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무니타스 이코노미…시장경제 안에 ‘만남’과 ‘관계’를 불러와 따뜻한 시장을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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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무니타스 이코노미…시장경제 안에 ‘만남’과 ‘관계’를 불러와 따뜻한 시장을 만드는 것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0.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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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콤무니타스 이코노미: 모두를 위한 경제는 어떻게 가능한가 | 루이지노 브루니 지음 | 강영선·문병기·서보광 외 6명 옮김 | 북돋움coop | 312쪽

경쟁 중심, 이익 극대화로 치닫는 현대 시장경제, 이 안에서 모두 행복하게 사는 건 불가능할까? 콤무니타스는 공동체를 뜻한다. 공동의 땅, 공통의 기반 위에서 친밀함을 나눌 수 있는 생활 공동체가 콤무니타스다. 이 책은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더불어 잘 사는 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저자는 시장 옹호론자인 애덤 스미스와 시장 비판론자인 칼 폴라니의 견해 둘 다를 넘어서 시장경제를 새롭게 보는 눈을 제안한다.

《국부론》을 통해 현대 경제학의 기초를 다진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긍정적인 면에 주목했다. 그는 영주와 농노의 관계 속에서 계급적으로 항상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봉건사회를 떠나 시장에서는 영주도 하나의 개인, 농노도 하나의 개인으로 대등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계약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자유시장론이 주류 경제학이 되고 시장경제를 자본이 지배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과 그늘이 나타났다. 사회가 점차 낮은 비용과 높은 생산 능력, 경제 발전, 이익의 극대화를 향해 치닫게 되면서 부는 쌓여가지만 나누어지지 않았다. 심각한 빈곤과 기아, 높은 실업률, 생태계 파괴…… 칼 폴라니 같은 경제학자는 이와 같은 문제는 지나친 시장 만능주의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보고 시장과 사회를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놓친 것을 지적한다. 스미스는 권력 관계에 희생당하지 않는 개인에만 지나치게 주목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화폐 가치로는 셈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를 놓치고 마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중재되지 않은 관계는 비문명적이고 봉건적이고 비대칭적이며 수직적인 관계라는 이유로 시장의 중재를 중시했다. 스미스의 논리대로라면 시장에는 계약 혹은 협약만 있으면 된다. 시장에서 우정이니 형제애니 사랑이니를 논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저자는 이를 ‘아담의 원죄’라고 부른다. 즉 애덤 스미스의 ‘원죄’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미개하거나 비대칭적이라고 본 것, 그래서 어떤 관계든 중재된 관계라면 사회를 더 문명화시킨다고 본 것, 그래서 인간관계 전체를 외면한 것이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의 원죄를 딛고, 우리가 다시 보아야 할 시장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있는 시장,’ 콤무니타스 이코노미다. 봉건적 틀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 인류는 영주와 농노라는 수직적 관계 구조를 깨트릴 필요가 있었고, 계약의 시장을 통해 그것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지나쳐서 사람 냄새라고는 전혀 없는 건조한 계약만 있는 시장이 되었다. 그런 시장경제 시스템 안에서 삶의 질과 행복의 질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모두들 이윤 창출과 효율성에만 목을 매게 되었다.

그러나 인류는 본디 계산에 의해서만 행동하지 않는다. 최근의 실험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부와 경제적 가치라는 하나의 척도로만 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의 역설에 관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행복의 역설이란, 경제적인 풍요와 개인의 주관적인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미미하다는 이론이다. 한 나라 안에서 소득이 일정한 경계치를 넘고 나면 소득이 증가하는 만큼 행복도 함께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행복의 역설의 핵심이다.

 곧 가장 부자가 가장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조건이 있다. ‘소득이 일정한 경계치를 넘고’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의 역설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가장 기본적인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의 행복이라는 뜻이다. 그럼 우리의 경제 수준이 그런 것을 논할 수 있을 정도에 와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시장을 보는 새로운 눈, 그리고 그것을 통한 행동의 변화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애덤 스미스의 설계대로 대체로 시장을,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경쟁의 장으로만 보아왔다. 시장의 교환 관계는 계약의 두 당사자에게 인간적 상처를 주지 않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시장은 형제적 우애를 나눌 수 있고 모두의 공존이 가능한 곳일 수 있다. 경쟁과 성과 제일주의의 현대 시장경제가 몰락하지 않고 이렇게나마 지탱된 진짜 이유는, 계약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 아니라 가격을 매길 수 없어 계산에 넣지 못했던 관계재, 곧 무상성(無償性)이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장경제를 손보고 개조하면 그 처음의 장점을 살리고 미래의 장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사라지고 계약만 남은 싸늘한 시장을 따뜻하게 해줄 온기를 불러오면 된다는 것이다. 그 온기란 다름 아닌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다. 서로 부딪칠 일 없이 설계된 아파트 안에서 모니터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소통하는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 보고 웃으며 나의 선의와 상대의 배려가 서로 부딪칠 수 있는 ‘진짜 만남,’ ‘진정한 관계’를 회복할 때에야 우리는 인류의 공존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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