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도행전, 고린도 전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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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도행전, 고린도 전후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1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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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21강>_ 김회권 숭실대 교수의 「<성경> 사도행전, 고린도 전후서」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4. 서양 고전과 그 역사적 의미 – 기독교’ 제 21강 김회권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의 강연 중 서론과 결론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김회권 교수는 “구약의 특수한 민족 구원사”가 어떻게 “보편적인 세계 만민 구원사로 승화”되는지 「사도행전」과 「고린도 전후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요컨대 「사도행전」의 “중심 플롯은 폭력적 통치 권력의 화신인 로마와 연약함의 화신인 나사렛 예수와의 대결”이며 「고린도 전후서」의 “핵심 주제는 지혜롭고 강한 고린도인들을 구원하는 연약한 그리스도,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기로 결단한 사도 바울”의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를 통해 성경이 그레코-로만(Greco-Roman) 문명의 “힘 숭배, 자아도취적인 포만 문화에 도전”하여 절대자 앞에 “자기 권리와 자기 정당성, 자기 권능을 억제하고 유보하며 부인하기까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케 하는 대항 담론으로 자리매김되었다고 말한다.

▲ 지난 9월 26일, 김회권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2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 지난 9월 26일, 김회권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2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성경이란 어떤 책인가?

신구약 성경 66권은 긴 시간에 걸쳐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일단의 한정된 소수 독자층을 위해 저작된 책들이다. 그것들은 개별적으로 읽혀오다가, 시간이 갈수록 독자층을 넓혀왔다. 때로는 한 덩어리의 집성물(모세오경 등)로, 때로는 낱권의 책으로 읽혔다. 이렇게 여러 지역에서 널리 읽혀오던 책들을 후대 독자들의 대표자들이 ‘보편적으로 규범적 권위를 갖는 책들’만을 뽑아 ‘정경’이라고 부르며 후세대에게 전승했다. 지금 한 권으로 편집되어 있는 성경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종교적 문헌 선집(anthology)이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진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존재를 해명하고 옹호하는 책이다. 천지 창조부터 이스라엘의 형성과 그것의 번영, 몰락, 그리고 회복 이야기를 다룬다. 구약성경은 대략 BC 18세기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주민들과 그들의 후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구약성서는 천지 창조 시점부터 BC 2세기 중반의 역사적 사건까지를 담고 있다: 원시 태초 역사(창세기[창] 1-11장), 이스라엘 조상들의 하나님 동행기(창 12-50장), 야곱 후손들의 이집트 이주와 출애굽(출애굽기),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광야 방황과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 이야기(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가나안 땅에 들어가 부족 연맹체로 존재하던 이스라엘이 국가를 세워 번성하다가 몰락해 앗수르-바벨론으로 유배당하는 이야기(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해 이스라엘의 구원사를 재건하는 귀환 포로들의 재활 복구 이야기(역대기 상하, 에스라-느헤미야), 다윗 왕가의 복원과 메시야[理想王]를 통한 하나님의 신원(伸冤)을 열망하는 시기(예언서, 시편, 욥기 등), 그리고 BC 2세기 중반의 그리스 셀류키드 왕조와 전쟁을 거친 민족주의적 경건파들이 ‘군사적 제왕’형 메시야 대망을 주도하는 시기(다니엘, 스가랴 9:13, 에스겔 38-39장, 마카베오 상하, 솔로몬의 시편 등 외경 및 위경). 이처럼 구약성서의 가장 늦은 시기에 저작된 책들은 이스라엘을 신원해줄 ‘투쟁적인 강력한 장군형 메시야’를 열망하는 신앙을 드러낸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가장 무기력하고 미약한 때였다. 구약성경 역사 1700년의 마지막 400년은 ‘국가’ 없이, 영토적 단일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중근동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던 시기였다. 이 시기 이스라엘 민족은, 근동,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았지만 ‘메시야 대망’이라는 신앙의 영토 안에서 묶인 상상의 공동체였다. 메시야 신앙에 의해 결속된 이산민 이스라엘의 지리적 분포는 사도행전 2장에서 잘 드러난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을 신앙의 영토에서 하나로 묶어주던 언약이자 미래에 등장할 국가의 헌법적 대요강이 구약성경이었다. 따라서 구약성경의 모든 책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래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여된 천부불가양(天賦不可讓)한 사명, ‘천하 만민에게 복이 되라’(창 12:1-3; 18:18-19; 22:17-18)는 사명을 성취할 아브라함의 후손, 즉 메시야를 기다리는 신앙으로 합류한다. 구약성경 시대의 마지막 400년 동안 세습 왕조, 상비군과 관료체제를 갖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은 없었으나,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고난의 역사를 신원해주고, 천하 만민 앞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택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율법 토라에 입각해 세계 만민을 다스릴 제사장 국가로 우뚝 세워줄 메시야에 대한 신앙으로 ‘하나됨’을 유지했다. 나사렛 예수를 바로 그 학수고대되던 아브라함의 후손, 즉 메시야라고 믿고 영접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긴 문서가 바로 신약성경이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시작된다. 고대 근동에서는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왕의 선정 계획을 알려 민심을 모으기 위해 ‘정의 집행 칙령(메샤룸[mesharum]; 수메르어로 nig.si.sa)’이라는 ‘복음’을 선포했다(이사야[사] 52:7). 국가에 세금을 못내 장기 채무자가 된 자들의 채무를 탕감했고, 수형자들에게는 사면과 석방의 은전을 베풀었으며, 빈민들에게 양식을 공급했다. 그 칙령은 나라의 신민들에게 ‘이 새로운 왕이 공평과 정의의 시대를 열겠구나’라는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복음’이었다. 나사렛 예수는 고대근동의 제왕 취임 기념 ‘복음’ 선포를 상기시키듯이, 나사렛 회당의 메시야 취임 설교에서 ‘복음’을 선포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눅] 4:18-19). 신약성경은 나사렛 예수의 탄생, 공생애,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기승전결 구조로 펼쳐간다. 복음서는 나사렛 예수의 공생애, 죽음, 부활을 다루고, 사도행전은 이스라엘에 국한된 예수의 언동, 가르침,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보편적인 세계 만민 구원 사건으로 해석한다. 사도 바울의 친서(親書)들은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죽음 감수와 부활의 의미를 구약성경의 제사 신학과 속죄 신학의 정치한 논리로 해석한다. 팔레스타인적 특수 사건에 불과한 이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죽음 사건을 온 세계 만민을 위한 구원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바울 서신들과 사도행전은, 당시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으나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역사적 문서였다.

