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평가를 둘러싼 기득권의 공생 구조 – ­­왜 문제 많은 대학평가 제도는 변화되기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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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평가를 둘러싼 기득권의 공생 구조 – ­­왜 문제 많은 대학평가 제도는 변화되기 어려울까?
  •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 승인 2021.0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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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용의 ‘우문현답’]_ 대학직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정책학에서는 특정 정책 영역(예컨대 미국의 ”무기 소지 규제정책“)에서 관련 이익집단과 정부 부처, 의회 관련 상임위원회의 3자 간에 형성된 공고한 기득권의 공생 구조를 소위 ‘철의 삼각(iron triangle)’이라고 부른다. 참여하는 이해당사자들에는 다소 차이가 존재하지만, 필자는 현행 교육부 대학평가 제도와 관련해서도 이와 유사한 기득권층들 간의 ‘철의 삼각’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다. 

먼저 ‘철의 삼각’의 정점에는 평가의 타성성보다는 소위 ‘절차의 공정성’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교육부 관료들이 있다. 물론 그러한 현상이 발생된 이면에는 권력을 이용하여 관료들을 압박하는 일선 대학과 그들의 뒷배를 봐주는 정치권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최근에는 정권 교체 후에, 때로는 정치권력의 압력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이 수행한 업무에 대해서도 직업 관료에게 책임을 묻는 사태(예컨대 국정교과서 추진과정, 정부 재정지원 사업 선정과정에 관여한 교육부 공무원)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 관료 집단에서는 의사결정의 최우선적 기준이 공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성과 타당성이 아니라, 자신에게 사후 책임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계적·절차적 공정성만을 추구하는 행태가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대학마다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다른 점을 감안할 때 평가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성평가가 불가피하고, 또한 보고서에 작성된 윤색된 프로그램 운영 실적을 제대로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현장평가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필자가 만났던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시행하는 교육부(연구재단)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평가위원의 정실에 의한 평가 가능성과 정치권의 개입에 따른 평가 결과의 왜곡과 사후 책임 문제만을 염려하면서, 보다 근본적 이슈인 “평가가 과연 평가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평가하고 (혹은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너무도 쉽게 포기해 버리고 있다. 대학 평가에 존망을 걸고 있는 일선 대학들과 지역구 대학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권력이, 정성평가(재량)의 여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선정과정에서 평가시행 주체(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재단 등)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개별 대학들도 정부 재정지원 사업 설계 및 평가 과정에서 자기 대학에 유리한 방향으로 최대한 의사결정을 유도하되, 일단 최종 결정이 난 후에는 (특히 막다른 골목에 처한 대학의 경우) 모든 공식·비공식 루트를 통해 교육부의 선정과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료들은 평가의 타당성을 희생하고라도 처벌받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보신주의적 의사결정 행태”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무원의 보신주의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대학 재정지원 사업 평가제도 개선을 저해하는 일종의 “고착화된 기득권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현행 제도하에서 (1) 교육부와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 및 평가정책 설계과정에 참여하는 특정 교수와 연구자들; (2) 한국연구재단(한국교육개발원, 대학기관인증평가를 담당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과 평가에 참여하는 대학 보직교수, 전문가 집단; (3) 발언권이 센 주요 사립대학 및 거점 국립대학과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권 등은 상호 공생 관계 속에서 일정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고 보인다. 예컨대 연구재단 등은 오랜 사업 시행 경험을 바탕으로 평가제도 개선을 위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정치적 영향력의 사전적 차단이라는 이유 외에) 인력과 재원 부족 속에서 굳이 문제를 제기해서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을 꺼리고 있다. 한편 연구재단 등이 시행하는 각종 재정지원 사업 평가에 참여하고 있는 교수들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이를 체계적으로 제도 개선으로 연결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은 별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제도 개선을 위한 공식적 의견 반영 루트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탓도 있지만, 정부 평가제도 설계에 빈번히 참여하는 발언권이 큰 교수일수록 제도의 본질적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교육부와 연구재단 등 평가기관이 암묵적으로 원하는 ‘절차적 공정성’을 충족시키는 기능적 역할에만 자신의 역할을 제한시키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상 괜히 정부나 연구재단의 심기를 거슬러가며 다른 주장을 해 봐야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굳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인 이상 정부 위원회나 정책연구를 통해 평가제도 설계나 지표 선정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소속한 학교(학과)의 이익을 일정 부분 대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솔깃한 유인일 것이다. 

개별 대학의 구체적 맥락을 파악하기 힘든 (정성적) 정량지표와 윤색된 보고서의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현행 집체적 면담 평가 구조하에서, 대학 재정지원 사업의 수주는 권역별 구분 유형에서는 지역 거점 국립대학이, 전국단위 구분 유형에서는 대규모 대학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따라서 대학의 목소리를 주도하는 이들 주요 사립대학과 거점 국립대학의 경우 현재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이들 주요 대학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혹시라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제도 개선에 반영하기 위한 필요가 있다면 그 방법으로서) 공개적 논의 과정보다는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권을 활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들 선도적 그룹이 굳이 현행 대학 평가제도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평가의 정치경제 이론(Political Economy Theory)”에 기초한 상기의 추론은 “현행 대학 재정지원 사업 평가체제 하에서 왜 가장 힘이 없는 지방에 소재한 후발 중소규모 사립대학이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대학 재정지원 사업 평가 시행방식과 지표가 잘 변하지 않는가?” 라는 원초적 질문에 대한 답을 일정 부분 제공해 주고 있다. 

2021년은 “3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구조개혁 평가)”가 시행되는 해이다. 대학 현장의 교수들과 전문가들의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 동안에 군사작전 하듯이 해치운 “1, 2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는 대학 현장에 실로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이러한 문제 상황은 3주기 평가를 대비하는 2021년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진행형이며, 오히려 날이 갈수록 증폭되어 가고 있다. 이와 관련 필자가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지방대학 보직교수의 넋두리를 소개한다. 

“대학에서 이런 말들을 하거든요. 이제 교수님들께서 '논문 쓰느라 연구를 못 한다.' 그런 말씀을 하실 정도입니다. 그만큼 당해년도 성과관리를 해야 하고, 큰 연구 결과가 나오고 큰 논문이 나오는 게 아니라 쪼개서라도 만들어야 그렇게 실적평가도 받고 인정도 받는다, 그런 비슷한 논리인데 지난 일 학기 동안 가만히 보니까, 뭣도 모르면서 했지만 내내 평가를 받다 보니까 정작 기획을 못 한 것 같아요."

정부가 대학 평가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절차의 공정성 확보”라는 주변적 가치보다 대학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평가의 타당성 확보”라는 본질적 가치가 훨씬 중요하다. 이 평범한 사실을 교육부는 과연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것인가?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및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University of Oregon(Eugene)에서 고등교육행정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장, 기획담당관, OECD 사무국 상근 컨설턴트(Institutional Management in Higher Education),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과 안암교육학회 <한국교육학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과 성공요인: 학부교육 우수대학 성공사례 보고서1, 2』(공저), 『한국 교육책무성 탐구』(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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