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신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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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신국론〉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0.11.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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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22강>_ 성염 서강대 명예교수의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신국론>」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4. 서양 고전과 그 역사적 의미 – 기독교’ 제 22강 성염 교수(서강대 명예교수)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성염 교수는 ‘절대자를 만나는 인간의 길’로 간주되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저로 평가”되는 3부작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 역정에서 진리라는 절대자를 추구”하여 만난 뒤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으로 섬기게 된 길을 묘사”한 『고백록』과 “인류가 그 역사의 도정에서 신과 합작하여 지상에 ‘하느님의 도성’ 곧 신국(神國)”을 설계하는 『신국론』을 다룬다. 그 개괄적 고찰을 관통하는 단일 축으로는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의지가 개인의 윤리악과 집단의 사회악을 인지하고 극복해나가는” 것으로 설정한다. 그러면서 “5세기 초엽 한 종교인의 혜안”이 현시점에 “인류가 ‘사랑의 문명’을 지향하는 정치적 의지에 어떤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지를 묻고 있다.

▲ 지난 10월 17일, 성염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22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들어가는 말

0. 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리스 그리고 키케로 이후 가장 방대한 저작을 남긴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 활동은 현재까지도 100여 권이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다. 그 많은 저작 가운데 ‘절대자를 만나는 인간의 길’로 간주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저로 평가되는 삼부작(三部作)이 있다. 교부가 자기 개인 인생 역정에서 진리라는 절대자를 추구하여 만나고서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으로 섬기게 된 길을 묘사한 『고백록(Confessiones)』(397년), 인류가 그 역사의 도정에서 신과 합작하여 지상에 ‘하느님의 도성’ 곧 신국(神國)을 설계하는 『신국론(De civitate dei)』(427년), 그리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격언을 이어받아 인간과 그 존재 근거인 신을 탐구하면서 신의 모상인 인간(homo imago dei)의 의식과 기억과 사랑을 분석하여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리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신비에 접근하면서 당대까지의 가장 심도 있는 인간학(人間學) 저술을 남긴 『삼위일체론(De Trinitate)』(426년)이 그것이다.

1.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1. 0. 『고백록』

『고백록』은 서양 고대 세계가 끝나는 즈음 나온 서구 문학 최초의 본격적 자서전(自敍傳)이면서도 철학계에서 고중세 최초의 ‘실존주의’ 저서로 간주되므로 오늘날에도 세계 문학 전집에 필히 들어가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1. 1. 아우구스티누스, ‘진리의 연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열아홉 나이에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라는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나에게 커다란 수수께끼가 되고 말았고”(factus eram ipse mihi magna quaestio: 『고백록』, 4, 4, 9) “인간 자체가 위대한 심연”(grande profundum est ipse homo: 4, 14, 22)이라는 자각이 들면서 그 심연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에 휘말리게 된다. 그 책에서 그를 갑자기 사로잡은 한마디, ‘진리’라는 단어가 그의 일평생을 휘어잡고 만 것이다.

한때 회의론(懷疑論)에 함몰된 적도 있었지만, 인간이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는” 이상 “진리가 존재 않는다고 의심하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살아 있음을 의심하는 편이 훨씬 쉽다”(7, 10, 16)는 논지를 펴고서 “내가 속는다면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sum)”라는 명제를 남겼다. 그리스인들의 주지론(主知論)에 대비하여 그는 “사랑이 진리를 알게 한다(caritas novit veritatem)”는 주의론 명제를 내세웠다.

1. 2. ‘인간, 신을 포괄하는 존재(Homo capax dei)’

‘한 잔의 물을 보고 바다를 상상하리만큼’ 조숙했던 저 철인은 유한자로서 인간이 무한자를 탐구하는 본성을 관찰하면서 “인간은 최고의 자연본성[신]을 포괄할 역량이 있고 최고의 자연본성에 참여할 수 있는 위대한 자연본성이다”라고 단정하였고, 그 존재론적 근거를 유대인들이 창작해서 인류 사회에 전승시킨 ‘성경’에서, 그것도 그 첫 권 「창세기」 첫 장에서 인간을 정의한 대로,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점에서 하느님을 포괄할 만하다는 점과 하느님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모상이다”라고 단언하기에 이른다.

