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는 호모 이밸루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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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는 호모 이밸루쿠스
  • 김민주 동양대·행정학
  • 승인 2020.11.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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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호모 이밸루쿠스: 평가지배사회를 살아가는 시험 인간』 (김민주 지음, 지식의날개, 288쪽, 2020.10)

‘평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음식 맛이나 외모 등 일상의 평가에서부터 성과급 지급 여부와 부서 및 조직 통폐합의 운명이 걸린 평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곳곳에 평가가 도사리고 있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입시라는 평가는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달라지게 할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더욱 그렇다. 이제 평가는 사회를 디자인(design)하는 것을 넘어 지배할 정도이다. 이 사회를 ‘평가지배사회’로 진단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평가지배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호모 이밸루쿠스(Homo Evalucus)’로 명명하는 것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출간한 「호모 이밸루쿠스: 평가지배사회를 살아가는 시험 인간」은 기존에 간단한 사회진단을 목적으로 집필했던 또 다른 책인 「평가지배사회」의 후속 결과물이다. 이번 책에서는 평가지배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담았다. 한시도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인간 모두가 호모 이밸루쿠스라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3의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누군가는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는 다소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만 가득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암울한 현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지레짐작을 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평가지배사회 그 자체를 두고 무조건적인 비판만을 하지도 않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인 호모 이밸루쿠스에 대한 암울한 미래만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이미 평가지배사회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지 현실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를 위해 현실에 대한 진단이 선행되면서 이런저런 비판적 시각이 들어 있긴 하나, 이 책에서는 비판만 하고 끝내지는 않는다.

사실, 평가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평가를 통한 책임성 확보나 자원의 효율적 사용, 통제, 의사소통, 경쟁우위의 지위와 자격 획득에 대한 정당성 제공 등의 역할이 그렇다. 이 이유들은 현대 사회에서 특히 친숙한 내용들이다. 때로는 바람직하다고 여겨져 지향되는 것들로서, 평가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평가가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평가지배사회의 환경은 이미 갖추어져 있어서 그 속에서 태어나는 호모 이밸루쿠스는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호모 이밸루쿠스가 처한 이러한 환경에 대한 인식과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평가지배사회 속 호모 이밸루쿠스의 기본 생각은 “평가는 하되 제대로 잘 하자”이다. 평가는 전제가 되었고, 중요한 것은 제대로 잘 하자는 것이다. 일단 평가는 하되, 어떻게 하면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오류 없이 시행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지 평가 자체의 존폐가 제1의 논의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평가는 하되 잘 하자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인데, 실제 그동안 여러 현장 평가를 다녀보면 피평가기관이나 피평가자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평가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다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가 되길 바란다”이다. 평가를 한다는 행위에는 별로 이견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어떻게든 시험과 같은 평가는 꼭 시행될 수 있게 모두가 힘을 합쳐 대응한다. 비용이 더 들고 조금 불편해도 일단 시험을 시행하는 것은 변함없다. 대입, 임용고시, 취업시험 등은 인생이 달린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무리 마스크를 옷처럼 착용하고 다니게 만든 코로나19가 건재해도 평가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오히려 평가를 받게 되는 호모 이밸루쿠스인 수험생들은 평가를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앞으로도 평가지배사회를 살아가는 호모 이밸루쿠스의 삶이 녹록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회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평가를 하는 호모 이밸루쿠스건 평가를 받는 호모 이밸루쿠스건 지금 보다 더 불안이 가중된 현실이 그들 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모 이밸루쿠스도 적응의 동물인 엄연한 인간이므로 기발하게 적응해 나갈 것이다. 때로는 지금 보다 더 적극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평가를 활용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다루는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호모 이밸루쿠스와 평가지배사회에 대한 소개부터(프롤로그), 일상 속에서 호모 이밸루쿠스가 어떻게 살아가는지(1장), 인간이 호모 이밸루쿠스로 어떻게 성장하는지(2장), 호모 이밸루쿠스가 서로 닮아 가는 모습(3장), 평가과정에서 작동하는 권력을 마주하게 된 호모 이밸루쿠스의 실상(4장), 호모 이밸루쿠스가 만드는 시장의 모습(5장), 호모 이밸루쿠스에게 영향을 미치는 운(6장), 평가지배사회 속에서 계속 진화하는 호모 이밸루쿠스(7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호모 이밸루쿠스가 살아갈 방법을 제시한다.


김민주 동양대·행정학

현재 동양대학교 북서울(동두천)캠퍼스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재무행정학』, 『공공관리학』, 『시민의 얼굴 정부의 얼굴』, 『정부는 어떤 곳인가』, 『문화정책과 경영』, 『평가지배사회』, 『행정계량분석론』, 『원조예산의 패턴』이 있다. 공공인재학부장을 역임했고, 각종 공무원시험 출제 위원, 국회도서관 자료추천위원단 위원, 경인행정학회 연구위원장, 행정안전부의 지방공기업평가 위원, 여성가족부의 청소년정책평가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관심 분야는 평가, 재무행정, 문화정책, 관리, 계량분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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