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은 ‘불안한 중독자’를 만드는 풍요-불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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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은 ‘불안한 중독자’를 만드는 풍요-불화 사회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0.11.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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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풍요중독사회: 불안하지 않기 위해 풍요에 중독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사회심리학적 진단과 처방 | 김태형 지음 | 한겨레출판사 | 288쪽

한국인이 유독 정의에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분노형 범죄가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평가 불안, 존중 불안, 학대 불안, 추방 불안에 시달리는 우리,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사회심리학적 진단과 처방은 무엇일까?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45가지 분석과 통찰로 ‘불안한 중독자’를 만드는 풍요-불화사회를 진단하고 풍요-화목사회 시민이 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인류가 살아온 사회를 물질과 정서(심리),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대표적으로 기준이 되는 키워드가 가난과 풍요, 불화와 화목이다. 저자는 이 키워드에 따라 사회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가난-불화사회는 ‘한 쪽밖에 없는 콩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사회’이다. 자본주의 이전 시기의 계급사회들이 해당된다.

둘째, 가난-화목사회는 ‘콩 한 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사회’로서 사람들이 ‘이런 사회가 정말로 존재할까?’ 가장 많이 의문을 갖는 사회이다. 그러나 명백히 장기간 존재해왔으며, 계급이 생겨나기 이전의 원시공동체 사회, 사회주의국가인 쿠바나 평등 수준이 높은 아프리카의 일부 소국 등이 해당된다. 셋째, 풍요-불화사회는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극소수가 독차지해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사회’이다. 19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지금의 한국 사회,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해당된다. 넷째, 풍요-화목사회는 ‘먹을 것이 풍족하고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이다. 절대적인 기준에서의 풍요-화목사회는 실현된 적이 없지만, 상대적인 기준으로는 북유럽 나라들의 일부 특징들이 풍요-화목사회 특성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어디에 속할까? 저자는 1990년대 이전까지의 한국은 가난-화목사회이고, 21세기 이후는 풍요-불화사회라고 정의한다. 경제력에 따라 거주지가 분리되고, 직업도 일자리도 끊임없이 불안정한 ‘유목민 노동자’로서 살아야 하는 사회. 올라갈 계단이 자꾸만 높아져 늘 패자의 심리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 지금의 풍요중독사회다. 저자는 “과거에는 기껏해야 4~5층짜리 위계 피라미드사회였다면, 오늘날은 100층이 넘는 위계피라미드사회”라고 진단하며, 한국에서는 단지 연봉이나 재산 같은 돈뿐만 아니라 지위, 직업, 자가용, 학력, 외모 등 물질을 상징하는 모든 것에 따라 사람의 등급이 매겨진다고 말한다. 비교에 끝이 없는 사회, 위로 못 올라갈 바에야 옆에 사람보단 더 잘나겠다는 심리가 보편적 욕망이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각종 병리현상과 혐오에 시달린다.

풍요-불화사회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이다. 일정 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꺾여 추락하는 절벽 사회에서 사람들의 목표는 중산층 수준의 삶이다. 사람들은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극심한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을 느끼는데, 이 두 가지 불안을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학대 불안, 추방 불안, 자존감 불안 등이다. 모두 위계 추락이 ‘(자신의) 가치 추락’을 의미하기에 생겨난 것들이다.

또한 지위에 따라 존중 여부가 달라지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평가 불안으로 괴로워하고 자기 연출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위계를 드러내는 소유물의 중요성이 비정상적으로 커졌기에, 라면만 먹고 전월세에 살면서도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이들이 많아진 현상들이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도한 소유나 소비 욕구, 과시적 소비가 물질에 대한 인간 본성이 아니라 타인들의 평가를 몹시 두려워하게 만든 사회가 낳은 ‘병적인 욕구’라고 말한다. 존중받지 못할까 봐, 남에게 뒤처질까 봐, 또는 우월적 쾌감을 느끼고 싶어서 풍요에 집착하는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가지지 못한 사람의 불안심리를 부추기고, ‘풍요중독-불안가중’의 고리는 점점 심화된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여러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진정한 근원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땜질식 처방에만 매달려왔다면서, 자살자가 급증하자 우울증 약을 권장하고 자살방지 캠페인을 펼치고, 범죄율이 증가하자 CCTV를 설치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식으로 대응해온 것 등을 예로 든다. 그리고 이런 땜질식 처방이 정신질환의 양적 증가와 다양한 변종화를 만들었다며,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네 가지(불안 해소, 기본소득제, 조직민주주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방법을 제시한다. 세부적인 방법들로는 무상의료, 저렴한 임대주택제도, 북유럽의 노동자 경영참여 방식, 색깔론/종북몰이 타파, 노동의 의미 재정의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진단하고 처방한 방법들로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면, 지금 한국인을 절벽 끝까지 몰고 가는 가장 큰 불안인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이 다소 해소될 것이다. 또 그렇게 될 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듯이, 자신의 위계를 긍정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만이 동일한 위계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서로에게 단단한 안전 밧줄이 된 사회가 실현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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