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한다는 것, 그리고 공감에 나를 연다는 것 – 정혜신 著 《당신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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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한다는 것, 그리고 공감에 나를 연다는 것 – 정혜신 著 《당신이 옳다》
  •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통번역학
  • 승인 2020.12.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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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이 책에는 흥미로운 개념이 많다. ‘적정심리학’, ‘심리적 CPR’, ‘다정한 전사’ 등등. 내가 이해한 대로 간단히 설명해보면 이렇다. ‘적정심리학’은 개도국에 꼭 필요한 기술을 현지 상황에 맞춰 제공하는 ‘적정기술’에서 나온 말이다. 정신의학 진료실에 찾아가 전문가를 만나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서로를 도우며 심리적 회복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고안되었다. ‘심리적 CPR’은 심장 박동이 멈춰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을 살려내듯 막다른 심리적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정확히 필요한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다정한 전사’는 상대를 다정하게 대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를 사로잡고 있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판단과 단호히 맞서 싸우라는 의미를 지닌다.

위 개념들을 종합하면 ‘정신의학에 기대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심리적 취약지점을 보듬고 지키자’ 정도가 될 것이다.

저자는 정신의학 전문의지만 정신의학에 심각한 회의를 드러낸다. ‘사회구조적인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 개인의 심리적 문제들을 생물학적 원인으로 돌려놓고’ ‘인간이라는 한 우주의 광활한 내면을 세로토닌 등 몇 가지 신경전달 물질을 앞세워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것(85쪽)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상대를 인간이기보다는 환자로 보고 생물학적으로 분석하려 든다.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한다. 의사도, 환자도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 저자는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재해 현장에서 심리적 응급구호 활동을 장기간 펼치면서 이를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선의로 달려온 정신과 의사들이 진료실 방식의 접근이 먹히지 않자 금세 포기하고 현장을 떠났다는 것이다. 처방보다는 공감이 필요했는데 막상 전문가들은 거기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조카가 정신적 불안정 증세를 보이면서 나도 정신과 몇 곳을 함께 가본 적이 있다. 의사의 대응과 처방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사람 정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구나.’ 몸이 아픈 거라면 검사를 하기도, 증세를 관찰해 조치하기도 좋다. 반면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경우 극단적 행동 특성을 나타내지 않는 한 당사자가 말로 하는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조카는 자기 심리를 소상히 말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상태였다. 처방된 약은 수면제 역할을 하는 데 불과했고 병원 치료의 효과는 미미했다. 그 경험 때문인지 가까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붙잡아주어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 출처=해냄출판사 네이버 포스트
▲ 출처=해냄출판사 네이버 포스트

결국, 이 책에서 핵심은 ‘공감’이다. 쉽게 이야기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 활동 말이다. 이번 학기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 중 여럿이 공감에 의문을 표했다. 진정한 공감이란 결국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는 학생도 있었고 공감이라는 거짓말을 이제 멈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친구의 넋두리를 참고 들어주기 힘들다고 하소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것은 누구든 공감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어떤 삶을 사는 그 누구든 자신에게 관심과 공감을 보여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런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어도 정신줄을 붙잡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홀로 고개를 쳐든 채 잘 살아내기는 어려운 존재이다.

그런데 공감은 일방적이지 않다. 나만 받을 수는 없다. 공감은 말랑하고 따뜻한 공을 상대에게 넘겼다가 다시 돌려받고 또다시 넘겨주는 과정과도 같다. 공감을 받으려면 우선 공감을 줘야 한다. 상대의 삶에 관심을 보이고 질문을 던지고 허심탄회하게 들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듣는 과정은 상대를 이해하는 동시에 나를 성찰하는 일이 된다.

그다음에는 내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안의 초라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열어젖히는 일이므로 이 역시 어렵다. 그래도 상대가 준 공의 크기만큼은 나도 솔직함이라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아니면 공감 주고받기가 덜컹거릴 수밖에 없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주고받는 공감은 안녕한가. 안녕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면 어떤 개선을 시도할 수 있는가.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통번역학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 교수로,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며 저서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매우 사적인 글쓰기 수업』,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등을 출간했으며, 『첫사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안톤 체호프 단편선』과 같은 러시아 고전을 비롯하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홍위병』, 『콘택트』, 『레베카』 등 8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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