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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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명상
  • 류근조 논설고문/중앙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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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조 詩房]

                             죽음에 관한 명상

                                             (1)
                                   오늘의 법정
                                                 - 고독사孤獨死

                                                                                류 근 조(1941~ )

   오늘 아침 조간신문을 보고서 나는 비로소 그간 막연히 강 건너
   남의 일로만 알고 있던  여러 사회적 요인과 맞물려 발생하는
   고독사의 실체와 이와 관련된 유물정리업과 같은 사업이 특수特需
   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의 여러 가
   지 마지막 흔적으로서 죽음의 여러 형태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 얼른 머리에 가족의 두 가지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 하나는 80순의 가까운 나이에 어느 날 들에 나가 농사일을 거들
   던 조모님께서 앓아 누운 채 쾌차를 위해 누이동생이 끓여드린 미음
   까지 거부, 이제 갈 때가 되었다하시면서 누운 그 자리에서 신음신음
   스스로의 의지대로 세상을 하직하시던 모습이고 또 하나는 거의 같은
   나이에 병원 진찰 후 회복 불가능의 중병을 확인하신 후 일 년 넘게
   연명하시다가 며느리 부엌일을 돕던 어느 날 아침 방에 드신 후 밖에
   나간 막내 동생을 불러 들여 미리 당신께서 마련해 둔 수의를 입으신
   후 그 품안에서 종명하시던 모습이다

   물론 이런 의지적 결정사와 위의 고독사 외에도 죽음의 여러 형태로서
   능히 조금 수구려 비껴갈 수 있음에도 명예나 자존심 때문에 결행한 죽
   음의 형태나 존엄사 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죽음을 하나로 묶어 요약하면 죽음은 주검으로 가는
   불가항력적 자연의 섭리와 법칙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여기서 고독사만을 유독 문제 삼아 법정에 내세운 이유는
   위의 다른 여러 죽음과 달리 생의 존엄과는 관계없는 비의지적 비선택적
   출구를 막은 산자들의 무관심과 보이지 않는 공동책임과 유관하다고 하는
   관점에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필자는 여기에 자리를 함께한 배심원(독자) 여러분의, 고발자(필자)의
   심리적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사항으로서 조간신문 기사 중 “번개탄 자살자
   의 뭉그러진 손톱”과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는
   말을 인용해 둔다.

   모든 생명은 위대하다(이는 최종 의사봉을 쥔 재판관의 말)

 

                               (2)

   죽음에 관한 명상에 관한 글에는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 로마 황재皇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유명하지만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저 그리스 대 서사시인 호머의 시구詩句 한 구절 -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유자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하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긴 자나,
   모두가 한 가지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얼마 아니 하여서는 바람에
   불리어 흩어지고,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공통한 것이라고는 자연의 순환질서 속 죽음이 주검으로 이어지는
   원리라는 틀 속 인간 삶 역시 크게 보면 다만 그들의 목숨이 짧다는
   것뿐이다”라고 본 생사관生死觀으로서도 충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든~다

                 


류근조 논설고문/중앙대학교 명예교수·시인

중앙대 국문과 명예교수로 시인이자 인문학자이며 국제 힐빙학회 회원이다. 1966년 『문학춘추』 신인상으로 등단. 저서로 『날쌘 봄을 목격하다』, 『고운 눈썹은』 외 『안경을 닦으며』, 『지상의 시간』, 『황혼의 민낯』, 『겨울 대흥사』 등 여러 시집이 있다. 2006년 간행한 『류근조 문학전집』(Ⅰ~Ⅳ)은 시인과 학자로서 40여 년 동안 시 창작과 시론, 시인론을 일관성 있게 천착한 업적을 인정받아 하버드 대학교와 미시건 대학교의 소장 도서로 등록되기도 했다. 현재는 집필실 도심산방(都心山房)을 열어 글로벌 똘레랑스에 초점을 맞춰 시 창작과 통합적 관점에서의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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