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과학의 역사적 기원: 〈객관성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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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의 역사적 기원: 〈객관성의 칼날〉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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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25강>_ 이중원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의 「근대 과학의 역사적 기원: <객관성의 칼날>」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5. 근대 과학과 인간의 삶’ 제 25강 이중원 교수(서울시립대 철학과)의 강연 중 주요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이중원 교수는 서구 사회에서 고대 그리스의 “자연을 합리적으로 탐구하려는 자세와 방법론 그리고 세계관”을 계승하는 “근대의 과학혁명이 자연학에서 근대 과학으로의 전환을 어떻게 이루어냈는지” 찰스 길리스피(Charles Gillispie)의 저서 『객관성의 칼날』이라는 텍스트를 우회해 살펴본다. 시기적으로는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통해 지동설을 발표한 1543년부터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발표한 1687년까지”의 근대 과학혁명기를 다룬다. 실제로 그 기간은 코페르니쿠스를 시작으로 하여 케플러, 갈릴레이, 베살리우스를 거쳐 “데카르트의 철학과 수학적 전통”과 “베이컨의 사상과 실험적 전통”을 관통해 “뉴턴의 종합”에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지적 여정을 통해 근대 과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곱씹어본다.

▲ 지난 11월 7일, 이중원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25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 지난 11월 7일, 이중원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25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왜 고대 그리스 철학에 주목하는가?

근대 과학의 기원을 논할 때, 우리는 근원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그 유산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스의 철학이 사변 철학이지만 전통적인 신화적 자연관 혹은 세계관을 벗어나 합리적 사고와 추론에 바탕한 우주 개념, 즉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 정연한 우주 개념을 정립하였기 때문이다. 신화에서 철학으로 혹은 합리적 지식으로의 전이는 인류 지성사에서 그리스 철학이 갖는 중요한 역사적 함의다. 그리스 철학은 자연에 대한 탈신화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부터 출발하여, 철학의 범주를 형이상학과 자연학으로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한 사고를 정교하게 다듬고 체계화하였다. 여기서 자연학이 오늘날의 과학처럼 자연에 대한 경험적 탐구와 분석을 통해 자연의 질서를 찾는 학문이라면, 형이상학은 이런 자연의 질서 및 사물의 존재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이 근대 과학의 기원으로 불리는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자연에 관한 지식은 17세기 과학혁명을 통해 근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으로부터 분리되기 전에 철학의 일부분을 형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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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승과 단절

근대 과학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 철학에 두더라도, 그로부터 계승된 측면과 단절된 (혹은 전환적) 측면이 동시에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다. 계승된 측면이라면 (오늘날 대부분 잘못된 내용으로 판명된) 그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자연을 합리적으로 탐구하려는 자세와 방법론 그리고 세계관일 것이다. 한편 단절된 측면과 관련해서 기존의 자연학에서 진술된 구체적인 세부 내용과 주장들이 사실상 대부분 오늘날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만큼, 단절의 의미가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새로운 발견과 내용으로 과학 지식의 진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면에서, 단절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전환으로서의 의미가 더 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전환의 관점에서 근대 과학과 고대 그리스의 자연학(자연철학)과의 중요한 차이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이 순전히 인간의 합리적 사유와 논리에서 출발하여 그 사유의 틀 안에서 전적으로 우주에 대한 지식을 구성했다면, 근대 과학은 외부 세계인 자연에서 출발하여 그로부터의 물리적 신호를 경험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하고 이를 이성의 작용을 통해 합리적인 지식 체계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근대 과학은 출발부터 탈주관화와 객관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 우주는 그 자체로 질서 정연한 우주, 질서 정연함을 목적으로 하는 우주다. 여기서 모든 사물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각각의 위치를 부여받고 그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동하게 된다. 가령 무거운 돌은 낙하하고 가벼운 불은 상승할 것이며 별은 정해진 궤도를 원운동할 텐데, 이 모두가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운동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주 관념은 비록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도출되었다 하더라도, 실험을 통해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해석, 곧 근대 과학과 연관 지어 엄밀하게 말한다면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객관적 사실로부터 검증받을 수 있다는 의미의 객관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탈주관화와 객관성의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넘어 근대 과학을 성립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고대 그리스 철학에는 기하학을 통해 우주와 사물의 본질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려 한 양적 흐름이 존재하긴 하지만, 주류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 보듯이 주로 우주에 관한 형이상학적 사고와 사물의 분류에 바탕한 범주 개념을 근거로 우주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려 한다는 면에서 질적이다. 우선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학파 철학자들은 자연이 수로 이루어져 있고, 수는 사물의 형상을 포함하기에 실재하며 이상적이고 또한 수에는 완전하고 영원한 구조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플라톤도 이러한 생각을 이어받아 “신은 항상 기하학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논리적이고 완벽한 기하학을 활용하여 불완전한 경험 세계를 초월한, 완전하고 이상적인 자연의 존재를 추구하였다. 모두 자연을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에겐 현실 세계가 아닌 이상 세계의 수학만이 있을 뿐, 근대 과학이 추구하는 현실 세계에 대한 수학적 분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존의 4원소설을 계승하고 각 원소에 정성적 성질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의 위계질서와 사물의 다양한 변화 및 운동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는 원자론자나 플라톤이 강조했던 정량적이고 수학적인 관점에서 정성적인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반면 근대 과학은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을 가능한 한 최대한 수리적으로 표현하고 실험을 통해 계량적으로 검증하려 한다는 면에서 양적이다.

