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한제국기 황실 의례와 의물』, 동북아역사재단 『일제의 독도·울릉도 침탈 자료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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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한제국기 황실 의례와 의물』, 동북아역사재단 『일제의 독도·울릉도 침탈 자료집(4)』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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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출판]

■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한제국기 황실 의례와 의물』 발간

- 대한제국! 황제국을 상징하는 의물을 제작 사용
- 조선국 왕족에서 대한제국 황족으로
- 의물에 나타난 황족의 신분 구별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황제국으로서의 대한제국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대한제국기 황실 의례와 의물』(이욱 외 지음)을 발간했다.

의례는 꾸밈에 기초한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 예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외면을 통해 내면을 가꾸는 것이 의례이다. 이 책은 의례를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인 외적인 부분에 치중하였다. 금책(金冊), 복식(服飾), 노부(鹵簿), 제기(祭器), 홀기(笏記), 발기[件記], 제물 등과 같이 의례에서 사용하는 구체적인 의장, 기물, 음식 등 ‘의물(儀物)’을 주제로 삼았다. 의물은 의례에서 사용되는 물건이란 의미와 함께 의례의 상황에서 달라진 가치를 존중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의례라는 시공간 내에서 성스러운 물건으로 간주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의물의 성스러움을 보여주고자 이들이 등장하는 봉책, 관례, 가례, 다례, 진연, 국장 등의 의례를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의물이 의례와 관계 맺는 방식을 볼 수 있다.

한편, 의물은 도구적인 성격을 지닌다. 의복이나 패물, 그리고 음식을 진상 또는 하사할 때 사용한 발기는 물품 명세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를 통해 의례 현실에 더 접근할 수 있다. 한글로 적힌 홀기, 책문, 발기 등을 통해서 우리는 여성이 의례에 어떻게 개입하였는지도 비로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의물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각각의 의물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황제만이 아니라 장인(匠人)을 만나고 내인(內人)을 만나고 내관(內官)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의물과 의례를 통해 황실의 내부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마련할 수 있다.

우선, 장을연은 ‘대한제국 황실의 책봉의례와 금책’에서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 등을 책봉할 때 사용하는 책문을 분석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책문의 재질이 신분에 따라 죽책 또는 옥책을 올렸는데 황제국인 중국에서는 금책을 사용하였다. 그러던 것이 대한제국에서는 명성황후를 책봉하면서부터 금책이 사용되었다.

김봉좌는 ‘황태자 가례와 한글 문헌’에서는 왕실 관련 여성들이 생산한 한글문헌을 분석하였다.  이들 문서들은 거의 황태자비가 참여하는 의식에서 황태자비를 보조하는 여성 내인들을 위해 만들었음을 밝혔다.

이민주는 ‘왕실 발기로 보는 대한제국기 복식-의친왕·영친왕을 중심으로’에서 황태자를 제외한 황자들이 입학례, 관례 등에 사용된 의복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황자들 사이의 신분적 위상과 의미를 고찰하였다.

구혜인은 ‘대한제국기 선원전의 다례와 제기’에서 역대 왕의 어진을 봉안하는 선원전의 제기를 다루었다. 중국 고대 전례를 따르던 종묘 제향과 달리 선원전은 음식과 도구에서 우리의 고유 전통을 따랐음을 밝혔다.

제송희는 ’진연 의례와 황제국 노부‘에서 국왕의 행차나 의식 때 의장을 진열하는 노부를 다루었다. 조선시대 노부는 대가, 법가, 소가로 구분하여 왕의 권위를 드러내었는데 대한제국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노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 사용된 제작 과정과 비용까지도 분석하였다.

이욱은 ’대한제국기 국장과 제물-명성황후 국장을 중심으로‘에서 명성황후 ’국장‘과 ’음식‘을 고찰하였다.

