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잃은 것과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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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잃은 것과 얻은 것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0.12.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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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_ 대학직설

돌이켜보니 2020년은 코로나19 블랙홀 속으로 덧없이 빨려 들어가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하릴없이 허우적거리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 백신 개발 성공 소식에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을 안고 마무리하게 된 한해였다. 제아무리 인공지능과 생명과학이 발달하더라도 자연의 재앙 앞에서 우리 인간이 여전히 무력한 존재임을 다시금 확인한 동시에, 우리 인류가 얼마나 생존력이 강한지를 재확인한 역설의 한해이기도 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은 것일까.
우선, 현재까지 세계는 거주민 169만 명의 목숨을 잃고, 몇 종류의 백신을 얻었다. 2020년 12월 20일 월도미터(Worldometer)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Covid-19 확진자가 7,660만 명, 사망자가 169만 명, 완치자가 5,375만 명이다. 미국은 1,800만 명이 확진됐고 323,000 명이 사망했으며, 일본은 193,000 명이 확진됐고 2,828명이 사망했다. 한국은 20일 현재 49,665명이 확진됐고 사망자 수는 674명이다. 영국 BBC의 12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2019년 3월과 11월 사이 사망자 숫자는 2015~19년 동기간의 평균보다 79,000 명이 증가했는데 이는 코로나19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수치상으로 볼 때 지금까지 우리 한국이 상대적으로 선방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12월 16일 이후 닷새째 확진자 수가 1,000 명 선을 넘는 증가세라 추호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형편이다. 
둘째, 2020년 우리는 말수를 상당히 줄이는 대신 고요와 살핌을 늘렸다. 강연장, 강의실, 결혼식장 등등의 공공장소에서 베푸는 말들이 상당히 짧아졌다. 모두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백화점이나 시장에서, 심지어 미용실이나 병원 또는 식당에서 가장 경제적인 언어 표현과 효율적인 눈짓으로 말하는 방법을 새로 습득하게 되었다. 이런 소통방식이 한편으로는 우리가 다시 원시시대의 미분화되고 손발을 사용하는 미개한 언어습관으로 퇴보한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조용히 주변을 살피고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맞추면서 얼마든지 필요한 의사를 교환할 수 있었는데 그간 너무 쓸데없이 많은 말을 쏟아냈고 너무 크게 떠들어 소음을 만든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도 한다.
셋째, 2020년 우리 시선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진 것은 공개 장소에서의 취식 관행이다. 그간 우리가 시장바닥이든, 길거리든 공원이든, 학회장이든, 기차 안이든, 마을버스 안이든, 강연장이든, 강의실이든,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그게 어디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 그대로 먹고 마시는 일에 지나치게 관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는 어쩌면 수천 년 농경생활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한 보릿고개나 한국전쟁 시에 굶었던 뼈아픈 과거를 보상받으려는 집단무의식에서 나온 발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오랜 한국적 관행이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종식되어 간다. (이참에 ‘제사보다 젯밥’이라는 본말이 전도된 잘못된 관행과 속된 태도도 부디 과거의 뒤안길로 함께 사라져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넷째, 2020년 코로나19의 언택트 시대를 맞아 타인들과의 모임 숫자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정말 불가피한 경우나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만남 자체를 취소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하다 보니 처음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허전한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신풍속도에 이내 적응이 되면서 요즘은 오히려 우리가 진작 왜 이렇게 안 했나 싶고, 진즉 그렇게 했더라면 시간적으로나 비용 면에서 상당한 사회적 재화를 절약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얕은 생각마저 하게 된다. 물론 어떤 이들은 무료함과 외로움을 호소하고, 또 어떤 이들은 집안에 많은 시간 갇혀 있다 보니 몸이 붇고 쳐지며 짜증이 나고 가족들 간에 불화가 늘어난다고 불평을 하기도 한다. 
사실 홀로 있는 시간의 절대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일 수 있다. 고독, 즉 홀로 있음은 자기 자신과의 만남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며, 동시에 그것은 각자에게 성장과 숙성을 위한 경작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57년 일기에서 고백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내가 은둔 생활을 함으로써 삶을 삭막해지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누리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위한 비단 거미줄을 짜거나 번데기를 키우고 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마치 애벌레처럼 보다 높은 사회에 적합한 더 완벽한 존재로 활짝 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고독 예찬’에서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 안 될 한 가지 절대적 진실이 존재한다. 코로나19가 빈곤층과 소수인종, 즉 사회적 약자들에게 훨씬 더 치명적인 위험으로 드러났다는 사실 말이다. 그들 대부분이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므로 말수를 줄이는 일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지 않는 것도, 또 홀로 있음의 시간을 늘리는 일도 결코 선택사항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백신을 맞을 기회도 훨씬 제한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2020년은 우리에게, 우리가 다 같이 발 벗고 나서서 이 사회적 약자들을 돕지 않는다면 결국 다 같이 코로나19의 완전한 패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알리는 경종이 울린 한해로 기억될 듯하다.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교수로 현재 한국NGO학회 회장이다. 주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 민주주의의 패러다임 전환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와 『제3의 아렌트주의』(근간), 역서로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 읽기』, 『시민사회』,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책임과 판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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