사도행전의 핵심 메시지는, ‘로마 제국의 총독에 의해 처형된 이스라엘의 메시야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이 주(主, kyrios)와 그리스도(副王)로 승귀(昇貴)시켜 당신의 우편 보좌에 앉혀 세상을 대리 통치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이 메시지는 로마 제국의 도성 신학(civil theology)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로마 제국의 도성 신학은 로마 제국이 주신(主神)으로 섬기는 신(야누스, 주피터[제우스], 유노[헤라], 마르스[아레스], 사투르누스, 불카누스,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 다이아나[아르테미스], 비너스[아프로디테], 미네르바[아테나] 등)들과 최고의 신 주피터가 일치가결해서 로마 제국을 세계 패권자로 만들어 로마 제국의 세계 통치를 영속시킬 것이라고 믿는 신학이다. 로마의 도성 신학이 떠받드는 신들은 적어도 자기 관할 영역에서는 특별한 권능을 발휘하며 로마 제국의 통치를 돕지만 로마 제국 시민들에게 어떤 정치적 미덕과 윤리적 의무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로마 제국은 로마의 주신(主神)들을 섬기고 경배하는 데 엄청난 정력을 쏟았던 ‘경건한 국가’였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자기 파괴적 해체의 길로 일주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는 국가종교 장관직을 두고 ‘신들에 대한 경건’을 유지하려고 했다. 국가종교의 예배 담당 장관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대제사장])라고 불렸으며 그것은 로마의 집정관에 맞먹는 정치적 고위직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폰티펙스 막시무스(BC 63년) 출신이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제국 시대에 접어든 이후 로마 황제(좀 더 후대에는 교황을 지칭)의 공식 명칭이 되었다. 로마 제국은 신들의 옹위와 후견 아래, 신들을 섬기는 대제사장이 황제를 겸한 정교일치적 국가종교의 나라였다. 사도행전은 이런 신들이 옹위하는 로마 제국에 맞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세계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운다. 이제 막 안정적 기틀을 마련한 로마 제국의 심장부와 변경에 돌진해, 로마의 국가종교가 모시는 신들에 대한 우상 숭배를 버리고 유일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돌이켜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사도행전은 시종일관 로마 총독에게 십자가 처형을 당한 유대인의 메시야 예수가 개인의 마음부터 다스려 사회까지 통치하는 왕임을 선포한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 보좌 착석과 성령의 강습(强襲)으로 구약의 특수한 민족 구원사가 이제 보편적인 세계 만민 구원사로 승화된다.

