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차용이 만든 기적, 대마초를 암살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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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차용이 만든 기적, 대마초를 암살자로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0.12.0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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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33)_ 언어의 차용, 역형성 그리고 의미의 변화…assassin, 꼬마, 까치설

1989년 여름 인도를 경유해 히말라야 산중의 왕정국가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 갔다. 카트만두의 별명은 <사원의 도시>다. <Yak & Yeti>라는 작지만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곧바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었다. 야크(yak)는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털이 긴 야생소 모우(牦牛)를 말하며, 예티(yeti)는 히말라야에 산다는 전설의 雪人을 가리킨다.
네팔도 다민족 국가라 어느 종족 출신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 행상을 하는 젊은이가 따라 붙어서는 연실 “하시시, 하시시...”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알고 보니 대마초를 사라는 소리였다. 브롱크스(Bronx) 같은 미국 뉴욕 북부의 어둑한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Care for coke, maan(코카인 좀 해볼래요, 아찌)?”와 마찬가지 말이요, 상황이었다. 사실 불법 거래되는 이런 마약류 관련 표현들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어 있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활극 어쌔씬(Assassins, 1995)은 제목대로 암살자들에 관한 영화다. 암살자를 뜻하는 assassin은 아랍어 hashishin(-in은 복수형 접사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어려운 것은 버리거나 쉬운 것으로 대체하는 경향을 보인다. 차용되는 과정에서 어두의 /h/는 탈락되었다. 영어단어 hour에서 /h/를 발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시시(hashish)는 대마초 또는 대마초 꽃봉오리로 만든 마약을 가리킨다. 대마초와 암살자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처럼 생뚱맞아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랍과 유럽 기독교 간의 성지 예루살렘 쟁탈전이랄 수 있는 십자군 전쟁 때 근동 지방의 국가 레바논 산악지대에 시아파 이슬람 무장세력 니자리 이스마일리 교단의 지도자 핫산 사바(별명 산중노인)는 전사를 모으는 데 대마초를 이용했다. 신심이 깊은 젊은 전사들에게 대마초를 복용케 해서 양심과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상태에서 살인과 폭행 등 잔혹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게 한 것이다.

‘꼬마’라는 말은 어린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로 “어리다; 작다; 귀엽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 사물 이름 앞에 붙여서도 작고 귀엽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키가 작은 사람을 가리켜 놀림조로 쓰이기도 하는데 ‘고마’가 경음화된 말이다. 고려시대에 ‘고마’는 ‘妾’을 가리켰다.  
‘첩(妾)’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식 아내 외에 데리고 사는 여자”로 자원(字源)을 살펴보면 ‘辛’과 ‘女’가 결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辛’은 ‘매울 신’으로 읽히지만 고대에는 ‘종(노예)’의 이마에 먹실을 넣는 바늘 형상을 본뜬 글자로, ‘몸종’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고대사회에서 ‘妾’은 “죄를 짓거나 전쟁포로로 잡혀와 종이 된 여자”를 가리켰다. 첩과 같은 뜻의 말에는 ‘소실(小室)’, ‘측실(側室)’, ‘작은집’, ‘작은마누라’, ‘시앗’ 등이 있다.
첩은 아내가 남편에게 자신을 낮춰 부를 때도 쓰였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 황후가 수로왕을 만나 자신의 신분을 밝힐 때 ‘臣妾’이라는 표현을 썼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 ‘소첩(小妾)’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인다. 소첩은 사대부가에 정실로 시집간 여자 또는 양민 신분으로 사대부가의 첩이 된 여자들이 남편에게 자신을 칭할 때 쓰며, 신첩은 비빈들이 지아비인 임금 앞에서만 썼다. 말의 사용은 이렇게 복잡하다.
까치설날(除夕, 제석)을 조선시대에는 아ᄎᆞᆫ셜이라고 했다. 까치설날은 설날 전날 섣달 그믐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ᄎᆞᆫ셜에서 아ᄎᆞᆫ은 ‘작다’, ‘어리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로 아ᄎᆞᆫ아들(小子)이라고 하던 말이 나중에는 손자(孫)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밖에도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아ᄎᆞ나ᄃᆞᆯ 딜(姪), 아ᄎᆞ나ᄃᆞᆯ 섕(甥)이라 하여 조카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말의 의미는 이렇게 변화무쌍하다.
섣달 그믐날을 가리키는 아ᄎᆞᆫ셜은 어디 가고 요즘에는 까치설만 있는 것일까? 설마 진짜 까치(鵲, 까치 작)에게도 설 풍습이 있는 것은 아닐 테고 아ᄎᆞᆫ셜이 까치설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형성이라는 어형성(語形成, word formation) 과정과 비슷하다.
역형성(逆形成, back-formation)은 기존 단어를 합성어나 파생어로 오인하여 원래 형태를 복원하는 형식으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actor가 act라는 단어에 인칭형 접사 or를 붙여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editor을 edit에 or를 붙였다고 오인하고 새롭게 edit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를 언어학에서는 역형성이라고 한다.

다루가치(총독), 타부가치(순록유목민)등에서 보듯이 고대 돌궐어에서 ‘가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인칭접미사가 어느 시점에 ‘아치’로 바뀌었다. 벼슬아치, 장사치, 양아치, 구실아치(조선 시대에 각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가 그렇다. ‘가치’ > ‘아치’로의 음운변화가 일반적인데, 아ᄎᆞᆫ셜에서의 ‘아치’의 원형이 ‘가치’일 것이라고 오인한 결과가 가치설( > 까치설)이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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