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의 역사, 월경의 문학 – 한국현대시사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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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의 역사, 월경의 문학 – 한국현대시사 비판
  • 박윤우 서경대학교·국문학
  • 승인 2020.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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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변혁의 역사, 월경의 문학』 (박윤우 지음, 국학자료원, 306쪽, 2020.11)

해방기를 전후한 현대시사 연구의 의미와 가치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것은 민족의 역사라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한국 근대문학의 ‘명색’이 다시금 회복과 재생, 혹은 새로운 창조의 이름으로 ‘현대성’의 대전환을 이루게 되는 지점이었던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기억처럼 문학 기억 역시 이 시기를 그저 ‘전환기’ 혹은 ‘과도기’라는 의미로 내려놓으려는 망각의 구습을 넘어서야 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눈은 현실주의적 입장론의 공간적 사유만이 아니라, 진행하는 역사 속의 시간적 사유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서만이 진정한 내면적 의미망을 구성할 수 있다.

저자인 박윤우 교수는 1998년 <1950년대 한국 모더니즘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서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해오면서 현대시사와 비평, 문학교육론과 문화론에 걸쳐 많은 연구 성과를 축적해온바, 그동안 연구서 <한국현대시와 비판정신>(국학자료원, 1998), <현대시와 문화교육>(푸른사상, 2005) 및 평론집 <서정시와 대화적 상상력>(서정시학, 2000), <환경의 재구성>(푸른사상, 2020) 등의 저서를 간행한 바 있다. 이들 연구 성과는 대체로 한국 근현대문학사 중 특히 1930년대 시인과, 해방기부터 전후문학기의 시문학사의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1930년대와 1950년대의 시사가 지닌 사회역사적 맥락에 대한 관련을 중시함으로써, 기존의 문학사 연구에 잔존해 있던 모더니즘 시와 리얼리즘 시의 상호대립적 인식과 해방기의 다수 시인들이 주류 문학사로부터 배제되었던 편협한 시각들을 불식시키는 한편, 우리 시사의 동아시아적 경험 요소, 즉 소위 ‘월경(越境)’의 역사성에 대한 고려를 강조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사 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였다.

이번에 국학자료원에서 간행한 <변혁의 역사, 월경의 문학>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1부는 그 역사적 변혁의 측면에서 민족 해방과 한국전쟁, 월남과 국토 분단으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해방기 시와 시론, 1950년대 모더니즘 시론, 월남 문인의 시 세계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특히 이 시기 김기림, 이용악, 오장환의 시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해방기 시사가 지니는 의미와 그에 대한 교육적 가능성을 모색하였으며, 이와 함께 해방기에서 1950년대의 시론을 대표하는 비평적 산물로서 김동석, 김규동의 시론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해방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변혁기가 문학사의 근본적 지형변화를 야기한 핵심으로서 월남 문인들에 대한 관심을 부각시켜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양명문의 시 세계를 시문학뿐만 아니라 당시 월남한 여타 예술가, 특히 김동진 등 음악가와의 교유관계 속에서 살펴봄으로써 문화사적 평가를 시도하였다.

2부는 우리 근현대문학사를 규정한 사회역사적 상황이 조건화한 시인의 존재성을 살펴보고자 구성한 부분이다. 1930년대 이후 일제의 통치정책과 군국주의 전쟁 도발을 기점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유이민과 고향 상실의 역사가 만들어낸 월경(越境)과 시적 공간의 타자성의 문제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상해, 간도, 만주, 동경 등지, 그리고 월북과 저 대륙의 서쪽(?) 끝 붉은 광장에 이르기까지 월경의 당사자로서 시인들의 생애와 그 동선을 따라가면서 시인들의 동아시아 체험이라는 측면을 인문지리학적이고 사회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의미화하고 있다. 1920년대에 이광수와 함께 <독립신문>을 근거지로 활동한 주요한을 위시하여, 1930년대 후반에서 해방 전까지의 시사에서 탈향과 유랑, 월경의 행로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핵심적인 시인으로서 백석, 이용악, 이육사, 윤동주 등이 소환되어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월경’의 현실적이고 민족사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건설기, 즉 1949년 이후 중국의 당대 문학사와 관련하여 간도와 만주를 위시하여 민족적 삶의 새로운 공간으로서 자리매김된 조선족 문학의 전개 과정을 염두에 두고 조선족 시문학의 특질과 변화의 양상을 새롭게 조명한 점은 우리 현대문학사를 바라보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을 바탕으로 3부는 다시금 살아 숨쉬는 ‘지금 여기’의 문제로서 시 교육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시사를 바라본 내용들이 묶여 있다. 한용운 시를 대상으로 하여 교과서와 교실에서 시 텍스트의 존재 양상과 수용적 의미를 탐색하는 한편, 이상, 서정주, 노천명, 윤동주의 ‘자화상’을 주제로 한 시편들을 대상으로 근대적 의미의 서정으로서 ‘자아성찰’의 문제를 검토하였다. 한편 현대 시 교육에서 문학사적 관점과 사회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는 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한 저자는 특히 당대 문학의 비평적 접근도 아울러 보여주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뉴미디어가 전면화된 사회변동에 대한 인식을 통해 ‘대중시’에 대한 관점의 변화와 시사적 흐름에 대한 조망을 보여주는 한편, 하종오의 다문화 시를 통해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는 현실문화 속의 시 생산과 수용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같은 문제들을 전경화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변혁의 역사, 월경의 문학>에 나타난 이러한 문제의식들은 단지 연구자의 눈에 비친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인식의 주체인 학습 독자와 대중들에게 요구되는 문화 실천의 한 장으로서 전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계몽적 기획’에 준하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최소한 현대 시문학에 대한 감상과 이해, 수용과 창조적 재생산을 목표로 하는 교육의 장이라면, 중고등학교의 문학 교실은 물론 대학에서조차 텍스트주의에 함몰되어 인문학적인 현실 감각과 가치의식에 대한 성찰의 태도와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박윤우 서경대학교·국문학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중인문학회장, 한국시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경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현대시와 비판정신』, 『현대시와 문화교육』, 『문학의 이해』(공저), 『문학과 논술, 어떻게 할 것인가』(공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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