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노동’ 강요하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노동자를 유령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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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노동’ 강요하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노동자를 유령으로 만드는가?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0.11.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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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슈거 대디 자본주의: 친밀한 착취가 만들어낸 고립된 노동의 디스토피아 | 피터 플레밍 지음 | 김승진 옮김 | 쌤앤파커스 | 284쪽

후기 자본주의의 추악한 이면과 착취당할 대로 착취당하다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분석하는 데 오랫동안 천착해온 저자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슈거 대디 자본주의”라고 명명한다. ‘슈거 대디’란 ‘슈거대디닷컴’이라는 데이트 주선 앱에서 따온 것으로, 부유한 중년 남성이 생활비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고전하는 젊은 여성(이들은 ‘슈거 베이비’라 불린다)을 만나기 위해 가입하는 온라인 사이트다. 그러나 이 책은 성적 괴롭힘에 대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이런 만남 사이트들을 통해서 오늘날의 경제 전체가 가고 있는 방향을 포착한다. 즉 익명적이고 탈인간적인 금전 거래 시스템이면서 매 순간 고립된 개인을 ‘지극히 친밀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방향을 말한다.

이 책은 최근 수년간 소위 ‘긱 이코노미’라 불리는 불안정한 일자리, 온디맨드 형태의 시간제 일자리, 프리랜서 노동의 확산과 개인화로 인한 다층적인 문제들을 ‘탈공식화(deformalization)’라는 흐름 속에서 파악한다. 탈공식화란 공적 거버넌스와 규제를 통한 노동자 보호가 일터에서 사라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는 운전사를 한 명도 ‘고용’하고 있지 않다”는 우버의 주장은 탈공식화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첨단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노동자는 “금전 거래에 기반한, 그러나 불평등한 권력 관계의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사실상의 자영업자가 됐다. 고혈압, 신경증, 교통사고, 과로사 같은 노동의 실재가 지워지고 ‘e-나사못’ 같은 유령이 된 것이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자본주의의 ‘탈공식화’의 기원을 찾기 위해 저자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특히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이 개진한 주장들을 되짚는다. 금전 거래에 의한 냉철한 합리성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낙관적 예측과 달리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권력 관계와 결합했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위험한 이유는 개인의 고립 위에 경제적 불안을 덮어씌우기 때문이다. (…) 현실에서 하이에크의 철학은 이제 개인 단위로 존재하게 된 경제 행위자(노동자, 학생, 세입자)를 혹독한 금전적 판단 앞에 세워놓고 그다음에 무방비로 노출시킨다. 이렇게 ‘보호 없는 개인주의’를 사회적, 정치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이 신자유주의 거버넌스의 핵심이다.”

▲ 슈거 대디 자본주의 - 저자 피터 플레밍
▲ 슈거 대디 자본주의 - 저자 피터 플레밍

이런 탈공식화의 흐름을 넘어서기 위해서 저자는 새로운 관료제에 대해 심도 있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가 지향하는 관료제는 “공공재를 잘 모아서 진보와 존엄의 이름으로 분배할 수 있는 관료제”, 즉 “민중을 위한 관료제”다. 또한 현재와 같은 ‘억압적 관료제’가 아닌 ‘역량 강화적 관료제’는 민주적 관여와 사회적 개선을 위해 사람들의 역량을 강화하도록 고안된 조직으로 공공 의료 시스템, 노동자 권리 증진, 성 평등, 차별 금지와 같은 절차적, 분배적 정의를 상당 수준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는 삶의 모든 영역에 화폐가 파고든 세계에 컴퓨터화라는 요인까지 가세하면서 탈인간화된 노동이 더 이상 노동자의 권리나 요구를 내세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자본은 사람을 채용한다기보다 시간의 덩어리를 구매한다. 자본이 구매하는 노동 시간의 덩어리는 그것을 담지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에게서 분리된다. 이제 가치 증식의 매개는 탈인간화된 시간이며, 이 탈인간화된 시간은 어떤 권리나 요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규제와 감시 체계의 테두리 바깥, 기술 진보와 금전 거래의 접점에서 ‘자유로운 개인주의’라는 당의정을 다시 꺼내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열쇠는 무엇일까? 저자는 책 말미에서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위기의 기저에 있는 탈공식화 경향을 꺾는 것과 관련해 대안으로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를 몇 가지 내놓는다. 보편기본소득을 통해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 자가 고용과 제로 아워 계약의 불법화, 공공 영역의 탈민간화 및 탈개인화, 노동 제도의 탈중심화 등이 그것이다. 특히 ‘노동 제도의 탈중심화’와 관련해서는 “노동자 위원회가 기업 전략과 운영상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가 경영하는 협동조합이나 파트너십이 이와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한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명확하다. “경제적 이성을 공공재로서 다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들이 무엇일지를 결정할 사회적, 정치적 배경에 대해 논쟁하고 그것에 영향을 미칠 자유가 없다면 개인의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는 집합적인 연대가 있어야만, 그리고 억압적인 사회적 상황에 처했을 때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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