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Papyrus)가 Byblos를 거쳐 Bible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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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Papyrus)가 Byblos를 거쳐 Bible이 되었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11.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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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32)_Papyrus → Byblos → Bible

“It is well to give when asked, but it is better to give unasked, through understanding(부탁을 받고 베푸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부탁받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베푸는 건 훨씬 좋은 일이다)”--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베풂에 관하여 중에서 

세계 3대 고백록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 장 자끄 루소, 레오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꼽는다. 나는 여기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과 마하트마 간디의 <고백록>을 추가한다. 그리고 레바논 태생,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그 진정성에 있어 그리고 종교적 색채를 떠나서 불경, 성경, 코란 등에 버금가는 책이라고 믿는다.

레바논은 외세의 영향과 부당한 간섭을 많이 받았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다. 이곳에 갔다가 수도인 베이루트에서의 산책길에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 이름이 궁금해 지나가던 주민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답을 듣고는 놀랐다. 올리브 나무를 닮았기에 olive tree라고 할 줄 알았는데, ‘까람’이라니... 뭐지? 알고 보니 감람과의 감람(橄欖)나무였다. 올리브 나무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감람나무(왼쪽)와 올리브나무

한역 성경에 올리브 나무를 감람나무라고 번역해 놓은 탓에 지식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감람(橄欖)은 내용은 올리브지만, 실제로는 카나리움 알붐(Canarium album)의 음차자이다. 따라서 대홍수가 지난 후 노아의 방주 밖으로 나가 비둘기가 물고 돌아온 것은 감람의 새 잎새(성경 창세기 8: 11)였다고 할 때 그것은 감람과의 감람나무가 아니라 올리브 나무임을 알아야 한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단연 기독교 성경이다. 영어로 성경을 바이블(Bible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오늘날 레바논의 도시 비블로스(Byblos)에서 파생되었다. 이 도시는 고대 페니키아의 영토로서 레반트(the Levant, 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 등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였다. 당연히 다른 지중해 국가들, 예를 들어 에게해의 섬들과 헬라스(Hellas, 그리스)는 물론 마그레브(Maghreb) 지역에 속하는 이집트(특히 알렉산드리아), 리비아, 튀니지(특히 카르타고) 등의 항구도시들과 활발한 교역활동을 벌였다. 

▲칼릴 지브란
▲칼릴 지브란

레바논 내륙 산간지역, 칼릴 지브란의 고향 마을 브샤리(Bsharri)에서 가까운 왓디 카디샤 계곡(Ouadi Qadisha: “신성한 골짜기”라는 뜻)에서 벌목되어 비블로스 항구에 당도한 “신의 杉木”이라 불리는 레바논 삼나무는 배편으로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지로 운송되었다. 이 삼나무는 솔로몬왕의 궁궐을 짓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나일강에서 자라는 야생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papyrus)는 당시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한 수완 좋은 페니키아 상인들에 의해 비블로스를 거쳐 그리스로 보급되었다. 

청동기 시대 비블로스는 구발(Gubal) 혹은 구불라(Gubla)라 불리는 가나안 지방의 도시였다. 철기 시대의 페니키아 명칭은 게발(Gebal)이며 히브리 성경에는 게왈(Geval)로 나타난다. 훨씬 후대인 십자군 전쟁 때는 지벨렛(Gibelet)으로 지칭되었다. 비블로스라는 그리스 이름은 고대부터의 무역항이었던 이 지역을 거쳐 파피루스가 에게해 지역으로 수출된 데 연유한다. 파피루스의 그리스식 명칭이 비블로스 혹은 비블리노스(byblinos)였던 것이다. 결국 Bible은 the papyrus book(파피루스로 만든 책)이다. 

그럼 우리말 ‘종이’는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 ‘종이’의 한자어 ‘紙’의 기원은 무엇일까? 영어 ‘paper’는 또 어디서 비롯된 말일까? 인간 언어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恣意性이라고 하니 우연히 그렇게 하나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어형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래도 어원을 따져보면 흥미로운 인간 역사가 드러난다. 