1. 3. 악(惡)의 형이상학

그리스-로마 비극 작가들은 흔히 인간의 행복과 성공을 못 보아 넘기는 ‘신들의 질투(invidia deum)’나 인간의 사소한 실수도 용납지 못하고 과도한 징벌을 가하는 ‘신들의 분노(ira deum)’에 손가락질함으로써 그것들에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인간들에게 깊은 연민과 동정을 보여 왔다.

그런데 ‘안식일’ 제도와 더불어 ‘죄의식(罪意識)’이라는 정신문화를 인류 사회에 제공한 히브리인들의 종교와 접한 다음에야 비로소 인류는 인간이 개인적이나 집단적으로 저지르는 악의 가공스러움과 비극성을 바닥까지 들여다볼 안목과 용기가 생겼다. 인간 지성이 신마저 사유의 외연(外延)으로 포괄할 만큼 위대한 심연이라면, 고통과 죄악이라는 이 심연도 들여다볼 만한 능력이 있을 것이고, 아우구스티누스야말로 인류 사상 악의 문제에 가장 심각하게 의문을 던지고서 나름대로 얻은 대답을 『고백록』에서 문학적으로 술회한 작가이기도 하다.

1. 3. 1. ‘죄(罪)’와 ‘악(惡)’의 구분

현대 서구 문화의 두 주류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합류 지점이라고 평가받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악을 규탄하는 인간의 비극은 ‘인간의 책무’를 부각시키면서도 어떻게 하면 신적 자비와 은총을 입어 ‘악의 척결’을 모색할 것인가 고민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선, 일반적으로 ‘고(苦)’와 거의 동치되던 ‘악(惡)’을 구분 지었다. 생로병사의 형태로 겪는 ‘고(苦)’ 곧 ‘물리악’(poena peccati 곧 죄벌(罪罰)이라고 불린다)과 인간이 의도적으로 자신과 타인들에게 자행하는 ‘악(惡)’을 ‘윤리악’(malum peccati 곧 죄악(罪惡)이라고 불린다)으로 구분하고서 피조물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서 죄악(罪惡)의 발원을 끌어냄으로써 선악 이원론(마니교 논쟁)과 ‘에피쿠로스 딜레마’를 극복한다.

창조주가 부여한 자유의지의 악용으로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악이 승리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 하느님은 지상에서 저질러지는 악행을 조성하는 분(auctor)이 아니고 악으로 무너진 질서를 정의와 자비로 바로잡는 분(ordinator)이라고 답변한다. 하느님의 의지는 패배를 모른다(voluntas dei semper invicta). 여기서 새로운 점은, 인간 의지에서 악이 발생한다면, 인간 의지의 개인적 집단적 발휘로 악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이다.

1. 3. 2. 배나무에서 무화과나무까지 (인간의 초인(超人) 의식)

선악 이원론이나 숙명론에서 해답을 찾지 않고 악의 기원이 피조물(천사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있다고 규명함으로써, 인간은 신들의 변덕스러운 자의(恣意)에서 유래하는 인생고의 희생물(犧牲物)에서 악을 극복하는 해결자(解決者)의 위치로 바뀐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질문도 선한 신의 선한 피조물 인간이 신이 선물한 선한 자유의지를 악용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의문으로 변한다.

『고백록』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가장 위대한 교부(敎父)가 평생을 두고 악의 문제를 천착한 계기가 열여섯 살에 저지른 ‘배 서리’였다면 믿어질까?(『고백록』 제2권) 여기서 그의 고찰은 본격적인 ‘악의 신비’로 넘어간다. “해서는 안 될 짓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니, 그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니, 과연 그럴 수가 있습니까?”(2, 6, 14) 인간은 피조물이다! 피조물의 자유의지는 창조주가 제시하는 선에 동의(同意)하는 여지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미로’ 악을 감행할 적에는 ‘내가 좋아하는 바가 곧 선이다!’라는 초인(超人) 사상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본질은 교만(驕慢)인데, 문제는, “교만조차도 지고함을 본뜨는 무엇, 당신 홀로 만유 위에 지존하신 하느님을 본뜨려는 무엇”(2, 6, 13)이라는 생각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뇌리를 스친다.

