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현재와 미래〉 국제학술회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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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현재와 미래〉 국제학술회의 개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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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_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위안부’문제 국제학술회의 개최

- 최근 독일 베를린 소녀상 설치를 둘러싼 논란 등 일본군‘위안부’ 문제 현황 점검 및 미래 교육 방안 논의

동북아역사재단은 12월 8일(화) 일본군‘위안부’문제 관련 국내외 전문가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현재와 미래 – 어떻게 계승하고 교육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는 최근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소녀상을 둘러싼 논란 등 일본군‘위안부’ 문제 현황을 다각적으로 점검하고, 피해자의 뜻을 존중하면서 평화와 인권을 위해 이 문제를 어떻게 교육하고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날 행사의 개회식에는 유기홍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과 함영기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이 축사를 하고 정진성 서울대 명예교수가 기조연설을 했다. 정진성 교수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위원으로 1990년대 초부터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유엔 등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해 왔으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일본군‘위안부’문제, 이제까지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이외에도 알렉시스 더든 커네티컷대 교수, 히라이 미치코 오사카 공립중학교 교사, 팰리스 킴 CARE(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 대표 등 일본군‘위안부’문제 관련 연구자, 활동가 및 언론인 등 전문가 21명의 발표와 토론이 총 3개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 미국 내 대표적인 동북아 역사 전문가인 더든 교수는 발표문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식민통치 및 전시상황에서 자행된 성노예제도라며, 성노예제나 성폭력, 강간소(위안소) 등의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연구와 교육의 출발점이고, 정부 문헌과 더불어 피해자의 증언이나 심리 치료 과정에서 그린 피해자의 그림 등도 과거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들의 삶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역사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 정용숙 교수(중앙대학교 독일유럽연구센터)와 이광빈 베를린 특파원의 발표에서는 최근 일본 정부, 국회의원들이 지난 9월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세워진 소녀상 철거를 강하게 요구하는 상황에서, 독일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지, 소녀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등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더불어 전달했다.

정 교수는 일본은 소녀상이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한일 간의 외교 분쟁 사안’이라고 주장하지만, 독일 베를린 시민들에게 소녀상은 반일 민족주의 상징이 아니라,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을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에 의하면 독일의 저널리스트들은 동아시아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위해 역사 화해가 필요하며, 여기에 ‘독일 모델’이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독일이 홀로코스트와 전쟁 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통해 ‘독일문제’를 졸업하고 EU의 실질적 리더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것처럼, 일본도 가해자로서의 과거로부터 비롯된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동아시아 평화질서에 기여하고 경제적 실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로서 ‘위안부’에 대한 실증은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니며, 문제는 책임 인정과 후속 조치다. 이 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각 언론매체의 시각은 자국의 국내 문제에서 차별화되는 정치적 입장과 크게 관계없이 대체로 자유주의적이며, 전후 독일 사회가 확립해 온 기억 문화에 충실하다. 다만 좌파 성향 매체일수록 페미니즘적 시각이 더해지며 전시 성폭력과 여성 인권의 측면이 부각된다. 특히 자유주의 또는 대안 비판 언론들은 보편적 여성인권 연대라는 인도적 입장에서 일본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며 이를 위한 행동에 동참하기도 한다.

정 교수는 기억정치와 기억문화에서 독일은 일본의 반대 모델임을 지적했다. 교과서 분쟁이 지속되는 아시아와 달리 독일의 학교교육에서 나치 과거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전후 독일의 기억문화는 홀로코스트의 성찰을 기반으로 하며 시민사회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성찰적 기억문화는 전후 독일인의 정체성 일부가 되었다. 반면, 일본의 시민사회는 이런 정도의 성찰적 기억문화를 발전시키기 못했고, 우익 정치인들은 오히려 이와는 반대방향으로 전후 일본인 정체성을 촉진해 왔다는 것이다.

▶ 히라이 미치코(平井美津子) 오사카부 공립중학교 교사는 교육현장 경험을 토대로 <일본 중학생에게 가르치는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현재 일본 국내에서는 ‘위안부’라는 단어에 ‘거짓말 강요는 없었다’라는 반응이 난무하고 있는 형국으로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부정적으로 다루고, 역사수정주의자가 부추긴 것도 큰 원인이나, 식민지 지배 책임을 성찰하지 못한 부분도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닌 현대적 과제를 아우르는 사안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직시할 것인가에 사회의 성숙도가 가늠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실, 배경, 이 문제를 둘러싼 경위, 일본 정부의 대응, 한국과의 갈등, 피해자의 바람 등을 “이성적이면서도 과학적으로 성찰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한일 양국의 장래 평화로 이어지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 ‘해외 위안부 기림비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 발표한 김현정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CARE) 대표는 한인들만 이용하는 한인 문화회관이나 한인회관, 한인타운 내 쇼핑몰이나 한국식당 등 사유지에 소녀상이나 기림비가 세워지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공공부지에 장소를 찾다가 일본의 방해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유지로 간 것이라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정부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이슈화하여 현지 주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오히려 일본정부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할머니 운동에 타격을 가져오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성인권문제로서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위안부’ 문제를, 한인들끼리 똘똘 뭉쳐서 반일을 외치는 편협한 민족주의로 비치게 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해외에 세워지는 기림비는 공공성을 전제로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지 커뮤니티가 주도하여, 다인종 커뮤니티의 지지를 기반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물론 공공부지로 기림비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사유지에 세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수고를 요하며, 정치력과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이를 위해 일본정부를 압박하려면 해외에서 어떤 전략을 기반으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지난 25년간 겹겹프로젝트(重重プロジェクト) 이름으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만나 증언과 사진을 기록하고, 그녀들의 삶을 지원해온 안세홍 사진가는 ‘아시아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이란 주제의 발표를 통해 역사 속에서 일반 개개인의 역사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피해자 개개인의 증언이 중요하고 그 목소리들이 쌓였을 때, 역사는 기록됨을 상기시켰다. 그는 우리가 아픔의 역사, 피해자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아픔의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일부 나라만의 관심이 아니라, 피해국 간의 긴밀한 연대가 있어야 하고 그 기반에는 대중이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인식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몇 개의 단어, 반일 감정을 넘어 좀 더 넓게 객관적으로 봐야 하며, 점점 피해자가 사라지는 가운데 그분들 목소리의 기록과 함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뿐 아니라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 태평양 연안 국가들의 전쟁과 인권문제로서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양미강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와 한혜인 아시아평화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의 발표를 토대로 피해자 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은폐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이 문제를 보편적 여성인권의 문제로 끌어올린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열여섯 분만 생존해 계신다. 한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이 문제를 어떻게 계승하고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실천적인 방안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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