2. 근대 과학혁명과 근대 과학의 태동

1) 천문학과 물리학 분야

과학사가들은 근대의 과학혁명이 일어난 시기를,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통해 지동설을 발표한 1543년부터 뉴턴이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발표한 1687년까지의 시기로 본다. 이 시기에 여러 분야에서 혁명적 전환이 일어났지만, 천문학에서의 혁명과 물리학에서의 혁명이 근대 과학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의 과학혁명은 천문학(우주론)과 물리학(동역학)이라는 두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우선 최초의 시동은 천문학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바로 전통적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대신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등장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에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하여 지동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는 구조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천문학 분야의 혁명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로 첫 번째는 현실의 물리적 현상과 수학적 형식의 결합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천체가 회전하는 구조와, 지구와 천체를 회전시키는 원동력으로서 자연스러운 기하학의 원운동을 결합한 것이다. 두 번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서를 뒤엎은 점이다. 우주 안에서 지구는 더 이상 무거운 물체의 존재 장소가 아니라는 것과,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면 지구가 중심이었을 때 천구의 원운동에 따른 우주의 유한성을 뛰어넘어 우주가 무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천문학의 두 번째 혁명은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에 관심이 많았던, 그래서 그의 주장을 계승하려 했던 바로 케플러(J. Kepler, 1571~1630)에 의해서 일어났다. 케플러 법칙이 던져준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우주 질서의 기초로 받아들여 온 원운동의 관념, 곧 원운동은 우주의 가장 자연스럽고 완전한 운동이며 천체는 이 원 위를 영원히 회전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객관적인 관찰 데이터에 근거하여 천체의 운동을 추상적인 새로운 수학적 기초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 모두 천체 현상과 관련하여 새로운 혁신적인 주장과 발견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프톨레마이오스처럼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에 대한 이상, 곧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의 피타고라스 전통이나 플라톤주의, 나아가 중세 시대의 천상계의 원운동에 대한 믿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면 생각 자체는 여전히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기 천문학의 혁명은 근대 과학의 시각에서 볼 때, 이어질 물리학에서의 혁명 곧 역학 혁명을 기다려야 하는 미완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에 관심이 많았던, 또 한 사람은 바로 최초로 근대 물리학의 혁명을 일으킨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다. 갈릴레오는 우선 “자연의 책은 수학으로 기록되어 있다”라고 선언했다.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이 아닌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했던 케플러와 달리, 갈릴레오는 과거와의 단절을 추구한 진정한 ‘근대적인’ 과학자임도 알 수 있다. 진정한 ‘객관성의 칼날’인 셈이다. 이처럼 근대 과학은 갈릴레오와 함께, 그의 새로운 운동 개념과 함께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운동 개념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갈릴레오가 비록 운동을 양의 문제로 환원하여 분석할 수 있는 객관성의 길을 새롭게 열어주었지만, 운동 개념 자체에서는 여전히 이전 철학자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갈릴레오는 (이상적인 조건 하에서) 물체가 어떻게 떨어지는가를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었지만 그 물체가 왜 떨어지는가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에서 ‘왜-질문?’(why-question?)은 ‘어떻게-질문?’(how-question?) 만큼이나 매우 중요한 화두다.