그런데 교부의 눈에 바로 그 모방에 구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당신을 본뜨고 있을지라도 그자들은 당신을 떠나서 갈 곳이 도대체 존재하지 않음을 가리킵니다.”(2, 6, 14) 선행에서는 물론 모든 악행에서도 인간이 무의식으로 추구하는 바는 하느님이라는 절대선이었다! 죄악마저도 무구함을 동경하고 하느님 안에 안식을 찾는 몸부림이었다. 인간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점 때문이었다.

1. 3. 3. 하느님의 승부욕과 ‘하늘 사냥개’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 깊은 자국을 준 것은 우정이었다. 여자에게서든 남자에게서든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제일가는 행복으로 여기던 아우구스티누스 곁에는 늘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도 일평생 속을 터놓고 지낸 고향 친구 알리피우스가 가장 가까운 인물로 꼽힌다. 그러던 우정이 겨우 한 해를 다 못 채웠는데 죽음이 그를 이승에서 거두어가 버렸다!

고향은 벗의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평안도 없고 분별도 없이, 갈기갈기 찢기고 선혈을 흘리는 영혼을 끌고 다녔으며, 영혼 둘 곳을 찾아내지 못하던”(4, 7, 12) 나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로서는 “자기가 자기에게 커다란 수수께끼”(4, 4, 9)가 되고 만다. 인간에게 지상 사물은 ‘사용하는(uti)’ 대상이고 하느님만 인간이 궁극적으로 ‘향유할(frui)’ 대상이기에 “무릇 사멸하는 사물들에 대한 우애에 사로잡힌 마음은 모두 불행하고, 사랑하던 것을 잃고 나면 비참을 느끼지만, 그것들을 잃어버리기 전에도 이미 그것으로 비참한 법”(4, 6, 11)임을 감 잡는다.

이처럼 친구 잃은 참담한 슬픔과 비통에서 어떤 섬뜩함을 느꼈고 그 섬뜩함을, 당신에게서 달아나는 “도망자들의 등 뒤를 바싹 쫓으시는 복수의 하느님의 묘한 솜씨”(4, 4, 8)라 불렀다! 그분 말씀이 폐부에 박혀 있어서 어디로나 그분께 포위되어 있다는 실감(8, 1, 1), 현대 영국 시인 프랜시스 톰슨이 묘사한 ‘하늘 사냥개’의 콧김을 목덜미에 느끼고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앉는 항복!

1. 3. 4. “Eloi, Eloi, lemmasabacthani!”

『고백록』 제8권에 이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 삶에서 얻어낸, 악에 관한 네 번째 답이 나온다. 명예욕과 색욕을 떨쳐내고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어떤 손길, 천둥벌거숭이 인간들에게 자비를 한없이 투자하는 하느님의 모험심 내지 승부욕을 간파한다.

문제는 전능한 신의 승부욕이 보여주는 결말이, 악의 문제를 두고 ‘왜?’라는 의문을 던지는 그리스도인들의 파토스를 클라이맥스로 내몰아친다는 사실이다. 승부를 위한 도박에는 결국 모든 것을 걸게 된다. 그 승부의 절정은 갈바리아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와 거기 매달린 신의 아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Eloi, Eloi, lemmasabacthani(“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십자가는 악 앞에서 완전하게 패배한 신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당신의 승부에 모든 것을 건 사랑의 도박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비명에서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비극의 파토스’는 절정을 이룬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된 십자가는 죄악의 심각성과 고통의 절박성을 최고조로 부각시키면서, 당신 아들의 몸에서 악을 몸소 당함으로써 그 악을 이기려는 신의 해법이 엿보이는 까닭이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2. 0. ‘로마의 평화(pax Romana)’의 붕괴

서기 410년 8월 24일! ‘영원한 도시 로마(Roma aeterna)’가 처음으로 비시고트족 알라릭의 군대에 함락 당한다. B.C. 753년을 건국의 해로 계상하는 제국의 신민들에게는 1000년 넘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거대한 화염 속에 붕괴되는 조짐이었다(과연 그 뒤 반세기 만에 서로마 제국은 멸망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정치군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붕괴하는 로마 제국의 악취를 맡으면서 북아프리카를 모조리 초토화하고 자기가 주교로 있던 히포 항구까지 포위한 반달족의 함성 속에 430년 8월 28일 숨을 거두며 역사의 최종 지평선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거기 서려 있다.

