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없는 지방대학의 생존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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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없는 지방대학의 생존방식
  • 임운택 편집기획위원/계명대·사회학
  • 승인 2020.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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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택 칼럼]_ 사인사색

지방대학의 위기가 거론된 지도 꽤 됐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역대학이 사라질’ 것이라는 자조 섞인 소리도 이제는 유머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2021년 입학생 기준 대학입학 가능 인구는 49만 명인데, 전체 대학입학정원은 53만 명이니 입학 가능한 모든 학생이 대학에 다 진학을 해도 정원이 남아돈다. 상황의 심각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21년 서울지역 대학의 수시경쟁률은 14.7대 1이지만, 지방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5.61대 1에 그친다. 수시전형에서 수험생 1명이 최대 6번까지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상당수 지방대학의 정원은 미달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입학정원을 채우는 일도 힘들지만 있는 정원 지키기도 버겁다. 최근 5년간 지방대학의 자퇴생은 꾸준히 늘어 국립대만 보더라도 경북대가 2천4백 명, 부산대와 전북대가 각각 2천2백 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 상당수는 수도권 대학에 편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지난 수년 동안 대학기본역량진단이라는 미명아래 대학구조조정을 유도하여 입학정원을 감축하겠다고 공언하였지만, 별반 효과를 내지 못했다. 또한 전국의 대학이 교육부 예산의 1/3도 안 되는 대학지원예산을 따오기 위해 비굴함을 넘어 교육부 관료를 학교 고위직이나 한직으로 초빙하는 비루함을 감수하면서 소위 자발적 구조조정과 예산의 투명성을 앞세워 대학을 운영하다 보니 말로는 인재양성을 위한 창의적 투자를 하겠다고 해도 결국은 구멍가게식 대학 운영을 벗어나기 어렵다. 대부분의 지방대 홈페이지에 보면 교육부 예산 몇억을 따왔네 하는 눈물겨운 자막으로 도배되어 있다. 정작 그 예산의 몇 배를 가져가는 서울지역 대학은 조용하게 인상관리를 하는 마당에 말이다. 한심한 교육부 정책도 문제지만 대학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도권 대학은 법적 제안을 받지 않는 정원 외 모집을 살금살금 늘려 서울지역 4년제 대학의 정원 외 모집인원은 2012년 10,556명에서 2020년 12,926명으로 늘어났다.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정책이 역설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격차를 늘리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전국 대학교가 공생은커녕 적자생존의 노골적인 모습마저 확인된다.