2) 생리학과 의학 분야

과학혁명의 시기인 16-17세기에 생리학과 의학 분야에서도, 천문학이나 물리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근대적인 의미의 과학을 향한 점진적인 변화들이 있었다. 가령 르네상스 시기에 예술 분야에서 강조되었던 자연주의의 영향으로 인체 해부학이 미술과의 결합을 통해 발전한 점, 경험주의 곧 다양한 실험과 관찰에 바탕한 지식을 활용해 자연의 힘을 조정할 능력을 추구한 베이컨주의의 영향을 받아 생리학과 의학 분야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 점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천문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달성한 과학혁명의 최종 성과, 곧 근대 과학인 뉴턴의 고전역학(천체역학)의 탄생과 비교해볼 때, 매우 미흡하고 한참 뒤처져 있으며 수준 또한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관측 및 사실적 기록을 함축하는 객관성과, 현상을 보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존재를 함축하는 일반성을 모두 갖춘, 근대 과학으로서의 생명과학 혹은 생물학의 등장은 19세기에 이르러서다. 16-17세기에는 생물학의 맹아들이 싹트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생물학 분야에서의 과학혁명이 천문학과 물리학 분야에서의 과학혁명을 쫓아가는, 달리 말해 천문학과 물리학 분야에서의 과학혁명이 19세기에 와서 뒤늦게 생물학 분야에 적용된 것 같은 종속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튼 16-17세기 과학혁명 기간에는 작은 변화들에 불과했지만 이것이 향후 19세기에 이르러 생물학이라는 근대 과학을 형성하는 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판이 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르네상스 시대의 자연주의는 자연을 순수하게 탐구해온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를 통해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레오나르도의 자연주의는 인체 해부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17세기의 경험주의라 할 수 있는 베이컨주의의 영향이다. 의학 분야에서 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이 바로 윌리엄 하비의 혈액 순환 이론(『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하여』(1628))라 할 수 있다. 하비의 이론은 인체의 구조만이 아니라 기능에 바탕하여 혈액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밝히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인체의 구조에 대한 묘사를 중심으로 했던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을 뛰어넘고 있다. 또한 인체 내 혈액의 순환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려 한다는 면에서, 인체의 동역학을 올바로 규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윌리엄 하비나 갈릴레오에서 드러난 작업, 즉 ‘새 과학’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옛 과학’의 주장(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첫째는 객관적인 관찰과 측정이다. 자연의 질서 특히 자연의 목적이나 내재적 경향 등에 호소하여 자연의 질서를 옹호하려는 모습을 배제하고 오직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정보에 의해서만 자연의 질서를 주장하려 한다. 둘째는 기계론적 사고다. 하비는 유기체 연구에까지 기계론적 사고를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데카르트 역시 정신이나 영혼이 없는 동물은 동물기계로 주장하고 있다. 셋째는 수 또는 양의 개념의 도입이다. 수나 양의 개념은 정확한 측정과 예측 그리고 이론의 입증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이는 근대 과학을 철학으로부터 독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3. 새로운 철학의 등장과 근대 과학혁명의 진전

1) 데카르트의 철학과 수학적 전통

17세기에 전통 철학의 공허함을 역설하고 올바른 사고 방법으로 구축된 새로운 지식 체계로서의 과학을 강조하는 두 권의 책이 등장한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신기관』(1620)과 데카르트의 『방법서설』(1637)이다. 베이컨이 새로운 지식 체계, 곧 과학을 유용성을 목표로 실험과 귀납적 사고를 통해 구축하려 했다면, 데카르트는 이와는 정반대로 명석함을 목표로 이성과 연역적 사고를 통해 구축하려 하였다. 오늘날 경험론과 합리론으로 일컬어지는 두 사상은 사실상 모두 과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베이컨의 경우 새로운 지식 체계로서의 과학에 관한 언급이 구체적인 분석이 뒤따르지 않는 예언적 수준에 불과했던 반면, 데카르트는 매우 구체적으로 과학에 필요한 중요한 개념과 원리들 그리고 수학적 도구들을 제시하였다.