2. 1. 『신국론』에 묘사되는 ‘하느님의 도성’과 국가

2. 1. 1. 인류사(人類史)는 곧 구세사(救世史)

아우구스티누스가 집필한 것은 정치신학에 해당하지만 『신국론』에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 국가와 국민의 개념, 그리고 국민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정의 사상 등이 기술된다. 『신국론』의 요점을 든다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므로, ‘공동선(共同善)에 대한 사랑’이 국가를 구성하므로, 세계(世界)는 신과 인간에게 공통된 유일 공간이므로, 지상에서 인류에 의해서 전개되는 사건들 전부가 신의 의지와 인간들의 의지의 합작이므로, 그 국가 구성원들 간에, 국제 사회에 정의롭고 질서 잡힌 평화가 정치를 존속시키는 필수 조건이요 희망이라는 호소다.

그런데 지상에서 인간들이 조성하고 수호하는 그 ‘공동선’이 유한한 자원이므로 국가의 존립에는 내부로든 대외로든 불화와 투쟁을 내포하며 여기서 정치가 안고 있는 태생적 결핍이 전제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만으로는 개개인과 인류가 희구하는 공동선을 실현하는 환경이 불가능하다는 신념에서, 역사 속에 전개되고 있으면서도 역사를 초월하는 신국(神國)을 배경으로 설정하고서 현실 국가의 정치 체제를 부단히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당대의 지성인들에게 『신국론』을 집필하였다. ‘하느님의 도성’ 정도의 초월적이고 초역사적 기준을 이상으로 목전에 두어야만 현실의 어느 정체(政體), 정권(政權), 법제(法制)도 상대화하여 절대왕정, 제국주의 내지 전체주의에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교훈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2. 1. 2. 인간의 사회적 본성

고중세 서구 사상에서 정치와 국가 존립의 이론적 토대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요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에서 유래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아마도 생명체들 가운데서 (악덕으로는 그토록 불화하면서도) 인간만큼 본성으로는 그토록 사회적인 종자가 없었다.”(『신국론』, 12, 28, 1). 아울러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류의 단일한 역사를 상정하는 사해동포(四海同胞) 사상을 시사한 것은 그리스 스토아철학과 유대교 경전에 실린 ‘인류 단원설’과 ‘유일신 신앙’이었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사회적 본성에서 국가 사회가 비롯했다면서도 『신국론』에서 역사를 추동하는 두 축에 따라서 ‘지상의 도성’과 ‘하느님의 도성’을 논하는 그의 국가관은 좀 비관적이다. 낙원에 살던 인류의 원조가 저지른 범죄가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원죄설(原罪說)’을 그리스도교 신학으로 정립한 인물답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란 인류가 역사적으로 누적해온 개인적 집단적 죄악의 상처와 폐해가 가장 현저하게 노출되는 영역임을 지적하여 정치가 인간이 개인적 집단적 이기심을 극복하는 과제를 안게 했다.

그러나 반달족의 침략으로 로마 제국이 북아프리카 전역을 상실하는 전화 속에서 그리스도교회도 아울러 몰락함을 목격하면서 현세에서 사회생활을 보장하는 평화를 수호하는 데 국가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된다며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신자들에게 제시한다. “지상 도성도 평화를 구하고 시민들 사이에 명령하고 복종하는, 질서 있는 화합을 도모하면서, 지상 사물들에 대해서 인간 의지들 간에 적절한 조정이 이루어지도록 시민들을 배려한다. 따라서 천상 도성도 지상 도성의 평화를 이용해야 하므로 … 지상 도성의 법률에 순종해야 하며 … 지상 평화를 천상 평화에로 귀결시킨다.”(19, 17)33)

2. 1. 3. “국가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이고 국민의 것(res populi)”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가 내린 정의에 따라서 ‘공화국(res publica)’을 어원대로 ‘공공의 사물’이라고 정의하면서 ‘공공의 사물’은 곧 ‘국민의 사물(res populi)’이라고 단언한다. 주권재민의 사상은 로마인들에게 일찌감치 친숙하였고 키케로에게 정의(正義)는 단순히 정치 생활의 규범으로 그치지 않고 국민을 구성하는 요소였으므로, 아우구스티누스도 “공화국이 최고의 정의(正義) 없이는 통치될 수 없다”(2, 21, 1)라고 단언하였다.