영어 paper는 노르만-프랑스어 papir에서 비롯되었고, 불어 papier는 ‘paper-reed’라는 뜻의 라틴어 papyrus에서 파생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국어 어휘는 종이<죵희<죵<죠의 변천과정을 거친 것이다. 『훈민정음』(해례본, 1446)의 기록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따라서 어원이 명확치 않다. 

한자 ‘紙’는 金文과 甲骨文에는 보이지 않는다. 後漢 때 허신(許愼: 58~147년경)이 편찬한 중국 최초의 문자학 사전 『說文解字』는 ‘紙’에 대해 ‘서일점야종사씨성(絮一苫也從糸氏聲)’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명주실로 만든 비단이 뜻이요, 소리는 氏를 따른다는 것이다.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 고대 중국인들이 비단에 글을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木簡과 竹簡이 있었으나 부피가 문제였다.

紙의 전서체(篆書體)
▲紙의 전서체(篆書體)

종이는 나침반, 화약, 인쇄술과 함께 중국의 4대 발명품의 하나로 간주된다. 중국 고사에 따르면 종이는 後漢 시대의 환관이었던 채륜(蔡倫,  50년~121년)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나무껍질, 삼베 조각, 헌 헝겊, 낡은 그물 따위를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고, 105년에 이것을 和帝에게 바쳤는데 당시에는 이 종이를 ‘채후지(蔡侯紙)’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 연구 결과로는 적어도 그보다 250년 이상 일찍 종이가 발명되어 기원전 140년경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는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제지술은 751년 경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에 제지공장이 세워진 것을 기점으로 당시 압바시아 이슬람의 新수도 바그다드를 거쳐 카이로, 모로코, 스페인을 차례로 거쳐 서유럽에 퍼졌으며, 14세기에는 서유럽 각지에 종이 공장이 생겨났다. 중세의 중동과 아프리카 북부 및 유럽의 역사는 사라센, 혹은 무어인으로 불리는 아랍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사마르칸트紙로 첫걸음을 뗀 종이는 793년 바그다드 입성을 시작으로 다마스커스(795년), 이집트(900년 경), 모로코(1,100년 경), 스페인(1,150년), 프랑스(1,189년), 독일(1,312년)로 전파된다. 

파피루스
▲파피루스
양피지에 쓰여진 코란<br>
▲양피지에 쓰여진 코란

종이가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중세 서유럽에서 기록매체로 사용되었던 양피지는 이후 점차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종이는 15세기 이후 발전한 인쇄술과 함께 지식의 대중화 과정을 주도하여 종교개혁--로마 가톨릭 교회의 관점에서는 종교분열(宗敎分裂)--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종이와 인쇄술이 아니었다면 1517년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에 달하는 반박문(개혁선언문)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종교개혁의 성패도 예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지술의 서양 전파를 가져온 탈라스 전투
▲제지술의 서양 전파를 가져온 탈라스 전투

이런 일들과 관련하여 751년이 인류 문명 교류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중앙아시아 대평원 탈라스에서 벌어진 세기의 결전, 이른바 탈라스 전투 때문이다. 이 해 7월 고구려 유민의 후손으로 안서절도사라는 직함을 가진 당나라 장수 고선지 장군이 지휘하는 당나라군과 동맹 부족 카를룩이 압바스 왕조의 이슬람군과 티베트의 연합세력을 상대로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에 속하는 탈라스 평원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두고 싸움을 벌인 것이다. 이 싸움에서 아랍군이 승리했고 당나라 군대가 패배했다. 그 원인과 전개과정은 차치하고 탈라스 전투의 결과로 아랍은 2만에 달하는 당나라 연합군 병사를 포로로 잡는다. 이 가운데 종이 만들던 일을 하다가 전장으로 끌려온 사람이 있었고, 이 사람으로 인해 제지 기술이 아랍을 통해 서방으로 전파되기에 이른다. 당시 이슬람의 성전 코란 한 권을 적으려면 새끼 양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300장이 필요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 부피가 상당할거라 짐작이 되며 보관에도 어려움이 컸을 거라 상상이 된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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