님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지 자기가 서서 수업을 할 테니 선생님들께 자기 의자를 드려 달라고 하네요.” 충격이었다. 유구무언이었다. 부끄러웠다. 천사 같은 아이의 고운 마음을 몰라보고 수업 방해아, 학습 부적응아, 행동 장애아로 선무당 사람 잡듯 오해하고 미워한 것이 미안했다. 아이의 착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일은 필자로 하여금 통렬히 반성하고 성찰하게 하였다. 섣부른 생각으로 잘못 진단하고 해석했던 실수를 뼈아픈 교훈으로 되새기고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으려고 각별히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또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자세, 태도의 모범 답안과도 같은 아름다운 본보기를 얻게 되었다. 상대방의 입장을 민감하고 따뜻하게 헤아리는 배려의 가치와 효과, 실천을 온몸으로 전율하며 배웠다. 꼬마 사부님으로부터 받은 교생실습이 평생의 인생 실습이 되었다.

 

김향은 고신대학교·가정학

고려대학교 가정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가정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역서로 『청소년 자녀에게 이렇게 하세요』(공역), 『성교육학』(공저), 『자녀의 자아존중감과 정서기능을 키워주는 부모』(공저), 『가족희생양이 된 자녀의 심리와 상담』(공역), 『청소년복지론』(공저)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