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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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
  •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0.12.20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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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2020년의 뮤지컬계는 너무도 힘들었다. 살얼음판 걷듯 공연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멈춤이다. 올해 계획되어 있던 몇몇 해외 라이선스, 투어 팀 공연은 취소되었고 불투명해 보이는 내년 라인업도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의하면 올해 시장 규모는 작년 대비 약 1/4로 축소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온라인 공연의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가 확장되는 가운데 메이저 제작사의 유료 공연 횟수가 많아지고 있으며, 아예 영상에 뮤지컬을 접목시킨 ‘웹 뮤지컬’, 3D 영상으로 뮤지컬을 즐기는 ‘팝업북’도 개발되었다. 언택트 시대의 종말이 선언되기 전까지 공연과 영상 그리고 첨단 IT기술을 접목시킨 아이템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실험될 것이다.

▲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장면 (사진=함안군)
▲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장면 (사진=함안군)

그 사이에 함안군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무료 실황 공연(2020년 11월 28일)은 여러모로 독특했다. <여명의 눈동자>는 수키컴퍼니에서 제작한 뮤지컬로서 2019년 3월 초연 이후 2020년 1월에 재연을 완료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 제작사가 투자 사기를 당해 어려움을 겪었고, 재연 시에는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끝까지 완료했으나 배우와 스태프의 임금 미지급 사태로 문제를 노출했다. 이번 공연은 재연 이후 성사된 첫 번째 지방 공연으로서 코로나 상황의 악화로 취소된 회차를 만회하기 위해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된 것이었다. 실황 공연 중계가 끝난 이후 함안군은 12월 7일 오전 9시~14일 오전 9시까지 실황 공연 전체를 관람할 수 있게 유튜브 채널에 걸어두었으며 이는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코로나 상황과 프로덕션 운영의 아이러니한 공생 관계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여명의 눈동자>가 보여주는 ‘역사 뮤지컬’의 모습이다. 동시대 온라인 공연 현장은 핸드폰과 태블릿 PC로 보는 숏폼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게 접근성이 높은 웹 뮤지컬을 주목하고 있고, 아이돌이나 뮤지컬 스타가 출연하는 유명 뮤지컬을 오픈하여 관객이 배우의 면면을 화면으로 가깝게 접하도록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물론 <여명의 눈동자>는 무료 오픈이었기에 시장의 규모를 창출하는 상업적인 마인드와 무관할 수 있었으나, 이처럼 무관할 수 있는 어떤 도저한 흐름이 한국 역사 뮤지컬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1991년 10월 7일부터 1992년 2월 6일까지 총 36부작으로 방영되어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른 동명의 MBC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그리고 그 원류에는 김성종의 동명 소설이 있다. <여명의 눈동자>의 매력은 삼각관계에 놓인 세 남녀(최대치, 윤여옥, 장하림)를 주축으로 하여 1940년대에서 1950년대 초 격동의 역사를 한 흐름으로 꿰뚫었다는 점에 있었다. 인물들의 비극적 종말은 일제 강점기에서 이어져 좌우로 갈라진 이념 전쟁의 결과라는 점에 있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대치를 향한 여옥이의 마지막 대사, “그저 함께 있는 것, 그게 참 어렵네요, 우린.”은 이념에 휘말린 두 사람의 비극적 운명을 한 마디로 함축하며 작품 전체를 울렸다.

▲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장면 (사진=함안군)
▲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장면 (사진=함안군)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가 위의 테마를 발언하기 위해서는 관련되어 있는 역사적 사건을 흐름에 맞춰 모두 담아내야 했다. 배경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인물들의 운명을 주도하는 역사로서 주요 인물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작품은 사상범으로 몰려 재판을 받고 있는 여옥이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필요한 역사적 사건을 모두 담아낸다. 조선인 위안부와 학도병 문제, 태평양 전쟁, 마루타 실험, 8·15 광복, 남한 단독정부 수립, 제주 4·3항쟁 등이 ‘여옥이의 현재’와 대비되며 재현된다. 따라서 공연은 역사를 최대한 정공법으로 다루며 그 격랑 속에 내몰린 피해자들을 주목한다. 관객이 역사의 큰 줄기를 빠르게 따라가면서도 주요 인물 세 사람에게 정서적으로 밀착될 수 있는 이유다. 인물의 개별적인 서사에서 간혹 공백이 보이지만 논리적 연결성이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은 작품의 추진력을 만드는 비애의 정서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가슴 먹먹한 여운이 남고 현대사의 문제적 지점들을 돌아보게 된다면, 공연의 의도를 잘 수용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동안 한국의 역사 뮤지컬은 거칠게 말해 비장과 비애의 미학을 활용해왔다. 우리는 뮤지컬에서 영웅과 역사의 피해자를 참 많이도 봐 왔으며, 딱 그 지점에서 대중성을 학습해 왔다. 동시대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보편적 역사’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뮤지컬은 주로 정공법과 엄숙주의를 활용해왔으며, 따라서 음악은 주로 벨칸토 베이스의 가창이 필요한 톤으로 작곡되었다. 온라인 공연은 단기간의 고민으로 끝날 것이라 희망하지만, 어찌 되었든 시대적 요구에 따라 뮤지컬과 영상이 결합되고 있는 동시대의 현장에서 역사 뮤지컬만 같은 방법론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덕션 운영의 측면에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함과 동시에 다소 도발적인 예술적 상상력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에서 결과물을 낸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1971년에 초연되었으며, 브로드웨이산 <해밀턴>(2015)은 셧다운 이전까지도 여전히 미국인들의 엄청난 애호를 받았다는 사실을 그저 경탄의 눈으로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조선의 건국이 랩과 힙합으로 노래된다면? 우리는 <해밀턴>의 방법론이 오히려 참신한 역사교육 퍼포먼스를 이끌어내면서 관객 저변 확장을 일궈낸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창작뮤지컬에서 재현된 서울의 양상”, “여성국극의 혼종적 특징에 대한 연구”, “한국적인 것’의 구상과 재현의 방식”, “번역된 문화와 한국적 디코딩”, “‘근대적 지식인 되기’를 향한 욕망의 서사”,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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