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라는 이름의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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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라는 이름의 슬로건
  • 박성호 동덕여자대학교·비교문화학
  • 승인 2020.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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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20년 경자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번 경자년엔 유독 진보란 말이 많이 쓰였다. 생각해보면 현 정권 출범 후 연일 언론에 진보란 어휘가 일부 집단을 상징하는 말로 오르내리고 있다. 이 일부 집단에 반하는 일련의 행위는 모두 진보를 방해하는 짓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에 진보를 상징하는 일부 집단은 없다.

진보라는 것은 본래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의미의 말이지만 운동이나 변화, 발전 같은 단어와는 차이가 있다. 진보라는 용어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동시에 가치적 향상이 동반되어야 한다. 인간사회에서의 진보라는 용어는 좀 더 완전한 상태를 지향해서 가치적으로 향상해가는 지속적 전진 운동이다. 그래서 진보라는 용어는 운명이나 회귀적 역사관이 지배적이었던 고대의 세계관이나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에 대항해서 18세기 이후에 관념화되었다. 인간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역사는 무한한 완성 가능성을 지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과 문명의 발전으로 사회적 모순이 심화하자 진보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변증법적 사고에서는 직선적인 진보 대신에 모순과 지양으로서의 발전 논리가 지배적으로 되었고 서구에서는 자유주의 경제와 과학기술의 발전을 의미하였으며 사회의 복잡성이 심화하자 오늘날에는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기도 하다. 필자는 진보는 여전히 근본적인 사회의 변화를 의미하고 있고 이 변화의 방향은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편적 인권이 중시되고 권력에 의한 개인의 권리 침해를 반대하며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차별하지 않으며 국민의 합의로 이루어진 법과 질서를 존중해야 하는 등의 가치가 진보의 방향이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요즘에 사용되는 진보란 용어는 그저 보수에 반대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고 진보가 담아내야 사회의 개선이나 인권, 약자에의 존중 등 어느 것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진보라는 용어는 이제 슬로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는 역사 속에 하나의 진보집단을 기억하고 있다. 바로 고려말 권문세족의 횡포를 비판하고 나섰던 신진 사대부들이다. 이들은 조선의 건국을 도와 관학파라고 불리며 문종에 이를 때까지 조선 통치의 주역이 된다. 국가가 세운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국가가 운영한 집현전에서 학문을 연구했기 때문에 관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세조가 왕위에 오른 계유정난 이후 관학파는 훈구파와 은둔 세력으로 갈라지고 이 훈구파는 조선에 많은 폐를 끼친 집단으로 자기들의 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다. 이에 훈구파에 대항하여 새로이 일어난 진보집단이 바로 사림파로 조선 건국에 협력하지 않고 오랜 기간 재야에서 학문을 닦았던 사람들이 주축이 된다. 사림은 훈구파와 '사화'라는 이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서 승리한 후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았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붕당이 일어나게 된다. 붕당은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대북, 소북, 노론, 소론 등으로 더욱 분화되고 자기가 몸담은 학파를 제외한 나머지 세력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며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를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다.

지금은 어떤가? 정치는 여야가 서로 자신의 주장에 따라 갈등하고 있고 이제 일부 편향적 국민마저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언론은 이를 염려하는 기사를 내놓기도 하지만 일부는 지지 정당의 입맛에 맞는 기사들을 양산해 내면서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진보의 핵심인 비판의식은 실종되었음에도 일부 세력은 스스로 진보 세력이니 검찰개혁이니 하는 것들을 내세우고 편 가르기에 열중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징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일부 여권에서는 “강도 높은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체계적이고 강력하게 추진”, “대통령의 재가를 번복하는 재판, 이건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 “판사 셋이 내린 판단이 징계위 결정보다 합리적일 수 있나, 이런 것이 이른바 사법 농단”, “일개 판사가….” 등등의 비판과 선출된 권력 제일주의를 앞세우며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인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망언이 이어졌다. 뿐인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의 실명을 공개한 여권 인사들도 있었으며, 입시 부정 등으로 구속된 정경심 피고인에게 재판부는 “단 한 번도 반성이 없었다.”라고 질타하기도 하였다. 이에 일부 지지자는 정경심 피고인을 위해 변호비 100억을 모으겠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진보와 너무 거리가 먼 것들이다. 당파싸움에 지나지 않으며 편 가르기에 의한 상대방 공격이요, 궤변이자 진보에 대한 모욕이다.

 현대는 개인의 인권과 가지가 우선시되는 시대이다. 개인과 또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불이익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이를 위해 싸워야 한다. 그게 지난 시절 독재정권과 투쟁하였던 시대의 진보 정신이었다. 자신에 반대하는 행위에 대한 일부 여권의 거친 주장들은 진보의 가치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이제 진보는 한국에서 특정 집단의 슬로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국민은 이제 사이비 진보에 지쳤다. 필자는 여전히 진보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로는 다가오는 새해에도 제대로 된 진보의 모습을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박성호 동덕여자대학교·비교문화학

동덕여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성균관대에서 비교문화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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