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대표제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민주적 대표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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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대표제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민주적 대표제인가?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0.11.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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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대표: 역사, 논리, 정치 |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라·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 노시내 옮김 | 후마니타스 | 312쪽

이 책은 대표 개념의 고대 로마적 기원에서 출발해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시기에 그것이 수행한 역할을 통해 대표 개념의 역사적 뿌리를 검토하며, 정치학은 물론이고 법학과 연극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하는 대표 개념의 여러 변형태들을 검토한다. 특히, 대표 개념이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살핀다.

그동안 대표는, 예컨대 대표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에서처럼, 대체로 부차적인 또는 어떤 명사를 수식하는 한정적인 특성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 책은 이처럼 잘못된 시각을 우리가 바로잡아야 함을 주장한다. 대표는 우리의 정치적 삶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그것의 토대를 이루는 개념이다. 대표 개념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그것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구호처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의 현대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대표 체계의 성립과 더불어 탄생한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서구에서 대표 체계는 재산을 가진 (그래서 세금을 낼 수 있는) 성인 남성에서, 전체 남성으로, 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들로, 마지막으로 여성으로 대표 체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확대되면서 민주주의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대표 체계는 현대 민주주의를 등장시키고, 작동시키며, 확대해 온 핵심 기제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가 말했듯, 오늘날 민주주의는 누가 투표할 수 있는가를 넘어, 어디에 투표할 수 있는가로 나아감으로써, 다시 말해 누가 대표되는가를 넘어, 어떤 주제가 정치적 결정의 대상으로 재현(대표)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의 확대를 통해, 민주주의의 내용과 질 역시 달라지고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표제(대의제) 민주주의는 시간이 걸리고, 상층 엘리트 편향적이며, 인민의 자치(직접 통치)를 지연시키고, 민주주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에 비해 열등한 ‘간접’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대표제 민주주의에 대한 표준적 견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분석적 정치 이론들은 대표 개념의 기원과 그것이 가진 모호성을 문제 삼으며, 대표 개념이 정치에 관한 사고에 혼란만 초래하는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그래서 분석적 정치학자들은 대표 개념을 순수하게 도구적인 역할로 축소해, 좀 더 다루기 용이한 선거 정치나, 책임성의 문제로만 환원함으로써, 심지어 여론조사로 나타나는 정부의 인기도로 환원함으로써, 대표 개념에 내재된 모호성이 가진 유연성과 그 창조적 힘을 적절히 사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대표_원서,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라, 데이비드 런시먼
▲ 대표 -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라 & 데이비드 런시먼

이 책은 오늘날 만연해 있는 이 같은 경향을 반박한다. 이 책이 핵심으로 삼는 원리는 대표를 민주주의에 부속된 하나의 분석적 범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적 민주정치를 비롯해, 근대 세계의 정치는 대표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표라는 관념이 분석적인 정치 이론가의 눈에 불투명하게 보일지라도, 그 관념에 고유하게 내재하는 애매성이야말로 오히려 대표 개념에 일종의 유연성을 부여하며, 근대적 형태의 정치가 작동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대표 개념이 가진 유연성과 창조적 힘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대신 (피대표자의 부재성) 수행되는 ‘대표자’의 행동과 자신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행위에 반대할 수 있는 ‘피대표자’의 능력(피대표자의 현존성) 사이의 간극에서 나타나는 긴장 속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만약 그들 사이에 아무 차이도 없다면, 다시 말해 대표자와 피대표자가 동일하다면, 우리는 대표가 아니라 단순한 현시(프레젠테이션)만을 다루게 될 뿐이다. 말하자면, 대표는 대표자가 피대표자를 대리한다는 점에서 피대표자의 ‘부재’를 뜻하지만, 대표자의 대리 행위를 통해 피대표자가 ‘현존’하게 됨을 뜻하는 것이다. 사실, 대표representation 개념 그 자체로 이런 긴장을 내포하고 있는데, 재re-‘현’present이라는 점에서 현존하고, ‘재’re-현present이라는 점에서 부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모호성을 대표 개념의 약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강점으로 볼 것인가이다. 일부 정치 이론가는 정치의 핵심에 모호성을 들여온다는 이유로 약점이 확실하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게 강점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어떤 문제를 개방된 상태로 유지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누가 무엇을 요청하느냐에 따라 문제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일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이 개방성은 어떤 민주정치 체제나 갖추고 있는 경쟁적, 성찰적, 유동적 속성에 핵심을 이루며, 대표 없이 오늘날의 민주주의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그들의 정부에 의해 대표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어야, 정부가 통치할 때 국민도 통치한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근대 정치에 대한 핵심적 이해이며,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이로부터 도출된다.

비단, 근대 정치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날 대표에 대한 주요 이론가들의 저술들은 ‘대표’ 체계를 중심으로 정치사 연구의 지평을 그 이전 시기로까지 확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표제 민주주의를 순수하게 민주주의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보거나, 직접적인 통치가 불가능한 시대에 탄생한 차선책으로 간주하는 견해에 맞서 정치적 대표제를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중요한 핵심적 기제로 보고 있다(이를 흔히, ‘대표론적 전회’라 일컫기도 한다).

대표 개념을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대표제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던 관점을 뒤집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통치의 역사를 대표의 역사로 바라보면, 대표에 다양한 통치 형태가 접합하게 되는 형식에 주목할 수 있다. 예컨대, 사회의 구성 원리가 하나(신 또는 절대 진리)로 대표되는 왕정, 복수이지만 소수인 귀족정을 넘어, 복수의 원리가 서로 경쟁하고, 다원적으로 대표되며, 이 같은 경쟁의 일시적 봉합에 기반을 둔 민주적 대표 체계를 고민할 수 있다. 나아가, 이 같은 시각은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에서 대표제를 어떻게 탈각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같은 고민은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라는 허구적인 대립에 기반을 두고 있다)이 아니라, 대표제에 민주주의를 어떻게 접합시키고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고민해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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