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쌀인데 왜 밥맛이 다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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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쌀인데 왜 밥맛이 다 다를까?
  • 연승우 한국농업신문 편집국장
  • 승인 2020.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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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과학 리포트]

똑같은 쌀인데 왜 밥맛이 다 다를까?

- 우리가 몰랐던 밥맛의 숨겨진 과학 -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인들이지만, 밥맛에는 그다지 관심이 많지는 않다. 한국인들의 주식인 쌀은 이상하리만큼 맛과는 무과하다. 단지 찰진 밥, 기름기 흐르는 밥이면 된다. 찰지고 기름기 흐르는 밥은 품종보다는 조리방식에서 결정된다.

1980년대 압력밥솥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한국인은 기름기 좔좔 흐르는 찰진 밥을 먹을 수 있게 됐고 품종에 의한 맛은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소득의 증가로 맛을 선호하게 되면서 밥도 맛있는 품종을 찾게 됐다. 2010년대 쌀의 품종 표시가 의무화되면서 어느덧 대형마트 쌀 판매대에는 단일 품종의 쌀이 혼합 품종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다. 단일 품종의 쌀은 단순히 찰진 맛보다는 각자 품종 특성의 맛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쌀알의 크기가 큰 신동진, 적당한 찰기와 씹는 맛이 좋은 삼광 등의 품종이 경기미라 불리는 추청 품종만큼이나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과정에는 과학자들의 피나는 육종 개발이 그 뒤에 있었다.

1970년대_ 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

한국전쟁 이후 국내 식량 사정은 무척이나 불안했다. 가난했던 한국은 쌀을 수입하기 어려웠고 미국에서 원조해온 밀로 식량 부족을 대신하던 때였다. 쌀이 부족해지자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무미일(無米日)을 지정해 식당에서 밥을 팔지 못하게 했다.

1970년 식품위생법에 무미일 조항이 새로 생기면서 음식점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점심 식사에 쌀밥을 판매할 수 없었다. 혼분식이 장려되면서 식당에서는 강제적으로 30% 이상의 잡곡을 섞어서 팔아야 했고 학교에서는 학생들 도시락 혼식을 검사했고 이를 어긴 학생은 체벌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설렁탕집에서 소량의 국수를 주는 것도 1970년대 혼분식 장려 운동의 잔재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수확량이 많은 벼를 유전적 성질을 이용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 거나 기존 품종을 개량하는 것이 국가적 목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첩보 기관인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이집트의 다수확 품종인 ‘나다’ 볍씨를 국내로 밀반입했지만, 재배에는 실패하고 만다.

지난 2010년 작고한 故허문회 서울대 농대 교수가 1962년 미국의 지원으로 필리핀에 설립된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수확량이 많은 벼 품종 개발에 몰두했다. 허 교수 연구의 목표는 인디카 품종에서 내도열병성을 유도하고 단간품종에서 내도북성을 유도하며 “Semi-dwarf“ 유전자를 가진 품종에서 다수성초형을 유도하자는 연구였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찰기가 많은 자포니카 계열의 쌀을 재배하고 먹어왔는데 자포니카 품종은 수확량이 인디카 계열보다 떨어지기에 두 품종을 교잡해 다수확과 찰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애초에 두 품종은 교잡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불가능할 줄만 알았던 교잡연구에 대해 허문회 교수는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교배로 600여 조합의 잡종을 만들었고, 그중 21개를 선별하여 수 대에 걸쳐 자가교배를 시켰다. 이러한 연구 과정속에 3원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잡종 집단으로부터 높은 생산성이 기대되는 벼를 선발해 육종한 끝에 육종명 IR667을 개발했다.

국내 농업기술 연구기관인 농촌진흥청과 함께 연구와 재배를 함께 하면서 통일벼가 만들어졌다. 통일벼는 시험 재배를 거쳐 1972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보급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IR667의 밥맛 테스트에서 ‘찰기는 보통, 맛은 좋다’라고 평가하면서 전국적으로 보급을 명령했고 정부는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쌀을 수매하는 추곡수매제를 시행하면서까지 신품종 재배를 촉진시켰다.

이후 통일벼가 지닌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후속 품종 개발을 추진했는데, 밥맛을 개선한 ‘유신’이 대표적이었다. 통일벼 재배가 늘어나면서 1977년 드디어 쌀 자급률 100%를 달성했고 무미일도 함께 사라졌다. 이와 함께 금지됐던 쌀 먹거리 제조도 풀렸다.

1980년대_ 맛 좋은 쌀을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

1970년대 쌀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고 ‘통일벼’가 개발됐지만, 다수확품종의 최대 단점이 맛을 극복하지 못한 통일벼는 소비자에게 외면받았고 냉해 등에 취약해 서서히 도태됐다. 이후 벼 품종 육성은 수확량과 맛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과 함께 내병성과 내재해성 품종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1980년대에는 자포니카 양질미 품종 중에는 기본적으로 내도복성*과 내냉성*을 상당히 갖추면서 주요 병해에 복합적으로 저항성을 가진 품종들이 개발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벼멸구 내충성을 가진 화청벼가 개발 보급됐다.

