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인권의 관점에서 구성된 새로운 기후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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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인권의 관점에서 구성된 새로운 기후 내러티브
  • 조효제 성공회대학교·사회정책학
  • 승인 2020.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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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듣는다]

■ 저자에게 듣는다_ 『탄소사회의 종말: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지음, 21세기북스, 480쪽, 2020.11)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는,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 지구적 사건이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문제를 바이러스에만 한정 시켜 보아서는 안 된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코로나는 기후위기, 환경파괴, 생물다양성 상실, 산림벌채, 항생제 내성, 공장식 축산 등과 서로 엉켜있는 현상이다.

특히 기후위기는 감염병 사태를 계속 발생, 악화시키는 뿌리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파국의 연쇄성과 관계성 속에서 코로나와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을 다이내믹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기후변화가 직간접적으로 천의 얼굴을 한 현상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또한 이런 사태의 근본 원인을 인권의 눈으로 따져야 하는 점도 분명히 나타났다. 화석연료 기업, 막개발과 환경파괴, 탄소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공장식 축산 등이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생명, 건강, 생존, 발전에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후위기를 환경문제로만 보았지 인권문제로 보는 시각은 부족했다. 설령 인권문제로 인식한다 해도 그것을 국가와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인권침해 이슈라고 생각하는 관점이 적었다. 또한 불평등과 차별을 기후변화의 핵심 문제로 파악하는 기후정의 원칙이 인권에서 출발한다는 점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를 역임한 메리 로빈슨은 기후위기가 21세기에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인권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기후변화를 주로 환경문제로 생각해 온 사람이라면 ‘기후와 인권’의 조합이 여전히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사회문제를 상상하는 방식 자체가 환경, 교육, 여성, 노동, 장애, 인권... 이렇게 칸막이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인간 사회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는 포괄적 조건과 같은 것이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각종 악영향을 환경에서만 다룰 수 없다.

인권, 여성, 아동, 장애, 노동,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가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후변화의 ‘인간화’가 필요하다. 기후변화를 통계수치와 과학 그래프 중심으로 다루면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과 거리가 먼 전문영역으로 치부하게 된다. 기후변화를 보통 사람의 눈높이와 감성의 차원으로 ‘인간화’하고, 보통 사람의 시간의 지평에서 그리고 보통 사람의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내러티브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학적 상상력도 필요하다. 기후문제의 대응에 있어서 단지 탄소 배출의 물리적 감축만을 중심으로 문제를 보는 것은 협소한 관점일 수 있다. 기술결정론적 단일 해법을 넘어 사회과학적인 통찰이 바탕이 된 통합적 기후행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탄소 자본주의의 생활양식, 인간의 사회적 배태성, 사회 불평등, 문화규범, 젠더 역할, 사회심리와 사회문화적 장벽 등을 감안한 통합적 기후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기후위기를 인권문제로 보려면 ‘기후-인권 감수성’이 필요하다. 기후-인권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단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심각성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인권문제로 인식하여 국가와 기업에 책임을 물으려면 그들의 행위에 대해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재난 즉 ‘천재’(天災)로 피해를 입으면 흔히 ‘불운’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잘못으로 발생한 재난 즉 ‘인재’(人災)로 피해를 입으면 ‘불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후위기를 인권문제로 본다는 말은, 기후위기 피해를 인재에 의한 ‘불의’로 본다는 뜻이다.

보통의 인권침해 사건에서 우리는 불의한 가해자에 분노하고 그의 책임을 물으려 한다. 그런데 기후변화의 가해자라 할 수 있는 국가와 기업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면 기후문제를 거대한 시스템적 정의의 관점에서 볼 줄 아는 눈, 즉 구조적인 차원에서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이때의 분노는 사적이 증오가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정의로운 공분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 폭염, 태풍과 바이러스 창궐에 대해 정부의 ‘사후’ 대응만 성토할 것이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사전’ 책임을 추궁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제대로 인권문제로 보려면 애초에 기후위기를 발생시킨 근본 원인, 즉 온실가스 배출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인권유린 행위임을 깨닫고, 인권의 이름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국가와 기업에 ‘명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개별적 공정성의 요구를 넘어 구조적 공정성에 대한 요구로 분노가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 시각을 가지려면 기존의 사안별 인권침해를 바라보던 관점을 넘어 특별한 인권 감수성이 요구된다.


조효제 성공회대학교·사회정책학

성공회대학교 교수 겸 베를린자유대학교 글로벌 패컬티 초빙교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비교사회학 석사, 런던정경대학교(LSE)에서 사회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인권학회장, 국제앰네스티 자문위원,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유엔본부 학술대회 기조강연자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인권의 최전선』, 『인권의 지평』,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인권의 문법』, 『Human Rights and Civic Activism in Korea』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인권사회학의 도전』,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인권의 대전환』,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세계인권사상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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