데카르트는 그의 새로운 철학으로 인해 고대와 근대의 갈림길, 자연에 관한 지식이 철학에서 과학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세계를 정신과 물질로 구분하고 물질의 세계에 대해서는 철저한 기계론을 적용하여 자연의 규칙성을 해명하려 하였다. 그리고 해석기하학을 통해 물질의 세계를 그의 철학이 추구하는 바대로 명석 판명하게 이해하려 하였다. 그 결과 갈릴레오와 뉴턴의 근대 물리학에서 수학을 자연의 언어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근대 물리학의 수학적 전통을 확립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였지만, 정작 자신의 물리학은 지나치게 수학적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2) 베이컨의 사상과 실험적 전통

베이컨은 ‘새로운 과학’의 내용을 창조한 과학자는 아니지만 ‘새로운 과학’의 중요한 방법론과 그것이 가져올 세계에 대한 개혁과 진보의 상을 제시하였다. 베이컨의 주된 관심 주제는 세 가지다. 학문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강조, 학문의 장애 요인에 대한 분석, 학문을 개혁하고 진보시키는 방법이다. 첫 번째 주제는 주로 기존의 낡은 사상과 학문에 대한 비판에 모아져 있다. 특히 지식의 실용적 활용과는 무관하게 세계에 대한 사변만을 강조하는 스콜라 철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다. 두 번째 주제는 인간의 오성 자체에 깊이 내재하고 있는 정신의 혁신을 저해하는 생득적인 요소들에 관한 것인데, 잘못된 네 가지 우상을 명시하고 비판한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다. 세 번째 주제와 관련하여, 베이컨은 실험을 강조하고 올바른 과학적 사고 방법으로 귀납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관찰과 실험을 모든 과학적인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베이컨주의의 방법론은 경험론을 강화시켰고, 경험론에 기반하는 근대 물리학의 실험적 전통을 형성하는 데에도 중요하게 기여했다.

한편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실험 물리학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는데, 특히 진공과 관련해 토리첼리와 파스칼이 언급한 진공 상황에서 어떤 현상들이 나타나는지에 관한 많은 실험들(종소리가 들리지 않는 실험, 가벼운 새털조차 매우 빠르게 낙하하는 실험, 진공 속에서 생명체가 죽는 실험 등)을 수행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원자론의 제1주장인 원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고전 원자론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입자 철학(corpuscular philosophy) 혹은 입자설을 주장하며 이를 물질의 구조에 적용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 입자설은 물질의 한 부분의 운동이 물질의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물질의 구조를 질적으로 이해하려 한 세계관에 불과하였다. 이것이 측정 가능한 형태로 양화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에 등장한 돌턴에 의해서다. 돌턴의 원자론에서 원자는 더이상 경험 저편의 추상적 원자가 아니며, 실험을 통해 측정 가능한 유한한 사물로서의 원자다. 정리하면 보일의 입자 철학은 뉴턴의 고전역학의 세계관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베이컨의 실험주의 정신에서 출발하여 근대 과학의 실험적 전통을 확립하고 이것이 훗날 실험 과학으로 발전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4. 뉴턴의 종합과 근대 과학혁명의 완성

뉴턴(Issac Newton, 1642~1727)의 작업은 근세 초기 당대의 철학자들의 새로운 사고방식과 갈릴레오와 케플러와 같은 물리학자들의 다양한 지적 성과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뉴턴의 작업은 근대 과학혁명의 완성이라 불릴 만큼 기존의 학자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근대 과학의 새로운 혁신적 내용과 방법을 담고 있다.