키케로에게 국가 또는 공화국이란 ‘법 정의(正義)에 대한 합의(iuris consensus)’에 의해서 성립된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가 ‘법 정의’의 개념을 ‘사랑’의 개념으로 대체함으로써 그가 내리는 ‘국민’의 개념도 혈연과 영토와 주권의 범위를 확대한다. 그가 새로 보완한 국민의 개념은 ‘사랑할 대상에 대한 합의(concors dilectio)’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국민이란 “사랑하는 사물에 대한 공통된 합의에 의해 결속된 이성적 대중의 집합”(19, 24)이다.

개인적 집단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역사의 추동력을 ‘사랑’으로 규명하는 일은 일반인들의 귀에는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 아우구스티누는 인간 실존을 두고도 “나의 중심(重心)은 나의 사랑”이라고 시인하였듯이, 역사의 주역들에게도, 그 주역들을 추종하는 집단들에게도 모든 야망과 헌신의 추동력이 되는 것은 ‘욕망’ 곧 자기를 충동하는 사랑임을 간파하였다. 논지는 간단하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요한 일서」 4, 8)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창세기」 1, 27) 따라서 모상이 원형을 따르듯, ‘인간은 사랑이다.’ 달리 말해서 인간은 그 소속 집단과 더불어 사랑으로 구제받거나 사랑으로 파멸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회적 사랑’의 한 축인 인인애(隣人愛)를 곧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모험마저 감행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 하느님으로부터 옴은 물론이려니와 바로 하느님이기도 하다.”

2. 1. 4. 신국과 지상국의 판가름: ‘사회적 사랑’과 ‘사사로운 사랑’

이런 맥락에서 『신국론』 핵심 주제, 인간 개개인이나 일정 정치사회적 집단이 신국과 지상국 둘 중 어느 것에 소속하느냐를 판가름하는, ‘사랑의 구분’, “두 사랑이 있어 지상국과 신국, 두 도성을 이룬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두 가지 사랑이 두 도성을 건설했다. 하느님을 멸시하면서까지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 도성을 만들었고, 자기를 멸시하면서까지 이르는 하느님 사랑이 천상 도성을 만들었다. … 전자에서는 그 제후들과, 그들이 멍에를 씌운 민족들 모두에게도 지배욕이 군림하고 있다. 후자에서는 지도자는 훈계하고 아랫사람은 복종하는 가운데 사랑으로 서로 섬긴다.”(14, 28)

역사의 추동력을 ‘사랑’으로 규정함도 의아스러운데 ‘하느님을 멸시하면서까지 이르는 자기 사랑’이라는 문구 역시 부연 설명을 요한다. 고전적인 개념대로 “각자에게 자기 몫을 돌려줌(suum cuique tribuere)”이 정의라면, 인류가 무엇보다 앞서 자기 창조주에게 ‘맞갖은 몫’을 돌려주는 기본 정의가 수립되어 있지 않다면 지상에 정의로운 공화국도 정의로운 국민도 존재하지 못하리라고 전제된다.

사상계에서 최초로 진지하게 인간 의지를 성찰한 주의론자(主意論者)답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상국이든 신국이든 두 도성을 지배하는 원리는 사랑의 향방 혹은 폭임을 간파하고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기심 곧 ‘사사로운 사랑’이냐,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에 매달려 못질된 그리스도의 벌려진 두 팔이 상징하는 ‘사회적 사랑’이냐를 선택하는 기로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모든 인간 집단이 희구하는 ‘평화’를 누릴 만한 세상을 건설하자고, “정의가 없는 왕국이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4, 4)라는 힐문대로, ‘평화는 오로지 정의의 열매(opus iustitiae pax)’일 따름이라고, 종교와 사상,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서, ‘사랑의 질서’가 전도되지 않게 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나가는 말