지방대학을 살리자는 방안도 오랫동안 논의됐다. 정부는 지방대학 지원예산을 더 늘리고, 국립대는 통합국공립대학으로, 사립대는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연구자들의 오래된 연구 결과이고, 해외사례도 있는 만큼 타당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논의는 대체로 국립대 교수와 수도권 사립대 교수들이 주도한다. 생존 가능한 경계의 안에 있는 경우라고 하면 죄송하나 수도권 바깥의 지방 사립대의 경우 말 그대로 구조조정의 야만적 칼날에 놓여 있어 이런 논의도 때로는 한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규모가 작은 지방대학의 교수들은 입시 철만 되면 ‘잡상인과 개, 교수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고등학교 교무실을 들락거린 지 오래됐고, 지방의 상당수 대학교수는 학과평가에서 취업률에 목을 맨다. 아니 특별히 할 일은 없어도 신경이 쓰인다. 물론 평상시에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창의적 인재의 필요성을 입에 거품 나게 떠드는 교수도 취업의 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대학개혁의 가장 큰 주체인 학생들이 이 논의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의도된 결과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다. 물론 지극히 ‘공정하게’ 성적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지방 대학생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 지방대학에서 학과 구조조정을 하면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사실 학생들이 반대는커녕 좋아하기도 한다. 구조조정을 기화로 대학은 너그럽게 학과 선택의 자유를 학생들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입학 당시 원하는 학과에 들어오지 못했는데 학생들이 손쉽게 졸업장을 거머쥘 수 있으므로 학생들은 대학의 구조조정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학과가 없어져도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학과를 사수하려는 시도는 (흔하지 않으므로) 이제 거의 신문에 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역대학의 인문사회 전공 학과에서 상대적으로 입학정원 모집에 문제가 없는 학과는 수도권까지 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일자리가 소화되는 공공 서비스 분야이다. 대체로 저임금 일자리이고, 학과 학생들도 그 직업보다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이러한 학과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학과와 비인기 학과를 나누는 기준은 철저하게 시장중심적이다. 지역에서 사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불평등한’ 기회와 ‘법적으로 허용된’ 불공정 입시 과정을 통해 ‘결과만’ 정의로운 성적표를 받은 학생들이 맞춤형 성적으로 입학과 취업을 동시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모와 자식이 이러한 학과를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 행위이다. 어쩌다 지역의 잘나가는 특정 학과에 들어가면 학생 대부분은 졸업과 동시에 지역탈출을 꿈꾼다. 지역에서 자식이 졸업과 동시에 수도권 대기업에 취업하면 이제 가문의 영광이 된다. 지역대학의 운명이 지방소멸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가끔 열정적인 교수님들이 대학개혁안을 내놓고 지역에서 세계적인 대학을 육성하자는 주장을 들으면 솔직히 실소를 금치 않을 수가 없다. 현실을 너무 모르시든가, 현실을 외면하든가 둘 중의 하나라고 보이는데, 아무튼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일단 불가능하다. 교육부 예산 몇억을 유치해서 도대체 무슨 세계적 연구를 하고 인재를 육성한다는 말인가? 십수 년 동안 대학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놀랍게도 지역의 교수 상당수가 지역경제와 지역사회에 관심이 없다. 그 이유 또한 다채롭다. 지방대 교수 상당수가 지역에 안 살기도 하지만, 살든 안 살든 지역경제와 지역 문제에 대부분 관심이 없다. 우선 지방대 교수를 오래 하면서 지역 유지급 대우를 받아 서까래가 무너져도 현실을 잘 모르는 부류가 있다. 지역의 물가를 고려해보면 수도권 교수보다 나름 삶의 질은 괜찮아 불만이 없고 대학 총장이라도 꿈꾸는 희망에 산다. 지방대에서 열심히 논문업적을 내서 ‘인-서울’을 꿈꾸는 젊은 연구자들도 있다. 그러니 지방대학의 운명에 관심이 있을 리 없고, 이들은 현실을 쿨하게 받아들여 지방대의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런 시간이 흘러 지방대에서 중견 교수가 되면 이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정교수도 된 마당에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기도 귀찮은 만큼 대학교육은 가치와 철학이지 취업전문학교도 아닌데 무슨 실용적 교육이냐 하며 볼멘 목소리를 내는 부류도 있다. 일부 열정적인 교수를 제외하면 조선 시대도 아닌데 다들 ‘관념에 순사(殉死)’라도 할 부류이다.

과연 그럴까? 그토록 목소리 높여 칭송하는 미국과 유럽의 소위 명문대학을 보자. 그곳의 주요 사립대학은 지역경제와 사회혁신에 기여하는 중추적 기능을 하면서도 학술적 성과를 내놓는다. 미국의 주립대학, 독일, 스웨덴, 스페인, 영국 등 유럽의 주요 대학들은 그렇게 지역을 살리고 대학도 살리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지방대는 세계적 대학육성이라는 당장 현실화되기 어려움 미몽에서 깨어나 지역을 살리는 실험과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지역사회와 지역대학은 흡사 샴쌍둥이와도 같아 공동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수도권 이남의 대부분 지역은 대학의 위기뿐만 아니라 청년 유출 인구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이제 생산가능 인구마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이제 과거 미국과 서유럽의 대학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방대학이 지역경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맞춤형 인재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국가-지역으로 이어지는 하향식(top-down) 산업정책이 지역에 산업공단을 중심으로 이식되었다면 오늘날 지역의 경제는 매우 능동적 자율성의 토대 위에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을 목 조르는 정부의 예산 지원방식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지역대학은 연구과 실습이 유연하게 연계되어야 하고, 수도권보다 더 많은 실험적이고도 창의적 프로젝트가 요구된다. 이 모든 걸 단기적 성과 위주로 평가하고 영수증을 통제하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역 대학가 앞의 음식점에 밥값 지불하는 것 외에는 지역경제에 기여할 일이 없다. 당연히 각종 대학 운영의 규제(학제편성과 학과 설립)도 완화해야 한다. 성과가 온전하게 지역의 것이듯 부정적 결과 또한 해당 학교와 지역사회가 지면 될 일이다. 그것이 민주 정부 출범부터 꾸준히 논의된 지역균형발전 전략과 철학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임운택 편집기획위원/계명대·사회학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 사회학 박사. 현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비판사회학회에서 발간하는 <경제와 사회> 편집위원장, 한국이론사회학회 부회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을 맡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정치경제학, 노사관계, 정치사회학, 현대 사회이론이다. 주요 저서로 <전환시대의 논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중위기>, <경제의 디지털화와 노동의 미래>, 공저로 <현대사회와 베버 패러다임>, <문화, 환경, 탈물질주의 사회정책>, <청년실업과 노동시장, 그리고 국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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