달이 궤도를 도는 것과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같은 현상이라는 점, 지상과 천체의 운동이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통합된다는 점, 그리고 가속 운동은 그 무엇이든 힘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뉴턴만의 독창적인 사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정식화하고 힘과 운동의 법칙도 일반화함으로써 그동안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돼왔던, 지상의 운동과 천체의 운동에 관한 지식을 고전 물리학이라는 하나의 지식 체계로 통합하였다. 나아가 중력에 대해서도 그러한 힘의 존재를 단순히 추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력을 운동의 법칙과 연계하여 그동안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설명이 어려웠던 갈릴레오의 낙체의 법칙이라든가 케플러의 행성 운행의 법칙들을 수학적으로 도출하여 증명하는 등, 중력의 법칙을 체계화하여 정립하고 이를 세련되고 엄밀한 수학적 기법을 도입하여 정당화하였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근대 물리학의 출발점인 고전역학을 완성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고대 이래로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돼 상호 연계 없이 독립적으로 전개되어온 기하학과 역학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지향 아래 통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뉴턴적 원리는 이후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고전역학을 뛰어넘어 전자기학, 열역학, 광학 등 다른 물리학 분야의 새로운 현상들에 확장 적용되었을 뿐 아니라, 화학, 생물학 등 타 학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패러다임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성공의 바탕이 된 뉴턴적 원리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운동 현상으로부터 자연의 힘을 탐구하고 이 힘으로부터 현상의 발생을 증명할 수 있도록, 자연의 힘에 관한 법칙—뉴턴에게선 중력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하는 것이다. 이는 가령 사과의 낙하 운동이나 달의 궤도 운동과 같은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의 질문(‘why-question?’)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두 번째는 운동의 일반 공리로서 운동 법칙을 일반화하여 정립하는 것이다. 이는 운동이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방식과 과정을 보여주므로,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의 질문(‘How-question?’)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세 번째는 고전 물리학의 언어를 수학적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가령 고전역학의 기본적인 용어들인 질량, 운동량, 힘의 개념을 수량의 형태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을 수학의 언어로 탐구하는 전략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운동의 본성을 논할 때 그의 기반이 되는 시간, 공간, 운동 개념을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으로 구분하여 분석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에 대해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를 구분하여 탐구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절대적이란 외부와 아무 관계없이 그 자체로 참이며 이상적인 수학적 형상을 띠고 있음을 함축하는 반면, 상대적이란 외부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인지될 수 있는 일상에서의 상식적인 수준의 가변성을 함축한다.

과학 역사가들의 일반적 견해에 따르면, 뉴턴은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에서 시작된 근대 과학혁명을 1687년 『프린키피아』를 통해 완성시킨 과학자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흔히 ‘뉴턴의 종합’이 그 완성의 근거로 제시되는데, 그렇다면 뉴턴의 종합은 무엇이고 이것이 왜 근대 과학혁명의 완결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첫째, 이론과 실험의 대등한 조화다. 자연을 수학 언어로 분석하고자 고전역학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하였는데, 결국 이론 자체가 수에 의존함으로써 계량적 측정과 관찰이라는 실험을 언제나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근대 물리학의 구조를 만들었다. 여기서 이론과 실험은 대등하면서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다. 결국 근대 과학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이론적(수학적) 전통과 실험적 전통이 뉴턴에 의해 통합된 것이다. 둘째, 지상계의 사물의 운동과 천상계의 행성 운동을 더 이상 구분하지 않고 물질의 단일한 운동으로 통합한 것이다. 다시 말해 지상의 운동을 다루는 전통 물리학(동역학)과 천상의 운동을 다루는 천문학(우주론)을 천체역학으로 통합한 것이다. 셋째, 중력이 진공에서도 작용함을 근거로, 연속적인 무한의 진공 공간 속에 불연속적인 물질 원자들이 존재하는 자연의 조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다시 말해 연속적인 공간 개념(추상적)과 불연속적인 물질 원자 개념(구체적)을 통합한 것이다. 뉴턴 종합은 뉴턴 과학의 성공을 의미한다. 근대 과학혁명을 통한 뉴턴 과학의 이 같은 성공은 대표적인 성공의 모범 사례가 되면서, 이후 다른 여러 과학 분야들에서 같은 방식으로 해나가면 마찬가지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뉴턴 종합이 근대 과학혁명의 완성으로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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