2. 사도행전과 고린도 전후서의 중심 주장

구약 39권의 모든 신명(神命), 신탁과 미래 예언, 그리고 기도와 탄원들은 나사렛 예수의 언동, 몸짓, 그리고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합류한다. 나사렛 예수의 언동, 열망,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 감수와 부활 주장은 구약 39권이 없이는 석명(釋明)될 수 없는 암호들이다. 이 암호를 구약 39권의 빛 아래서 해독한 인물이 사도 바울이다. 사도행전은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이 예수를 통해 어떻게 세계 만민의 복이 되는지 그 과정을 다룬다. 세계 만민이 받을 복은 야웨의 하나님 통치, 즉 하나님의 총회(에클레시아)에 초청받는 행복이다. 이 행복의 절정은 하나님이 마련한 종말의 대잔치에 참여해, 세계 만민의 다양성과 상호 간에 누적된 적의를 용해시키는 만민 평화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다(사 25:6). 타자와의 차별을 통한 정체성 과시라는 베일을 벗고 타자와의 교제에 최적화된 심성과 얼굴로 서로 간에 쌓였던 적의를 해소하는 종말의 대향연이다(사 25:7-8). 신약성경은 하나님이 오래전에 구약 시대 내내 준비했던 극상품 포도주와 온갖 기름진 음식이 마련된 하나님 나라 대잔치에 열방들을 초청하고 영접하는 복음이다. 신약은 창세기부터 시작된 대하드라마의 종결부라는 말이다. 신약성경의 모든 구절들은 창세기부터 시작된 구약성경의 서사에 근거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1700년 동안 계속된 언약사의 계주를 완주하는 자들의 책이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에 대한 인용의 사슬로 교직되어 있으며, 구약을 전제하고, 그것에 기반하며 그것을 해석하고 암시하며 성취하는 해석학의 텍스트이다. 결국 신약성경 27권은 구약성경에서 약 1700년간 전개된 이스라엘의 파란만장한 역사의 의미를 보편적인 세계사 속에서 해석한다. 1700년간 이스라엘에 일어난 민족 구원사가 세계 만민을 위한 구원사의 서곡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세계 구원 서사의 내적 논리를 모르면 신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처럼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이런 특수한 이스라엘 민족 구원 서사를 상속받아 이야기를 이어가는 집단 창작의 종결부를 맡은 인물들이다. 그들의 사명은 고대의 한 특수한 민족의 구원사가 어떻게 온 세계 만민의 구원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바로 사도들이며, 그들은 한 특수한 민족의 죄와 벌, 구원, 재활의 서사를 세계 만민의 죄와 벌, 구원과 재활의 서사로 해석하는 해석자들이다. 구약에서 숙성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세계 만민의 마음에 납득시키는 사도들의 활동이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베드로와 열 한 사도(1-8장)와 사도 바울(9-28장)이다. 사도 바울은 약 25년 동안(39~64년) 아시아와 유럽에 여덟 군데의 가정 교회(데살로니가, 빌립보, 고린도, 에베소, 그레데, 골로새-라오디게아, 갈라디아, 로마)를 개척했다. 사도행전과 사도 바울은 어떤 점에서 나사렛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세계 만민을 위한 구원이 되는지를 해명한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길이 바울이 전한 인류 구원의 길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로마서[롬] 6:3-4). 나의 자아, 심지어 생육하고 번성하려는 나의 원초적 자아 확장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아 승화시켜서 타인의 행복 공간을 열어주는 삶이 바로 세계 만민에게 선사할 구원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줄 구원은 ‘나의 과잉 욕망과 팽창하는 자아성을 약화시켜 타인을 받아들이고 환대할 타자 수용의 공간을 만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 부담스러운 자아 약화, 자아 승화를 도와주는 영이 예수가 자신에게 귀의한 자들에게 보내주는 성령이다. 사도행전은 자아 팽창적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유대인들이 이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약화시키고 승화시켜 이방인들을 영생의 식탁에 초청하는 활동들의 일지이다.