0. 1. 로마 제국의 ‘지배욕(libido dominandi)’으로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붕괴되는 굉음을 들었던 5세기 초엽 한 종교인의 혜안이 지구상의 인류가 3천년기를 갓 시작한 시점에서 인류가 ‘사랑의 문명’을 지향하는 정치적 의지(政治的 意志)에 어떤 길잡이가 되어줄까? 적어도 아우구스티누스가 관찰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140억 광년의 폭을 가진 우주를 단일한 평면에 조감(鳥瞰)할 수 있고, 심지어 절대자요 무한자라는 ‘신을 포괄할(capax dei)’ 정도의 가용성(可容性)을 지닌다. 만일 유신론자로서 신과 인간이 합작하는 역사의 두 주역이라고, ‘인류사는 곧 구세사(救世史)’라는 낙관적 교설에 수긍한다면, 창조주가 창조계에 구현하려는 이상, 곧 인류가 지구상에 존속하면서 만인(萬人, omnes homines)과 전인(全人, totus homo)의 행복(幸福)을 성취하는 일을 주동하는 일은 결국 인류의 집단적 결단에 맡겨진다.

0. 2. 시간(時間)이라는 것이 인간의 의식(意識) 속에 존재하나 사물의 한 차원임을 맨 처음 구명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대로, 인간이 의식하는 시간은 미래로부터 현재로 예단(豫斷)되고 과거로부터 현재로 기억(記憶)되면서 결정(結晶)된다. 그런데 엄밀히 실존하는 것은 현재의 순간뿐이다. 물리적으로는 한 찰라(札剌)이면서도 인간의 의식 속에서는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구나!”라고 외친 채 그것을 정지시키고서 진지한 숙고와 책임 있는 결단을 감행할 수 있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원(永遠)’을 정의하여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고 전체(全體)로서 현전(現前)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인간의 의식은 무한자를 포괄할 수 있듯이(capax dei), 영원마저 포괄하여(capax aeternitatis)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현 순간에 수렴할 능력이 있다. 찰나(刹那)에 영겁(永劫)이 함축되는 ‘지금’이라는 그 시점을 아우구스티누스는 nunc stans, ‘일순 정지한 (영원한) 지금’이라고 불렀다. “과거에 존재한 사물은 [여기에] 속하지 않으며 미래에 존재할 것도 [여기에] 속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 존재하는 것만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영원(永遠)이라는 사실 때문에, 시간의 변화가 일체 없다.”(『삼위일체론』, 12, 14, 23)

0. 3. 유대인으로 세계 대전과 나치 정권을 경험하고서 독일 국민의 히틀러 선택과 러시아가 결집한 스탈린의 현실 사회주의에는 ‘도덕적 인간들이 비도덕적 사회’를 선택하는 집단적 이기심이 작동함을 간파하였고, 인류가 그러한 세기적 우행을 반복하지 않는 대안으로 1700년 전의 인물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서 ‘사회적 사랑(amor socialis)’을 발굴 제창한 인물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이다.

0. 4. 아렌트가 ‘서구 사상에서 최초로 인간의 의지(意志)를 진지하게 사유한 철학자’로 간주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마다 구체적 윤리 결단을 앞두고 velle와 nolle(I-will I-nill) 사이에서 망설이고 결국은 ‘자기가 사랑하는 바’가 중심(重心)이 되어(amor meus pondus meum) 그 추가 이끄는 대로 결단을 내리는(eo feror quo feror) 심리가 정치사회적 차원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함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행사하여 탄생시키는 그 “시작이 존재하기 위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명제로 매듭을 짓는다. 지상에서 인구가 늘어나고 역사가 흐르고 세기가 바뀔 때마다 인간들이 영도자(persona collectiva)라는 집단의지(集團意志)를 내세워 선택과 결단을 내릴 적마다 “전에 한 번도 창조되지 않았던 것이 창조될 수 있다(creari potuisse quod numquam antea creatum esset)”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지상에서 그런 일들이 “전에 한 번 만들어졌을 뿐더러 한 번도 중지되지 않고 만들어지고 있다면, [새로운 세기적 결단으로] 무엇이 새로 창조된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다. 어떻든 어떤 시작이 없어서는 안 된다(sine aliquo non posset initio). [따라서 이 시점에서도] 그 이전에 결코 존재할 수는 없었던 시작, 그 시작이 존재하기 위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initium ut esset, creatus est homo)!”(『신국론』, 12, 21, 4)라고 외쳤다. 아우구스티누스가 17세기의 거리를 건너 우리 귀에 들려줄 말은 오직 한마디다. “그대는 단 한 가지 짤막한 계명을 받았습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dilige, et quod vis 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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