이 책은 한중연 왕실문헌연구실이 주관하는 장서각 자료 연구의 결과물이다. 한중연은 장서각의 세계화 대중화라는 목표 아래, 조선왕실도서관인 장서각 자료를 꾸준히 연구하여 연구자와 대중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로 발간하고 있다.


■ 동북아역사재단, 『일제의 독도·울릉도 침탈 자료집(4) - 신문기사(1897~1910)』 발간

- 구한말~대한제국기 국내 발생 신문기사 중 일제의 독도·울릉도 침탈 관련 기사 226건 선정, 읽기 쉬운 현대문으로 고쳐 수록
- 해당 시기 일제의 독도·울릉도 침탈사 입체적 파악에 도움

동북아역사재단은 ‘일제침탈사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일제침탈사 자료총서 <일제의 독도·울릉도 침탈 자료집 4-신문기사(1897~1910)>을 발간했다. 구한말에서 대한제국기까지 국내에서 발행된 신문 기사 중 일제의 독도·울릉도 침탈 관련 기사 226건을 선정하여 읽기 쉬운 현대문으로 고쳐 수록한 책이다. 고신문 기사를 소재로 간행한 국내 최초의 독도·울릉도 자료집이다.
 
일제의 독도에 대한 영토 침탈은 구한말부터 시작된 일본인의 울릉도에 대한 경제적 침탈과 그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독도에 대한 경제적 침탈의 결과였다. 이 자료집에는 그 과정을 동시대적 관점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기사들이 수록되어 있다.

개항 전부터 시작된 일본인의 울릉도 입도 및 불법 벌목과 반출 사건, 이로 인한 조선인과의 갈등이 조선·대한제국의 울릉도 통치체제 강화로 이어지고 그 끝에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가 발령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사군. 1895년 전임 도감제 실시를 통해 초대 도감이 된 배계주가 1899년 밀반출된 목재를 찾고자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로 가서 소송을 제기한 사건 경과 관련 기사, 대한제국 정부에 의해 울릉도 현황 파악을 위해 파견된 라뽀떼 보고서 「울릉도사황」, 1900년 내부시찰위원 우용정의 울릉도 조사 관련 기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도군수 관할로 명기된 ‘석도’가 독도임을 알 수 있는 기사군. 「울릉도사황」(1899.9.23., 황성신문), 「울도군의 배치전말」(1906.7.13., 황성신문) 등은 독도가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보여주고 있는 기사들이다.

또한 일본인의 울릉도에 대한 경제적 침탈이 독도에 대한 경제적 침탈로 이어지고 그 끝에 1905년의 독도 영토 침탈로 이어진 것을 보여주는 기사군. 일본 신문 기사를 인용하여 일본인이 독도를 얻었다고 쓴 「울릉도 동남 삼십리 해중에」(1901.4.1., 제국신문), 1906년 일본 시마네현이 ‘신영토’ ‘다케시마(독도)’ 시찰을 위해 파견한 시찰단을 통해 “본군(울도군) 소속 독도”가 일본에 편입되었다는 말을 들은 울도 군수가 강원도 관찰사를 통해 내부에 보고한 것과 내부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으니 다시 알아보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을 기사화한 「무변불유」(1906.5.1., 대한매일신보), 「울졸보고내부」(1906.5.9., 황성신문) 등도 수록되어 있어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이 불법이었음을 명백히 증언하고 있다.

이 외 일본의 침탈 과정에서 벌어진 조선 상인의 수난상과 기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원산 소금 상인 김두원 사건 관련 기사들, 용암포 사건 등 울릉도 삼림에 대한 러일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일련의 기사, 서양 열국의 대한제국 이권 침탈 관련 논평성 기사 등이 수록되어 있어 독도·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해당 시기의 일제 침탈사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책 출판에 이어 재단에서는 광복 후 독도와 관련된 언론보도 기사를 정리하여 『광복 후 독도와 언론보도』(전 3권) 시리즈도 출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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