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메트리…유물론자, 기계론자로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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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메트리…유물론자, 기계론자로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행복’이었다
  • 여인석 연세대 의과대학·의사학
  • 승인 2020.11.3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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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라 메트리 철학 선집: 인간기계론 영혼론 인간식물론』 (라 메트리 지음, 여인석 옮김, 섬앤섬, 304쪽, 2020.10)

흔히 18세기 프랑스 계몽철학을 이야기할 때 볼테르를 대표자로 꼽는다. 물론 볼테르의 계몽적 비판정신은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계몽사상의 토대는 당대까지 이루어진 과학의 성과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과학적 지식 위에서 철학을 전개했던 18세기 유물론자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간 국내의 과학사 연구자들에 의해 라메트리에 대한 소수의 연구논문이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주된 저서의 번역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그 성과가 대중적으로 공유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번에 번역한 라메트리의 저작이 서구의 18세기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현재적 의의를 가지는 뇌에 대한 그의 논의가 오늘날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풍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번역자로서 갖고 있다. 
라메트리(Julien Offray de La Mettrie, 1709∼1751)는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709년 12월 19일 프랑스의 생 말로에서 부유한 직물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파리의과대학과 렝스 의과대학에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가 저술한 최초의 철학저서 『영혼의 자연사』는 영혼을 기계적 작용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종교계와 보수적 권력층의 반발을 자아내어 1746년 분서처분을 당했다. 이후 네덜란드로 피신해 집필한 『인간기계론』(1747) 역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로 인해 라메트리는 다시 네덜란드를 떠나 프레데릭 2세가 있는 베를린에 갔다. 그는 프레데릭 2세의 후원을 받아 베를린 왕립과학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고, 왕의 주치의가 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아갔다. 그는『식물로서의 인간』(1747), 『행복론』(1748), 『기계 이상인 동물』(1750),『에피쿠로스의 체계』(1750) 등의 철학 저서와 의학서들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던 중 1751년 11월 11일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모든 철학이 그러하겠지만 라메트리의 철학 역시 당대의 지적인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인간기계론』은 당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데카르트 철학과 비교할 때 그 의미가 더욱 잘 드러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데카르트는 동물기계론을 주장했고, 인간에 대해서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데카르트의 독특한 점은 그가 이원론자이자 기계론자라는 점에 있다. 흔히 기계론자는 유물론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러한 연결이 자연스럽지만 데카르트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인간의 몸은 기계와 같이 작동되지만 불멸하는 인간의 이성적 영혼은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각종 운동이나 생리적 현상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혼이 인체의 생리적 과정에 관여하며 이를 이끄는 원리로서 기능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레노스의 전통적인 견해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성적 혼과 인체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나 각종 생리적 현상이 무관함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우리 몸의 각종 기능은 몸 자체나 그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에 좌우되는 것이므로 그 원인을 결코 혼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에 대해 라메트리는 데카르트가 별개의 영역으로 설정한 영혼의 작용 역시 육체 작용의 하나로 파악한다. 라메트리가 기계로서의 인체를 제시했을 때 그는 무엇보다도 인체의 각 부분이 자율적으로 가지는 동력에 주목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전체에서 분리된 장기나 근육이 분리된 이후에도 여전히 그 기능을 하고 있는 사례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자면 몸에서 분리된 근육이 자극에 의해 수축한다거나 몸에서 떼어낸 개구리의 심장이 상당 시간 박동을 지속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는 이러한 힘이 특정 부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조직 속에 있다고 보았는데 ”몸의 각 부분은 그것이 필요로 하는 정도에 따라 다소간의 동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와는 달리 라메트리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데카르트가 동물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으로 제시한 ‘사유’는 “감각능력에 불과하며, 이성적 혼은 개념들을 숙고하고 추론하는 데 적용된 감각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그는 이성의 능력도 결국 감각 작용의 적용이며 양자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뇌졸중, 혼수상태, 카타렙시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감각이 소멸되면 사유 역시 소멸된다는 사실에 의해서 입증”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감각주의와 경험주의는 로크의 유산이었다. 또 그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주장의 근거를 비교해부학, 특히 뇌의 비교해부학에서 구했다. 동물과 인간의 뇌 구조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이러한 뇌 구조의 유사성으로 인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근본적 차이라는 경계는 흐려진다. 그는 언어와 고도의 수학적 계산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아니며 총명한 원숭이를 적절히 교육시키기만 한다면 원숭이도 충분히 이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방법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기까지 했다.
인간을 기계로 보는 관점은 흔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라메트리가 제시하는 인간기계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계론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의 기계론은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모든 작용(고도의 사유작용을 포함해)의 원인과 동력을 생명체 자체를 구성하는 ‘조직된 물질’의 속성으로 본다는 점에서 흔히 생각하는 기계론과는 구별되며, 어떤 의미에서는 18세기 후반 몽펠리에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근대적 생기론과 공유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데카르트가 불멸하는 이성적 정신의 작용으로 여긴 ‘사유’조차도 감각작용의 일환으로 보고 이를 생리적 과정으로 설명하고자 한 점에서는 현대 뇌과학자들의 선구자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생리적 과정으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보지 않은 점에서 그를 환원론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사유가 물질의 한 속성으로서 물질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이들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이 미지의 영역은 인간의 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밝혀질 영역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인식의 한계에 속하는 영역에 가깝다고 보았다. 그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원과 운명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행복이 달려있지만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무지에 순종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행복하고 정당하며 평온할 것이며 그 결과 행복할 것이다.” 유물론자로서, 그리고 기계론자로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인간의 ‘행복’이었다는 사실에서 그는 고대 유물론자의 후예였다.


여인석 연세대 의과대학·의사학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기생충학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7대학에서 서양고대의학의 집대성자인 갈레노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인식론·과학사)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교수 및 의학사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 권으로 읽는 동의보감』(공저), 『의학사상사』, 『한국의학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라캉과 정신분석혁명』,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히포크라테스 선집』(공역), 『의학: 놀라운 치유의 역사』, 『알렌의 의료보고서』, 『생명에 대한 인식』(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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