*내도복성: 작물의 쓰러짐에 강하여 이겨내는 성질
*내냉성: 식물이 찬 기온에 강한 성질.

2000년대_ 퇴출되는 다수확 품종, 그리고 밥맛Ⅰ

2004년 개방하기로 했던 쌀을 2014년까지 관세화를 유예하면서 밥쌀용 쌀을 수입하기로 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가공용으로만 사용했던 수입쌀 중 일부를 밥쌀용으로 시판이 가능해졌고 2005년 이후 국내 쌀 시장은 수입산으로 인해 공급과잉에 시달려야만 했다.

공급이 과잉되자 정부는 다수확 벼 품종을 퇴출하기 시작했다. 농가들의 재배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지만, 공공비축미에서 다수확품종을 배제했다. 이후 등장한 호품은 2009년 농식품부가 최고 품질 품종으로 지정한 쌀 8종 중의 하나였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호품은 종자보급 3년차였던 2010년 국내 최고 인기 품종 '추청'을 제치고 재배면적 전국 1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면서 전남북, 충남지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한 품종이 됐다. 호품을 개발한 김보경 전 식량작물과장은 “2006년 육종해서 보급한 품종으로 농가입장에서는 재배 안정성이 뛰어나고 수확량이 많으니 인기가 좋았고 밥맛도 좋아서 재배량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김보경 과장은 “농가에서는 수확량이 소득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다수확품종을 선호하기 때문에 호품품종을 재배했다”고 덧붙였다.

2010년대_ 퇴출되는 다수확 품종, 그리고 밥맛Ⅱ

2010년 전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된 호품은 풍년이라는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2008년, 2009년 연이은 대풍으로 쌀 생산량이 대폭 늘면서 쌀값이 하락하자 다수확품종 재배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 여기에 재배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단점으로 변질됐다.

​농가들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적정 시비량보다 훨씬 많이 비료를 주면서 생산량은 많아졌다. 그러나 문제는 밥맛이었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비료를 많이 줄수록 미질은 나빠졌다. 맛이 좋다는 장점을 잃어버리자 농가들의 원성이 높아졌고 2011년 종자발아 문제가 발생하면서 농가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최근 대형마트 쌀 판매대에 가면 생산지역별로 전시하던 이전과는 달리 품종별로도 구별해서 전시해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밥맛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고 시장에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도 현격히 줄면서 양보다는 맛과 질에 의미를 두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일본은 밥맛에 치중해 고시히까리라는 국민 품종을 만들어냈고 한국에서도 재배가 되고 있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통일벼에서 그리고 호품과 황금누리는 한국사에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 최고의 품종은 다수확이었고 품종 개발은 다수확과 재배적성, 내병성 등이 주요 목표였지만, 먹고 살만한 지금은 맛과 기능성이 품종 개발의 최대 과제가 됐다.

2020년_ 풍성한 식탁을 위한 과학자들의 끝없는 노력

최근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농촌진흥청 공동연구를 통해 벼의 노화 속도를 조절하여 수확량을 늘리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연구진은 벼의 노화 속도를 결정하는 유전적 요소를 규명하기 위해 벼의 대표적 아종인 자포니카와 인디카를 비교하였다.

벼의 노화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밝히고 이를 이용하여 생육 및 광합성 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벼 수량성을 7% 향상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노화 차이를 이용해 생산성이 높은 품종 개발이 가능해질 것으로 연구자들은 예상하고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화 조절 유전자를 이용하여 벼 외의 다양한 작물 육종 개발이 가능해지고, 이는 식량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0년대의 개발 방향이 용도별 육성이었다면 코로나19 이후에는 식량 위기에 대응할 수 있고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품종 개발이 주를 이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간편식이나 HMR 등에 원료곡으로 사용할 수 있는 초다수확성 품종 개발과 함께 건강에 대한 항산화, 항노화, 다이어트 등에 맞는 품종도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전 기술의 발달로 과거의 전통육종방법에서는 불가능했던 열악형질을 첨단육종기술로 제거하고 필요한 유전자만 삽입하는 유전자 교정기술로 이상기후에 저항성을 가진 품종 개발도 기대된다.

[출처] IBS(기초과학연구원) 블로그 | SCIENCE LOUNGE: 똑같은 쌀인데 왜 밥맛이 다 다를까? | 2020. 11. 27 | (https://blog.naver.com/ibs_official/222155974211)

 

연승우 한국농업신문 편집국장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 문화교양학과를 전공하였다. 한국농정신문 취재부장, 원예산업신문 취재부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농업신문 편집국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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