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전사 노르만(Normans), 그들의 끊임없는 이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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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전사 노르만(Normans), 그들의 끊임없는 이동의 역사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11.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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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31)_북방의 전사 노르만(Normans)

프랑스 북서 해안지역,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상륙작전으로 유명한 그 곳의 이름 노르망디(Normandy)는 북쪽에서 온 유랑집단의 명칭에 기원을 둔다. 이들 북방인(the Norsemen)들은 중세 초 고대 노르스어(the Old Norse language)를 사용하던 북부 게르만 집단이었다. 인도유럽어족 북게르만어군에 속하는 고대 노르스어는 Old Icelandic이라고도 불리는 9~16세기 고대 아이슬란드어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사용되는 현대 게르만어들의 조상이다.

▲ 노르만족 사람들의 전통 복식(1000~1100년경)
▲ 노르만족 사람들의 전통 복식(1000~1100년경)

8세기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스인들이 사방팔방 대규모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며 이른바 바이킹 시대를 연다. 19세기 이후 영어학계에서는 이들 노르스인 해상무역업자, 정착민, 전사를 뭉뚱그려 바이킹이라 불렀다. 데인족(the Danes), 아이슬란드인(Icelanders), 페로 제도인(Faroe Islanders), 노르웨이인(Norwegians), 스웨덴인(Swedes)이 오늘날 스칸디나비아인이라고 불리는 노르스인들의 후손이다.
 
이들이 영국 해안을 침범하며 노략질을 하고 방화에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부는 섬에 남아 정착하였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해안이 바이킹의 영향권에 들어갔으며 11세기경에는 영국 영토의 태반이 데인족 바이킹 지배하에 들어갔다. 데인족은 오늘날의 덴마크인이다.

▲ 서기 820년경 침몰한 바이킹의 롱쉽(long ship) 오세베르크호의 복원된 모습
▲ 서기 820년경 침몰한 바이킹의 롱쉽(long ship) 오세베르크호의 복원된 모습. 오세베르크는 노르웨이 오슬로 남방 약 100km의 거리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바이킹 선박 특유의 머리와 꼬리를 들어올린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노르만(the Normans)이라고 부르는 종족은 후일 노르망디라고 이름 붙여진 프랑스 땅에 정착한 노르스 바이킹과 프랑크, 게일 로마인들과의 접촉의 결과물이다. 바이킹들은 덴마크로부터 프랑스 해안을 따라 내려오며 급습을 시도했다. 그리고 론 강이나 센 강을 비롯한 내륙 수로를 따라 프랑스와 스페인 내륙으로 이동해갔다. 그렇게 발트 해 연안,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도 장악하였다. 프랑크 왕국 샤를 3세(재위: 898년 ~ 922년)의 통치 기간 동안에,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 롤로(Rollo)와 덴마크 출신 베르나르 르 다누아가 이끄는 노르만족이 파리로부터 흐르는 센 강 하류의 양안에 정착하였고, 그로 인해 그 지역의 이름이 노르망디가 되었다. 항해술이 뛰어났던 바이킹들은 지중해와 동쪽 카스피 해까지 진출하였다. 1072년 노르만족은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를 정복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 노르만족의 이동
▲ 노르만족의 이동

스웨덴 출신 바이킹 바랑기족은 동쪽의 발트족과 핀족 그리고 슬라브족의 땅(오늘날의 발트 해 연안,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 진출한 후 토착민들인 동슬라브족에 동화되며 루스인(the Rus)으로 불렸다. 루스란 슬라브말로 이방인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서 러시아(Russia)라는 나라 이름이 생겼다. 그 후 바랑기족의 지도자 류리크가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 최초의 루스인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들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을 쌓았는데 슬라브말로 고로드(gorod)라고 했다. 오늘날은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노보그라드, 볼가그라드 등의 지명에 나타난다. 그 후 드네프르 강을 따라 흑해,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 비잔티움 제국까지 진출하였다.

▲ 정복왕 윌리엄
▲ 정복왕 윌리엄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지척에 있던 노르망디 공국의 실력자 윌리엄 공은 1066년 섬나라 영국으로 쳐들어간다. 앵글로 색슨 왕 에드워드가 후사 없이 죽고 여동생의 아들인 조카 해럴드가 왕위를 계승하자 에드워드의 먼 친척인 윌리엄공이 자신이 왕위계승권자임을 주장하면서 이다. 이렇게 해서 노르만인의 영국 정복이 이루어져 200여 년간의 지배 동안 노르만 프랑스어가 영어에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영어 어휘의 5분의 3 정도가 프랑스어에 기원을 둔다. 영국영어의 억양이 프랑스어의 억양과 닮아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종족간의 접촉은 언어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온다. 고대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 카이사르(Caesar: 영어 발음은 시저)라는 이름이 황제라는 뜻의 독일어 카이저(kaiser)가 되고 러시아어로는 짜르(czar)가 되었다. 북쪽사람이라는 뜻의 노르만에서 프랑스어 노르망디라는 지명이 생겼고 이들 노르만인들이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면서 체코에서는 노르만스키(normansky), 독일에서는 Normanski와 같은 사람이름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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