사도행전의 바울의 선교 활동은 이중 노선을 취한다.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을 상대로 ‘나사렛 예수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종말의 이스라엘 회복자이며 구원자인 메시야’(그리스도), 즉 ‘천하 만민에게 복이 될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논증하는 데 치중했고, 회당 밖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는 다신교적 우상 숭배를 버리고 살아 있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돌아오라는 회개 메시지와 임박한 종말 심판을 강조했다. 사도 바울의 선교지 중 가장 특징적인 사역지가 고린도였다. 그 유명한 지혜의 신 아폴로와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의 도시였다. 여기서 1년 6개월 이상 체류하며 바울은 헬레니즘 문명의 보루인 고린도에서 ‘십자가에 달린 주 예수 그리스도’, 즉 ‘연약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약한 그리스도’(고린도 후서[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를 증거했다. 십자가에 달린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의 하나님 명령을 압축적으로 체현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지극히 연약하고 온유하고 무력해진 인격의 화신이다. 이웃은 타자이며 원수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타자이다. 인간은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을 위해서는 자기 정체성, 자기 주장, 자기 확증적 정당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 거의 죽은 것처럼 약화시킬 때에만이 타자 수용적인 영성이 체현된다.

예수와 바울 둘 다 구약성경의 토라와 언약적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계명이 ‘타자에게 복이 되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하며’,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길’임을 선포했다. 비종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나의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나는 비로소 타자, 이웃에게 복이 된다’는 원리라는 것이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구약의 신명(神命)이 나사렛 예수에게 와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극한적 자기 부인의 신명(神命)으로 발전되고 승화된다. 예수의 이웃 사랑은 원수 사랑으로 진전되었다. 예수는 ‘원수’를 멸절 대상이 아니라 ‘사랑’ 대상으로 삼는 데서 ‘인류 구원’이 시작된다는 것을 체현했다.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이웃 사랑’의 모본임을 넘어 ‘원수 사랑’의 범례가 된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병들에 대해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고, 십자가 처형 집행 관리인 로마의 백부장은 ‘그는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마가복음[막] 15:39).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한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원형이라는 것이다(롬 5:12-19; 8:29). 하나님은 원수까지 포함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목숨 바쳐 하나님의 신명(神命)에 순종한 예수가 만민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였다. 나사렛 예수의 길에서 인간은 마침내 자기 파괴적이며 문명 파괴적인 이웃 살상, 동족 살상, 원수 살상의 도그마에서 해방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약 읽기 독법(讀法)은, 이처럼 구약성경을 이스라엘의 민족적 영화화를 위해 읽는 자기 복무적 독법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읽기였다. 바울이 바로 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약 독법을 상속해 아브라함의 후손인 나사렛 예수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어떤 점에서 세계 만민의 복으로 화하는지를 증거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자기 영화화를 정당화하는, 자기 복무적 독소 조항으로 읽힐 수 있는 모든 성경 구절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창조적으로 해체하여 재해석한다. 그 결과, 구약은 세계 만민에게 복이 되기 위해 선민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의 공동체적인 연단과 성장의 이야기로 다시 읽혔다. 사도행전은 바로 나사렛 예수가 세계 만민에게 복이 된 아브라함의 그 후손임을 강조한다(창 18:18-19; 22:17-18). 사도행전과 고린도 전후서는, 폭력적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주피터(제우스)의 대리자가 되어 세계 만민의 주가 된 로마 제국 대(對) 로마 제국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죽고 3일 만에 부활했다고 믿어지는 나사렛 예수의 대결을 그린다. 사도행전의 중심 플롯은 폭력적 통치 권력의 화신인 로마와 연약함의 화신인 나사렛 예수와의 대결이다. 고린도 전후서의 핵심 주제는 지혜롭고 강한 고린도인들을 구원하는 연약한 그리스도,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기로 결단한 사도 바울, 즉 십자가에 못 박힌 사도 바울의 이야기이다. 사도행전과 고린도 전후서의 그리스도는,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연약해져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진 나사렛 예수이다. 그의 십자가 죽음 감수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궁극 순종이며, 그것이야말로 나사렛 예수의 본질이다(빌립보서[빌] 2:6-11). 이처럼 사도행전과 고린도 전후서는 하나님 앞에 자기 권리와 자기 정당성, 자기 권능을 억제하고 유보하며 부인하기까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나사렛 예수가 세계의 주와 그리스도이다는 진리를 선포한다.

