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논의되는 복지국가의 틀을 500년 전에 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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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논의되는 복지국가의 틀을 500년 전에 제시하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11.29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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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유토피아(라틴어 원전 완역본): 공화국의 최상의 상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 토마스 모어 지음 |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96쪽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토머스 모어의 신념과 사상이 녹아들어 있으면서도,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로서의 파격적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저서다. 토마스 모어는 절대왕정의 시대를 살면서도 ‘공화국’을 이상국가로 제시했는데, 당시까지의 이상향에 관한 모든 사상과 철학적 논의를 한데 모았고, 이상국가 시민의 의식주와 경제활동, 정치·사회생활 등 세밀한 부분까지 눈앞에서 그림을 그리듯 묘사했다.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시대에 영국은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을 거치며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숲에는 도적 떼가 몰려 있었고 상인들은 무사를 고용해야만 했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농민이 몰락하고 런던의 인구는 폭발하여 온갖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모어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런 범죄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저자가 16세기에 언급한 기본소득, 공공주택, 6시간 노동 정책, 경제적 평등과 같은 여러 급진적 사상은 후대에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으로 연결되었으며, 21세기인 지금도 활발히 논의될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플라톤이 제시한 공화국을 철학적인 담론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모델로 생생하게 묘사해냈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당시 영국과 유럽 사회가 앓고 있던 온갖 사회문제가 해결된 모습을 그리면서,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필요한 이상국가의 기본 틀을 세웠다.

유토피아 제1권은 제2권에서 본격적으로 설명될 최상의 공화국인 유토피아라는 섬나라를 소개하기 위한 도입부 역할을 한다. 즉, 여기에서 유토피아라는 이상국가를 소개하는 동기나 목적을 밝히는데, 그 직접적인 동기는 당시 영국에 만연되어 있던 불의, 그러니까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대다수의 평범한 대중은 먹고 살기도 힘들어 물건을 훔치다가 사형을 당하는데 반해, 공공의 이익에 전혀 봉사하지 않는 귀족과 지주는 사치스럽게 살아가는 현실 때문이었다. 토머스 모어는 이 모든 사회악이 결국 근본적으로는 사유재산 제도에 있다고 단언하고, 제2권에서 사유재산 제도가 폐지된 나라가 어떤 모습일지를 유토피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제시한다.

▲ 유토피아_토마스 모어
▲ 토마스 모어 - 유토피아

제2권은 라파엘이 유토피아라는 나라의 제도와 관습을 여러 분야로 나누어 설명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유토피아는 원래 섬이 아니었지만, 그곳을 정복해서 나라를 세운 유토포스라는 장군이 양쪽 모퉁이에 15마일 너비의 수로를 파내 섬이 되었다. 이곳 시민은 하루에 오직 6시간만 일을 하며, 여가는 재량껏 사용한다. 원하는 직업으로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만 일함으로써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소득 개념을 최초로 소개하였다. 동트기 전에 공공 강좌들이 여럿 개설되는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배울 수 있다.

유토피아는 국가의 철저한 주도로 정원이 딸린 집을 모든 시민에게 무상으로 공급한다(공공주택). 공공의 필요가 모두 충족되면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고 계발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는 최선을 다해 지원한다. 병원을 아주 크고 넉넉하게 지어 공공의료 체계를 완벽히 갖추어 놓았고, 2년 치 물자를 준비해두어 가뭄 등의 자연재해에 대비했다. 집에서 가까운 관청에서는 정성스런 음식으로 무료 식사를 제공한다. 이 나라는 ‘경제적 불평등’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며, ‘참된 쾌락’을 추구하도록 서로 격려한다. 유토피아에서는 극소수의 법만 존재하고, 따라서 변호사가 필요 없다.

토머스 모어는 당시 온갖 사회악의 근본 원인이 사유재산에 있으며,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사유재산 제도를 폐기하고 공동 생산과 공동소유를 통해 정신의 가치를 극대화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즉, 사유재산 제도가 사라진 곳에서는 인류가 어떤 모습을 향유하며 살아갈지를 그려낸 것이다.

사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꿈꾸었으나 그가 실제로 살아가야 했던 세상은 디스토피아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지금 이 시대에 그대로 재현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곳을 이상향이라고 여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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