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한국인의 신조어(coinage) 생성 능력…발우(鉢盂), 바리때, 막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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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한국인의 신조어(coinage) 생성 능력…발우(鉢盂), 바리때, 막사발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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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35)_ 믹스의 천재, 大韓國人

심심파적으로 TV를 틀었다. 마침 프로그램 타이틀이 왠지 거시기한, 그러니까 좀 점잖지 못하다고 평소 생각했던 <아내의 맛>이라는 프로그램 속의 프로그램 <트롯의 맛>이 방영되고 있었다. 두 명의 어린 트롯 가수가 도심 속 사찰을 찾아가 1박2일 템플스테이 체험을 하는 내용이 주가 되는데, 노래도 그렇고, 밥도 그렇고, 사는 일 역시 맛이 있어야 좋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하간 이 오락 프로그램에서 ‘발우공양(鉢盂供養)’이라는 말이 나왔다. 문득 ‘발우(鉢盂)’란 말의 기원이 궁금해졌다. 필경 고대 인도말이 한자로 음차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한자에 대한 이해와 사용을 거부할 수 없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한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발우(鉢盂)’라는 한자어를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렇다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한자를 몰라도 우리말로 ‘발우>바루’라고 말하면 꼬맹이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성인들이 그 말하는 바를 알아듣는다. 발우공양은 물론 이판사판, 야단법석 같은 어려운 말도 척척 알아듣는다. 당연히 불교에서 비롯된 말들이다.

한자어 鉢盂에 관한 의문 사항. 먼저 발우의 鉢은 본래는 쇠 金변 옆에 “우거질 발, 또는 우거질 패”로 읽는 초목이 무성한 모양을 나타내는 形聲字 屮(풀 철)+八(音)이 붙어야 하는데 어느 시점엔가 本으로 잘못 쓰여 그 바람에 鉢이 통용된 것이라고 한다. 누가 그랬을까? 또 어찌 된 일인지, 왜 그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의미상 “바리 鉢”만으로도 충분한데, 역시 같은 개념의 “바리/식기 우(盂)”를 추가해서 ‘鉢盂“라 쓸 필요가 있었을까?

『訓蒙字會』는 鉢을 “바리 발”이라 적고 있다. 이 鉢은 산스크리트어 ‘파트라(pātra)’의 한자어 음역 발다라(鉢多羅)의 약칭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그 의미를 응량기(應量器)라 적고 있는데 정확하게는 “컵이나 받침 달린 잔 또는 용기”를 가리킨다. 盂는 바리, 사발, 밥그릇이란 뜻을 지닌다.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에게 鉢盂(병음: bō yú)는 출가자인 僧侶의 밥그릇을 의미하며, 傳法의 도구를 가리키기도 한다. 발우는 비구 즉 승려가 지녀야 하는 6물(六物, 여섯 가지 물품) 중 하나이며 보살이 갖춰야 하는 18종물(十八種物)의 하나다.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해줄 때 함께 주는 불법 전승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이런 발우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승려의 밥그릇이라는 원래 의미에서 그 형태가 비슷한 밥그릇이라는 넓은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바리, 바루, 바리대, 바리때는 모두 발우와 같은 말이다. 바리대와 바리때는 범어 pātra의 음차일 것 같은데 음운변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앞에서 말했듯 발우는 대개 스님들이 사찰에서 공양을 올릴 적에 사용하는 밥그릇이다. 그래서 협소하게는 “중의 밥그릇”이라고 훈을 달지만 실제로는 “그릇 器”와 다름없이 쓰인다. 때문에 사발(沙鉢)과 사기(沙器), 사기(砂器)는 실질적으로 동의어이며, 발기(鉢器)는 비구의 바리때를 말한다. 발낭(鉢囊)은 길 가는 중이 걸머지고 다니는 바리때를 넣은 자루 같은 큰 주머니를 말한다. 주발(周鉢)은 편의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을 가리킨다. 탁발(托鉢)은 승려가 바리때를 들고 경문을 외며 음식 동냥을 하는 일을 말한다. 熟盂(익을 숙, 발우 우)는 차 마실 때 사용하는 물 식힘 그릇이다.

사발이라고 하면 밥사발, 막사발 등이 떠오를 법한데, 알고 보면 무려 3개 언어가 합쳐진 어휘다. 발은 범어 pātra의 축약이고, 사(沙)는 한자이며, 밥과 막은 우리말이다. 가라오케가 가라(가짜)라는 일본어와 영어 오케스트라를 줄인 오케라는 일본식 영어의 합성어라면 막사발은 3개 언어로 구성된 기막힌 합성어다. 대한민국 믹스 커피가 세계 최고이듯 coinage(신조어 생성)에 있어서도 한국인의 창의성은 놀랍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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