8. 결론

인간의 마음은 폭력적 통치에는 반발한다. 인간의 마음 가장 은밀한 지성소 양심은 가장 연약하고 겸손한 왕만이 다스릴 수 있는 영역이다. 인간의 마음, 양심을 다스리는 자만이 참된 왕이다. 인간의 마음을 통치하려면 약하고 겸손한 왕이어야 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자신을 복속시켰기 때문에, 즉 그만큼 자신을 감추고 부인하였기 때문에, 겸손하고 연약한 왕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을 비워 종이 된 왕 예수는 이상왕(메시야)의 관점에서 인간 왕들(지도자)의 통치 행위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예수는 인간 왕에게 위임된 지도력이 필연적으로 지배력(권력 남용과 권력 강제)으로 변질되는 점을 직시한다. 예수 당시의 세계는 로마 제국의 가이사(Caesar)의 권력(공포, 권력, 폭압) 강제와 권력 남용 아래, 이스라엘은 헤롯 가문과 로마 총독 빌라도의 권력 강제와 권력 남용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의 12제자들도 예루살렘에 영광 중에 인자의 나라(메시야의 나라)가 임하면, 왕인 예수의 옆자리에, 즉 큰 자리에 앉으려고 각축했다. 그런 제자들을 불러 놓고, 예수는 인간의 양심을 다스리는 왕의 도를 가르친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디아노코스)가 되고,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둘로스)이 되어야 하리라. …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2-45).

여기서 가장 주목할 만한 표현은 예수가 당시의 로마 제국과 헤롯 가문의 통치 본질을 권력 강제적 통치(카타큐리오)와 권력 남용(카테엑수씨아조)이라고 정의하는 장면이다. 41절의 “소위 이방인의 집권자들”이라는 표현은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다. 원전의 문장을 직역하면 이렇다: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호이 도쿤테스 아르케인)”. 예수는 권력 강제와 임의 주관(권력 남용)을 통하여 지배하는 사람들은 외견상 다스리는 것처럼 보일 뿐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지는 못하며, 오히려 모든 사람을 섬기고 모든 사람들의 노예가 된 사람만이 으뜸이 되고 다스릴 수가 있다고 말한다. 빌립보서 2:6-11은 이 원리를 보여준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예수가 죽은 자, 땅에 있는 자, 하늘의 천사,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에게 반역한 천사들에게까지 “주(主)” 고백을 받고 다스리는 통치 대권을 얻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의 길은 자발적 무력화, 자발적 자기 격하, 즉 자기 비움 케노시스의 길이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를 모든 사람의 주로 높여주었고 그에게 사죄 대권을 부여했다. 예수의 사죄 대권은 인간 마음의 짐을 벗겨주는 자유케 하는 권능이다. 자유케 한 목적은 다스림이다. 예수의 왕국은 마음의 왕국, 양심의 나라이다. 예수가 왕으로 통치하는 이 영적인 왕국에 속한 자의 양심에서는 복종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강력한 로마 제국이 무(無)로 전락한다. 폭력으로 무장된 제국은 손과 발의 복종은 강제할지 몰라도 결단코 양심의 복종을 얻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 세계 속에서는 로마인이 갈릴리인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다—이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다른 세계, 즉 영적인 세계에서는 저주받은 로마는 멸망하고 십자가는 구원의 보증이 된다—이것이 ‘하나님의 의지’였다.”라고 말한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통찰은 적확하다.

사도행전은 사죄 대권을 가진 이 나사렛 예수에게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회개’라고 말한다. 이전의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이 과정에서 느끼는 양심의 불안과 떨림만이 인간의 양심을 예수에게로 귀의하게 한다. 인간의 마음, 양심은 사유 재산이 아니다. 내 몸이 내게 속하는 만큼 내 마음과 양심은 내게 배타적으로 속하지 않는다. 마음은 공론장이다. 진리가 모든 거짓을 진정시키기 전까지 온갖 말들과 사상들이 백가쟁명적 다툼을 벌인다. 그래서 마음은 내 통제 밖의 상념과 상상에 좌우된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 자아가 행한 행위와 품은 생각들을 법정에 세워 단죄하고 다그치고 후회의 탄식을 쏟게 만드는 양심 법정이 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롬 2:14-16).

양심은 자아가 행한 모든 행동, 우리 자아를 스쳐간 생각들을 다 보고 평가하고 검열하는 검열관이다. 이 양심의 작동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은 예수만이 다스릴 수 있다는 믿음의 가장 큰 증거일 것이다. 예수는 인간의 양심을 다스리는 유일한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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