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창조에서 문명 전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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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창조에서 문명 전환까지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0.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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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생애의 단계에 따라 학문이 진전되는 양상에 관한 논의를 계속해서 한다. (1) 학위논문, (2) 주문생산, (3) 계획생산의 단계를 하나씩 고찰하고, 그 다음에는 (4) 이론 창조, (5) 학문 창조, (6) 문명 전환이 더 있다고 했다. (4)에서 (6)까지를 여기서 다룬다.

(4) 이론 창조는 미리 계획하고 일관되게 진행할 수 없다. 자료나 사실에 관한 연구가 난맥을 보이는 것을 해결하는 착상을 하나씩 얻어, 저서가 아닌 논문으로 구체화한 작업의 연속이다. 먼저 돈오(頓悟)를 하고 오랜 기간 동안 점수(漸修)를 한다. 돈오를 사라지지 않도록 대강 적은 논문이, 점수를 한참 하고서 다시 보면 엉성하고 미비하고 치졸하기까지 하지만 엄청난 의의가 있다.

돈오를 적은 논문 가운데 특히 소중한 것 셋을 든다. 문학의 큰 갈래가 교술(敎述)을 추가해 넷임을 밝혔다. (30세 때의 <가사의 장르 규정>) 문학 갈래가 자아와 세계의 관계에 따라 구분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소설은 자아와 세계가 상호우위에 입각해 대결한다고 했다. (35세 때의 <자아와 세계의 소설적 대결에 관한 시론>) 생극(生克)의 이론을 이어받아 역사를 이해하고 문학사를 쓰는 원리로 삼자고 했다. (55세 때의 <생극론의 역사철학 정립을 위한 기본 구상>)

돈오를 점수한 결과 다면적이고 총체적인 이론을 이룩하고 더욱 발전시켰다. 문학 갈래들의 체계적인 변화가,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로 문학담당층이 교체되면서 나타나 문학사의 새로운 전개가 구체화하는 것을 세부까지 논증했다. 이러한 변화, 교체, 새로운 전개의 원리는 생극론임을 밝혔다. 상극이 상생이고 상생이 상극인 생극론은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대등론으로 구현되어, 변증법의 편향성을 시정하는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의의를 가진다고 했다. 변증법이 계급모순을 투쟁으로 해결한다면서 더욱 악화시킨 민족모순이나 문명모순을 대등론으로 해결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생극론이나 대등론을 실현하려면 사람은 누구나 지닌 창조주권을 발현해야 한다는 지론을 전개하고 있다.

(5) 학문 창조는 학문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거대한 공사인데, 하나를 하고, 지금 또 하나를 하고 있다. 30대 초반에 구비문학을 아마추어의 관심사인 민속이라고 방치하지 말고, 문학으로 연구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주장을 개설서를 써서 널리 알렸다. (32세의 공저 <<구비문학개설>>) 구비문학 현지조사의 본보기를 보였다. (31세의 <<서사민요연구>>, 40세의 <<인물전설의 의미와 기능>>) 

이런 작업이 큰 반응을 일으켜 구비문학 혁명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이 일어났다. 전국의 구비문학을 일제히 조사해 자료가 풍부해지고,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구비문학이 국어국문학과의 한 전공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구비문학 전공교수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어 일자리가 생겼다.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학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계승하는 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국내의 쾌사만은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하지 못하는 거사를 힘차게 추진하면서 서유럽의 잘못을 시정하고, 문학 이해의 세계적인 혁신을 진행한다.

생극론으로 철학을 혁신하자. 철학이 자폐증에서 벗어나 학문에 대한 총체적인 고찰을 하고 잘못을 시정하며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임무를 하도록 하자. 이런 주장을 힘써 펴는 것이 근래의 작업이다. 학문론이 새로운 학문으로 등장해, 우리학문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해 세계 학문의 역사를 바꾸어놓기까지 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저서를 20여권쯤 내놓았다. (54세의 <<우리학문의 길>>, 73세의 <<학문론>>, 80세의 <<창조하는 학문의 길>>을 본보기로 든다.)

구비문학 혁명 같은 학문론 혁명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아직 많이 모자란다. 학문론 혁명은 세계적인 범위로 확대될 수 있어야 타당성이 입증된다. 철학과를 학문학과로 바꾸는 것을 시발점으로 삼고 근대 유럽에서 만든 분과학문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통합학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다음에 드는 문명 전환으로 이어진다.

(6) 문명 전환은 이론 창조나 학문 창조에서 당연히 제기되는 과제이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세계사의 진행을 정상화하는 하는 학문, 불행한 시대인 근대를 넘어서서 다음 시대를 바람직하게 이룩하는 설계를 제시하는 학문을 하자는 것이 문명 전환을 요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갖가지 차등이 횡포를 부리는 낡은 문명을 버리고 세계 전역에서 다시 이룩해야 할 문명은 한 말로 규정하면 대등문명이다.

대등문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고 필연적임을 입증하는 논의를 철저하게 다지고 널리 알리려고 힘쓴다. 책을 쓰고, 대중매체에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 부족해, ‘조동일 문화대학’이라는 유튜브 방송을 직접 하기까지 한다. 공감하고 동참하는 동지들이 나날이 늘어나, 세계사를 바꾸어놓는 거대한 혁명의 주역이 될 것을 기대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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