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도서 구입 지원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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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도서 구입 지원 늘려야 한다
  •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 승인 2021.0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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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출판계는 그래도 선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외출을 줄이는 ‘집콕’으로 인해 국민의 독서량과 도서구입량이 늘었다는 말도 있다. 그 근거는 교보문고나 예스24 등에서 발표한 2020년 판매 실적 발표에 있다. 이를테면 교보문고의 경우 2020년 매출이 전년 대비 7.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것만 보면 코로나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구입해 읽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다수 학교와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서 도서 대출이 어렵게 되자, 풍선 효과처럼 구매 수요가 생겼다. 직접 서점 매장을 찾아 책을 보고 구매하는 사람은 줄어든 반면 온라인으로 비대면 구매를 하는 사람은 증가했다. 교보문고의 경우 모바일 매출이 전년도보다 32.9% 늘고 인터넷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0.1% 증가했지만, 매출 비중이 큰 오프라인 매장 매출은 15.9%나 감소했다. 이제는 온라인 매출 비중이 오프라인 매출보다 커졌다. 인터넷서점 전문 사업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 서점들만 ‘코로나 특수’를 톡톡히 누린 셈이다.

그렇다면 일반 출판사나 오프라인 서점들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개요를 공개한 <2020년 출판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의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했다는 곳이 출판사의 66.7%, 오프라인 서점의 91.6%나 되었다. 따라서 빙산의 윗부분처럼 드러난 대형 인터넷 서점만 보면 출판시장이 성장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대다수 중소 오프라인 서점의 매출이 자리 이동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출판 분야별로도 희비가 엇갈렸다. 교보문고는 아동, 취미·스포츠, 인문, 정치사회, 경제경영 등의 분야에서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 반대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상황을 반영한 여행서(-62.3%), 어학시험 취소가 거듭된 외국어(-9.5%) 분야와 잡지(-19.1%) 등은 큰 폭의 매출 하락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도서 분야별 지표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대학교재나 학술서를 발행하는 출판사들은 창업 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대학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파워포인트(PPT)로 강의를 하는 교수들이 대부분이었고, 교재를 지정해도 굳이 교재 구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학생들은 책을 사지도 않고 학습하지도 않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대학 수업에서 교재 이용이 줄고 요약 정리된 자료를 활용하는 방식이 증가 추세를 보여 왔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이러한 흐름을 일거에 확장시킨 측면이 강하다. 학술출판의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는 형국이다.

대학교육과 학술 연구의 기본 텍스트인 학술도서 출판의 위축은 단지 출판사의 생존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술도서의 출판 기반이 상실되면 학술 생태계 전반의 심각한 동맥경화 현상을 초래해 학문 연구는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에 지속적인 역기능을 일으킬 것이다. 결국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채산성이 없는’ 학술출판이 명맥을 유지하고 최소한의 기능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학술출판에 대한 공적 지원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매년 약 300종의 학술도서를 선정하여 대학도서관 등에 보급하는 대한민국학술원의 ‘우수 학술도서 선정’ 사업은 최근 3년간 사업 예산이 계속 줄었다. 2018년 36억 원, 2019년 33억 원, 2020년 26억 원으로 감소 비율도 높다. 그리고 한국연구재단이 연구자를 지원하는 ‘저술출판 지원’ 사업은 예산액이 2018년 50억 원, 2019년 29억 원, 2020년 17억 원으로 감소율이 훨씬 더 크다. 불과 2년 사이에 예산이 반 토막 이하로 줄었다. 교육부의 총예산이 매년 늘어나 2020년에 약 75조 원임을 감안하면, 그와 같은 학술출판 지원 예산의 지속적인 삭감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대학이나 교수 사회의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이를 암묵적 동의라고 봐야 할지, 학술도서에 그다지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교수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 결정인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출판 단체들이 지난 11월 초에 이에 대한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교육부의 전향적인 문제 해결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2019년 4월에 교육부는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함께 ‘인문사회 학술 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학술출판 활성화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아 생색내기용 맹탕 정책임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대학도서관들이 학술도서 구입에 힘을 써주면 좋겠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2019 대학도서관 통계 분석>에 의하면, 대학도서관 장서의 재학생 1인당 전년 대비 연간 증가 책 수는 2018년에 2.6권, 2019년 2.5권으로 2년 연속 하락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2020년 통계도 보나마나다. 매년 인상되는 대학도서관 학술DB 이용료는 꼬박꼬박 지불하면서, 대학 재정난을 이유로 대며 학술도서 구입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수록 대학도서관은 취업 준비하는 공부방으로 전락할 것이다.

교육부가 학술도서의 저작·출판·보급 지원과 활성화를 위해 교육부 예산의 고작 0.006%밖에 쓰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학술도서 생태계가 무너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정책적인 의사 표현이라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대학과 연구자의 학술 연구 기반이자 미래 세대와 사회 발전의 기초 양식인 학술도서의 재생산 구조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정부는 학술도서의 저작·출판·배포 지원 정책을 혁신적으로 강화하기 바란다.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로 한국출판학회 부회장 겸 출판정책연구회장, 일본출판학회 정회원이다. 대학에서 출판문화론 등을 강의한다.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 서울도서관 네트워크 위원장, 경기도 지역서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출판산업사』를 썼고, 옮긴 책으로 『서점은 죽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책』, 『책의 소리를 들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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