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형 사립대 도입으로 과연 교육의 ‘공공성’이 높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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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형 사립대 도입으로 과연 교육의 ‘공공성’이 높아질까?
  •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 승인 2020.11.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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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용의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공영형 사립대학(혹은 공영형 전문대학) 도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제까지 정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2021년 예산(안)에서 “민주성과 공공성 확보를 선도하는 사립대를 지원하는 사학혁신지원사업”으로 이름을 바꾸어 53억원의 정부예산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3년간 정부예산안에서 1개 대학에 투입될 공영형 사립대 예산은 지난 2019년 200억원에서 2020년 30억원, 2021년 10억원으로 매년 줄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21년에는 전문대학 참여도 제외되었다. “사학혁신지원사업”은 기존 방식처럼 “이사회 절반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는 사립대에 대해 운영비 50% 이상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회계 투명성 제고, 공공성 강화 등 자체 계획을 수립하는 경우 평가를 통해 인센티브를 지원받게 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뉴시스, 2020. 11. 18). 나중에 보다 구체적 방안이 나와봐야겠지만, 필자의 눈으로 볼 때 이번 방안은 기존 ‘공영형 사립대 도입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공영형 사립대학이라는 공약을 사실상 철회하고 특정 범주의 사립대학에 대해 추가적 지원사업을 신설하는 것 정도로 보이기는 한다. 

한편 공영형 사립대와 유사한 소위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2020년 11월 17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개최한 ‘대학서열 해소’ 포럼에서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을 통해 사립대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지방대학 위기를 극복할 것을 제안했다. 임 연구원은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은 OECD에서 규정하는 ‘정부의존형 사립학교’의 개념을 변용한 것이며, 학교 재정의 50% 이상을 정부가 지원하거나 학교에 속한 교사나 교수의 급여를 정부가 지원하는 교육기관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대선공약인 ‘공영형 사립대학’과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두 방안 모두 사립대학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방향성에서는 같지만 정부책임형은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하고, 공영형은 일부 대학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교수신문, 2020. 11. 17). 

공통적인 것은 이 두 가지 방안 모두 “공영형(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도입의 주된 근거로서 ‘공공성 확보’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연 공영형 사립대학 도입이 ‘공공성’을 확보하는 주된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필자는 먼저 정부 정책의 맥락에서 ‘공공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권향원(2020)의 논의를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는 (1) 국가 수준의 공적 영역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공(公, public)“, (2) 공동체와 결사 수준의 공적 영역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공(共, common)“, 그리고 (3) 개인 수준의 사적 영역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私, private)“란 용어를 제시하면서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다면적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러한 다층적 구조의 공공성 개념에 각각 대응하는 윤리적 개념어로서 공공성(publicness, 公), 공동성(commonness, 共), 사사성(privateness, 私)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배경으로 다시 본래의 주제인 ”공영형 사립대는 과연 ’공공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로 돌아와 보자. 먼저 다층적 공공성 개념에 따라 볼 때 ’공영형 사립대의 도입‘은 공동체와 결사 단위(이 경우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전환되는 ’대학‘) 수준에서는 일단 ”공동성(commonness, 共)“이 확대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가 수준에서의 윤리적 개념어인 ”공공성(publicness, 公)“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사립대학 이사회 절반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는 대신 사립대의 운영비 50% 이상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공영형 사립대 도입의 핵심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국가 세금이 들어가는 것이 확실한 이러한 정책에서 혜택을 받는 이해당사자는 과연 누구일까? 멀쩡히 잘 돌아가는 사립대학을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전환하거나, 혹은 학생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사회적으로 온갖 물의를 일으켜온 분규 대학에 대해 ”합당한 희생과 자구노력 과제를 부여“하거나 혹은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폐쇄해 버리지 않고,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오히려 구성원들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특히 구조개혁 상황 속에서 불철주야 생존을 위해 치열한 노력을 벌여 온 다른 사립대학들과, COVID-19라는 초유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금을 묵묵히 부담하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할 때 말이다. 

공영형 사립대학 도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여기서는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공동체와 결사의 수준이 ’개별 대학‘이 아니라 ’전체 고등교육 체제‘ 혹은 ’교육체제’로 바뀌는 것일 뿐이다. 사실 정부가 투자할 재정 규모는 항상 제한되어 있고, 이에 따라 우선순위는 언제나 치열한 국가적 논쟁의 대상이 된다. 고등교육체제의 과도한 팽창과 고등교육기관들 간 연계성 부족으로 국가 차원에서 치열하게 대학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이 시점에, 과연 국가가 모든 대학 운영비의 반을 지원하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국가 전체 수준에서의 ’공공성(publicness, 公)‘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까? 백보 양보해서 이러한 생각이 고등교육체제 수준에서는 해당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체 교육체제 수준에서의 ’공동성(commonness, 共)‘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최소한 필자가 보기에 현 시점에서 전체 교육체제 수준에서 보다 투자 우선순위가 높은 영역은 이들이 주장하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혹은 이를 실현하는 재정적 수단으로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이 아니라, 저출산 사회, 일하는 여성이 확대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이들이 걱정하지 않고 양질의 교/보육을 공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제시되는 공약은 대개의 경우 사회적 투자 우선 순위를 면밀히 검토하여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해당 분야(예컨대 교육)의 가치를 중시하는 전문가에 의해 분절된 채 개발되고, 실제로 이에 소요되는 예산 조달 방안과 국가적 투자 우선 순위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권력 실세나 이들과 가까운 특정인의 설익은 정책 아이디어가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성급하게 채택될 때 정책 실패를 초래하는 경우를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시간강사법 제정(고등교육법 개정), 국사 국정교과서 추진, 공영형 사립대 도입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박남기(2017)의 논문에서 가져온 아래의 인용문을 보면, 정권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소위 집권세력과 이들과 가까운 전문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대선 공약의 실체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면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는 비슷한 이념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짧은 시간 안에 폐쇄적 방식과 절차를 통해 표까지 계산하면서 교육공약을 개발한다. 공약개발팀은 지난 정부와의 차별화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고유의 슬로건과 교육정책의 목표를 내세우고, 거기에 따른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한다. 편향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책이 졸속으로 만들어지더라도 해당 캠프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그 정책은 국민적 지지를 얻은 것으로 간주되게 된다(박남기, 2017). 

* 권향원(2020). 공공성 개념: 학제적 이해 및 현실적 쟁점. 정부학연구, 29(1). 1-36.  

* 박남기(2017.4). 대통령 선거 공약 및 관련 쟁점: 초중등 교육지배구조를 중심으로. 2017 한국교육정치학회 춘계학술대회. 서울: 고려대학교.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및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University of Oregon(Eugene)에서 고등교육행정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장, 기획담당관, OECD 사무국 상근 컨설턴트(Institutional Management in Higher Education),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과 안암교육학회 <한국교육학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과 성공요인: 학부교육 우수대학 성공사례 보고서1, 2』(공저), 『한국 교육책무성 탐구』(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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