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잃어버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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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을 잃어버린 사회
  • 양준모 연세대·경제학
  • 승인 2020.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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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누구나 살아가는 삶의 기준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도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 몇 가지 공통적 기준을 만들어 왔다. 각자 삶의 방식이 있으니 기준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니체가 주장하듯 우리의 본성과도 맞지 않는 헛된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고 있고, 자유를 지향한다. 적어도 자신이 주장한 기준에 따라 일관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당연했던 기준들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이 말이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사람을 위한 00’이란 책을 펴낸 약삭빠른 사람도 나왔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하는 일치고 사람을 위하지 않는 일은 없다. 도로에 흔히 보이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도 ‘걷는 사람이 차에 탄 사람보다 먼저다’라는 뜻이다. 마르크스는 계급이 먼저라는 사고 체계를 설파했다. 이 공허한 주장이 현실화하고 있다. 소위 권력의 편에 든 사람들이 ‘내 편이 먼저고 내 편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부모의 배경을 이용해서 공정한 절차를 위반하거나 가짜 서류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입학을 하거나 취직을 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부모가 권력을 잡기 전 들어보지도 못한 작가가 권력을 잡은 후에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고 정부 지원금까지 받는 것도 겸연쩍은 일이다. 다른 사람은 엄하게 죄를 묻고 자신의 편에 있는 사람을 봐준다면 공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기준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을 이용하여 경영에 개입했다며 수사하는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하고,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를 통해 경영에 개입한다. 경영을 잘못했다고 이사 연임에 반대했지만, 해당 회사는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냈다. 국채은행은 빚도 못 갚는 회사를 이 회사에 합병시키려 한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따지기보다는 내 편에게 유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은 기준이 없는 사람이다.

공직자가 사모펀드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당연히 이해 상충의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투자의 내용도 모르고 투자금을 횡령해도 알 수 없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과연 누군지, 그리고 권력의 개입 여부를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사해야 할 것을 조사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검찰개혁을 외친다.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서 검찰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검찰총장에게도 정직 처분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검찰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행사하니 경찰에게 수사권과 수사 종결권을 주자’고 한다. 고위 공직을 마친 사람이 택시 기사를 폭행했으나 경찰에서 내사 종결했다고 한다. 견제 받지도 않는 경찰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권력기관일수록 견제 받아야 한다는 기준은 자신들의 일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사회주의국가에서 민주적 통제와 법치주의는 민중의 뜻에 복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민중의 뜻은 과거 하늘 뜻을 묻던 황제와 같이 권력자가 해석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민주적 통제의 기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견제와 균형보다는 일방적 규율과 통제가 앞서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일상화된 통제에 익숙해지고 있다. 방역 조치에 대한 근거를 캐묻는 언론 보도들은 사라지고 통제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의 처벌만 알려진다. 언론은 예배 본 사람들, 친지 모임을 한 사람들, 그리고 요양병원 종사자 등, 이 사람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방송한다. 호구지책을 하소연하는 자영업자는 없고 단속에 걸려 고개 숙인 자영업자만 방송에 나온다. 그리고 그 뒤에서 자신들은 와인 파티를 즐긴다.
권력자들이 앞 다투어 대한민국이 그동안 쌓아온 기준을 무너뜨리고 있다. 자유와 인권, 견제와 균형,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들이 사라지고 권력의 횡포만이 남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양준모 연세대·경제학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경제학과 교수.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연금학회 회장, 한국지급결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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