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철학자”는 왜 “폭력의 철학자”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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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철학자”는 왜 “폭력의 철학자”가 되었는가?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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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사르트르와 폭력: 사르트르의 철학과 문학에 나타난 폭력의 얼굴들 | 변광배 지음 | 그린비 | 717쪽

20세기를 자신의 세기로 만든 철학자 사르트르, 자유의 철학자라 불리는 그에게 ‘폭력’이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이 책은 폭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르트르의 철학 사상과 문학세계 전반을 탐사한다. 전기와 후기를 대표하는 저서인 『존재와 무』와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통해 폭력의 기원을 탐사한 뒤, 사르트르의 소설과 극작품에 드러나는 다양한 현상과 인간관계를 분석한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사르트르가 정의하는 폭력의 기원, 사르트르의 문학작품에 담긴 폭력에 대한 분석, 사르트르의 글쓰기 이론에서 찾는 대안 모색 등이 그것이다. 폭력의 기원 문제는 사르트르의 전기와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존재와 무』와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통해 조망된다. 두 권의 저서를 통해 각각 폭력의 기원에 대한 존재론적 관점과 인간학적 관점이 검토된다. 다음으로 사르트르의 소설과 극작품에 나타난 다양한 폭력 현상이 분석된다. 여기서 폭력은 그것이 행사되는 방향에 따라 타자에 대한 폭력과 자기에 대한 폭력으로 구분된다. 마지막으로, 폭력에 대한 대안으로 언어적 대항폭력, 즉 ‘글쓰기-문학’이 제시된다. 사르트르는 이따금 ‘폭력’에 대한 대안으로 ‘폭력’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는 인간들의 완벽한 상호주체성에 입각한 비폭력적 대안을 목표로 하며, 이는 ‘작가-독자’의 관계가 바탕이 되고 미학과 윤리가 결합한 ‘의사소통적 윤리 모델’로 이어진다.

사르트르의 문학작품에는 시선에 대한 언급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타인은 ‘나를 바라보는 자’이고, 타인이 지옥인 이유도 시선을 통해 나를 객체화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제거하려는 인물들조차도 타인이 갖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타인이 죽음 속으로 사라질지언정 나를 바라본 타인의 시선은 영원히 비밀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존재실현을 위해 타인의 시선을 갈망하기도 한다. 사물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 반면에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인식하는 존재이다. ‘나에 대한 인식’과 ‘나라는 존재 자체’가 불일치할 때 인간은 실존의 불안을 겪는다. 여기서 나의 존재를 보증해 줄 타인의 시선에 대한 갈망이 생겨난다. 타자는 나를 사물로 만드는 지옥인 동시에 나의 존재근거를 담보해 줄 수 있는 보증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우리의 인간관계가 이러한 타자의 상반된 지위로부터 출발한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서로를 객체화시키는 시선이 아닌 서로의 자유가 인정받는 방식으로 각자의 존재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Jean-Paul Sartre(1905.6.21~1980.4.15)
▲Jean-Paul Sartre(1905.6.21~1980.4.15)

사르트르는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서약이라고 말한다. 내가 집단을 배신한다면 나를 살해해도 좋다는 서약, 그러나 반대로 당신이 집단을 배신한다면 우리가 당신을 살해할 것이라는 서약은 우리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공포와 폭력에 해당한다. 이렇듯 사르트르는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 결국 우리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황에 주목한다.

이런 집단 내의 공포와 폭력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공동의 목표와 신뢰가 없는 개인들은 경쟁에 지배당하는 ‘집렬체’에 불과하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유대감도 없으며, 외부의 압제와 공격에도 무기력하다. 결국 그들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온다. 사르트르는 이런 폭력이 의도하는 것이 바로 집단 구성원들 사이의 완벽한 의사소통이라고 이야기한다. 구성원은 자유의지를 통해 서약을 함으로써, 집단의 의지와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킨다. 나를 살해하는 타자의 행동은 곧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려 했던 나의 의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폭력이 없는 상호인정과 의사소통은 불가능한가? 폭력은 오로지 대항폭력으로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사르트르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서 폭력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한다. 작가에게 쓰기 행위란 자신과 세계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즉 작가의 쓰기 행위는 그의 자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한편 독자는 독서 행위를 통해 작가의 작품에 객체성을 부여한다. 이는 작가의 존재근거를 마련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독자의 역할은 작가의 의도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작가의 쓰기 행위가 독자의 요구에 응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는 작가의 작품에서 그 자신의 이미지와 그가 속한 집단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와 독자는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며, 작품의 탄생이라는 공동 과업에 참여한다. 사르트르가 의도했던 완벽한 상호주체성이 출현하는 순간이다.

사르트르에게 있어 폭력의 문제는 서로의 존재근거를 확보하는 문제이자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는 문제였다. 개인의 자유가 사라진 상태, 혹은 의사소통이 차단된 상태가 곧 폭력이 지배하는 상태라는 걸 고려하면 이는 당연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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