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집을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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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집을 다시 생각하다
  • 조재모 경북대학교·건축사학
  • 승인 2020.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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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입식의 시대, 좌식의 집』 (조재모 지음, 은행나무, 164쪽, 2020.11)

학교 근처의 잘 가던 식당들이 공통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좌식으로 앉아 식사하던 식당들이 하나둘 입식 테이블을 설치한 것이 그것이다. 좌식 테이블을 설치, 운영하는 일반음식점 중 입식 테이블 변경 설치를 희망하는 업소가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의 목적은 장애인, 노인, 임신부, 외국인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식 테이블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내 집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신발을 벗어 내내 구두 속에서 퀴퀴해져 가고 있는 발을 드러내는 것도 불편하고, 치마나 슬림핏의 바지를 입고 있을 때도 테이블이 더 편하다. 테이블로 바꾸었다고 해서 식당 내부의 바닥 마감까지는 바꾸지 않았기에 종종 신발을 벗고 입식 테이블을 사용하는 어색한 상황이 생기지만, 따져보면 집에서의 식탁 사용은 다 그런 식이다. 소위 양반다리로 앉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은 일종의 적응적 퇴화일지도 모르겠다.

‘집’은 건물보다 따뜻한 단어이다. 집에는 가족과 개인의 삶이 있고 한 지역의 오랜 문화가 깃들어 있다. 근대 이전의 한옥으로부터 현대 한국을 뒤덮은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건축물의 물리적 형태와 도시의 밀도, 삶의 양태는 유사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하였지만, 집에 대한 거주의 감각은 의외로 잘 변하지 않는 면이 있다. 한옥과 아파트는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 무엇이 우리나라 집의 문화를 연속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을까.

“입식의 시대, 좌식의 집”(은행나무, 2020)은 이러한 질문에 단서를 찾고자 좌식과 입식이라는 지점에 주목하여 서술한 집에 대한 통시적 이야기이다. 돌이켜보면 이 관점으로 집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오래전 읽었던 의자에 관한 짧은 아티클에서 출발한 것이다. 의자가 건축공간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통찰하는 글 속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부분으로부터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일에 흥미를 느꼈었다. 그러던 중에 여럿이 함께 갔던 건축 답사에서 집안을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이 결국은 신발을 벗어놓은 곳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단순한 사실이 문득 우리가 살아온 집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쳤었다. 그때부터 국내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등 어디를 가던 건물의 바닥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고 이를 한국의 전통 주택이 갖고 있는 배치 및 건축 구성과 비교해 보면서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집을 좌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따뜻하고 청결한 바닥을 만들어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돌을 설치하고 열에 견딜 수 있는 매끈한 바닥 마감재를 사용하는 우리들의 집은 건물의 외피를 만들고 나서 난로를 설치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건축을 요구하는 것이다. 바깥의 흙먼지가 실내로 쉽게 들어오지 않도록 적절한 높이의 차이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고 앉아 있을 때의 눈높이와 창의 크기를 연동시키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신발을 벗고 앉아서 공간을 쓰는 전통은 건축에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대신 각 실의 성격을 규정하게 되는 가구의 사용을 줄임으로써 공간의 융통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를 보상으로 얻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살아온 집의 면면을 만들어 내었다.

바야흐로 한국은 입식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택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은 이미 입식으로 사용된다. 학교의 강의실이나 연구실, 회사원들의 사무공간, 각종 회의실과 대형 컨퍼런스 룸, 영화관, 공연장, 식당, 교통 관련 시설 등 어느 하나도 입식이 아닌 공간이 없다. 사찰이나 태권도장, 요가학원 등 그 속에서의 행위 자체가 규범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오직 주택만이 신발을 벗고 사용하는 좌식의 습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건축공간이다.

▲ 출처=은행나무 출판사 블로그
▲ 출처=은행나무 출판사 블로그

이미 근대 전환기에 거주를 제외한 다른 행위들은 대부분 입식으로 전환되었다. 심지어 궁궐에서도 석조전과 같은 서구식 생활을 위한 전각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에서는 여전히 신발을 벗고 사용하는 고래의 좌식 관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신발을 벗고 바닥에 자유롭게 앉거나 누울 수 있는 좌식의 생활 방식이 거주를 위한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가장 어울리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좌식의 관습은 다른 공간의 입식과 차별되어 유일한 사적 공간이라는 집의 속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로 집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재택근무가 확대되었고 작은 모임들도 가능하면 집에서 하려고 든다. 입식에 익숙해진 집 바깥의 일들이 좌식의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은 입식의 행위가 좌식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적응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들의 행위는 그에 맞는 공간에 최적화되어 있다. 입식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여전히 좌식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은 좌식 전통의 강력한 지속성을 대변한다. 침대와 식탁, 소파 등 입식의 가구를 사용하면서도, 소파 아래에서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는 것이나, 물을 사용하는 입식 공간인 부엌에서조차 발바닥이 따뜻한 온돌 난방을 요구하는 지금의 주택은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물리적으로 표준화되다시피 한 좌식의 주택은 지금의 생활과 서로 잘 일치하고 있는 것일지 곱씹어 볼 일이다. 혹은 집 속으로 파편화되어 가는 사회관계의 단면이 좌식의 집으로부터 추동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궁금하다.

이 글에서는 독자의 폭이 한정되는 학문 언어, 치밀한 고증과 분석의 과정을 상당 부분 내려놓는 대신 보편적인 언어 감각으로 일상의 공간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데 치중하였다. 근대 이전 집의 기나긴 역사가 지금의 건축을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지점을 포착해 보고자 하였다. 좌식과 입식이라는 대별적인 공간 사용법은 건축물의 용도, 공간을 사용하는 행위의 성격, 집의 형태와 가구 등 많은 지점에 연결된다. 방, 거실, 부엌을 가리지 않고 바닥에 온수 파이프를 매입해 온돌난방을 하면서도 이 모든 공간을 예전의 마루에 기원을 둔 우드 플로어링으로 마감하는, 침대와 식탁 등 입식 가구를 쓰면서도 종종 바닥에 앉거나 누워 생활하는 지금의 아파트 또한 오랜 관습의 결과물이다. 한옥과 아파트를 좌식과 입식의 관점으로 해부해 보면 지속되는 관습과 모순적인 조합을 함께 발견하게 된다. 지금도 우리의 건축 공간 경험은 좌식과 입식을 오가며 한국의 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조재모 경북대학교·건축사학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조선시대 궁궐의 의례운영과 건축형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궁궐, 조선을 말하다』, 공저로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 『덕천서원』,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궁중의례』, 『자율진화도시』 등이 있고, 논문으로 「근현대기 대구지역 한옥건축의 전개와 유형」, 「좌식공간관습의 건축사적 함의-신발의 문제를 중심으로」, 「조하 의례동선과 궁궐 정전의 건축형식」, 「조선왕실의 정침개념과 변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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