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 얽힌 이야기: 畝俱理(무쿠리) vs 뵈클리(bökli)
상태바
고구려에 얽힌 이야기: 畝俱理(무쿠리) vs 뵈클리(bökli)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11.15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30)_畝俱理(무쿠리) vs 뵈클리(bökli)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숫자는 3일 것이다. 삼신할매, 삼세번, 세박자, 삼시세끼, 삼각지, 삼족오, 삼삼칠 박수, 삼거리, 삼발이, 셋째 딸 등의 어휘가 다 행운의 숫자 3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 한편 漢族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8이며, 기피하는 숫자는 죽을 死와 음이 같은 四이다. 중국인들이 숫자 8을 좋아하는 이유는 8에는 동전을 상징하는 동그라미가 둘이나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화번호나 자동차 플레이트 넘버가 8888 정도 되면 현금으로의 치환 가치가 엄청나다.
 
이런 것들은 민속학이나 문화사 등에서 다룰 내용이고, 지금 우리나라의 영어 명칭이 Korea라는 점은 사학과 언어학의 관심 분야가 될 것이다. Korea는 高麗라는 나라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 동남아 국가에서는 우리 한국인을 카올리(caoli)라고 부르며 중앙아시아, 러시아 사람들은 카레이스키(Kareisky)라고 부른다. 카올리와 카레이스키 둘 다 고려와 고려스키의 현지 발음이다.
 
두 용어 다 고려라는 말의 변이형(variants)이다. Corée라는 프랑스 명칭도, Corea라는 스페인어 명칭도 다 고려의 변이형이다. 국호 외에도 나라 이름 '고려'는 현대의 한국과 한국인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고려인, 고려대학교, 고려항공등 한국의 많은 분야에 쓰이고 있다. 물론 구소련 연해주 일대에 살다가 1938년 느닷없는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낯설고 물 설은 이민족의 땅 중앙아시아에 유기되다시피 해 그곳에서 힘겨운 삶의 뿌리를 내린 우리 동포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스스로를 고려인이라 부른다. 

『북사(北史)』에 보면, 고구려인들은 모두 머리에 고깔[弁]과 같은 형태의 절풍을 썼다고 한다. 사인(士人)들이 쓰는 것은 2개의 새깃을 꽂고, 귀인이 쓰는 것은 붉은 비단[紫羅]으로 만들어 금은장식을 하여 소골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충주 고구려 비문에 따르면 휘(諱)가 담덕인 광개토대왕의 아들 거연(巨連) 장수왕(394~491)이 국호를 고구려에서 고려로 축약 개칭했다. 그리고 그 이후 더 이상 공식적으로 고구려라는 국명은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듯 이백의 시 중에는 <고구려>라는 시제 하에 쓰여진 작품이 있다.
 

                                高句麗 (고구려)
                ​                                               李白 (이백)​

​金花折風帽 (금화절풍모)    금빛 날개 화려한 절풍 모자 쓰고
​白馬小遲回 (백마소지회)    흰말 타고 한가로이 거닐고 있네
翩翩舞廣袖 (편편무광수)    넓은 소매 자락 춤을 추듯 나부끼는 모습이
​似鳥海東來 (사조해동래)    해동에서 금방 날아 온 새 같구나


이백은 701년에 태어난 인물이다. 그의 고향은 오늘날의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켁에서 멀지 않은 악베심으로 추정된다. 악베심은 중국사서에 쇄엽성으로 기록된 곳이다.  마땅히 고구려가 아닌 고려라는 명칭을 사용했어야하는데 시제로 구명인 고구려를 쓴 까닭은 무엇일까? 오늘날의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 자치주 내 쿠차 지역 출신의 승려 리언(利言) 혹은 예언(禮言)이 쓴 『梵語雜名』이라는 책에도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8세기 중반의 저작이다.
 
진짜 흥미로운 것은 고려에 대한 범어 표기다. 당시 인도인들은 해동 고구려를 무쿠리라 불렀다. 리언이 범어잡명을 편찬할 당시는 8세기 중반 경으로 이때는 이미 고구려가 멸망하여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터였다. 그리고 후삼국시대를 거쳐 탄생한 왕씨의 나라 고려는 아직 태동할 준비도 갖추어지지도 않았다. 따라서 『범어잡명』 속의 고려는 주몽이 세운 고구려를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어떻게 하여 668년에 패망한 국가의 이름이 여전히 국가(또는 도시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페르시아, 돌궐, 계빈, 마가다국, 티베트, 호탄, 오장국, 곤륜국 등과 함께 병기될 수 있는 가다.
 
둘째, 고려를 예맥, 부여처럼 고구려와 관련이 있는 이름으로 적지 않고 무쿠리라는 얼핏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명칭으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한편 몽골 초원 한복판 오르혼 계곡에 세워져있는 돌궐비문에는 뵈클리로 기록되어있다.
 

▲ 몽골 공화국 오르혼 강변 호쇼촤이담 소재의 퀼테긴 돌궐비문. 한 면은 돌궐문자로, 다른 한 면은 한자로 새겨져 있다.
▲ 몽골 공화국 오르혼 강변 호쇼촤이담 소재의 퀼테긴 돌궐비문. 한 면은 돌궐문자로, 다른 한 면은 한자로 새겨져 있다.

내용상 범어잡명의 무쿠리와 돌궐비문의 뵈클리가 지시하는 대상은 고구려다. 고구려의 기층민중은 貊族이었다. 따라서 외부에서는 고구려를 맥국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북위를 탁발족의 나라라는 뜻의 타부가치(순록치기)로 지칭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한자어 ‘맥(貊)’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광동방언에서는 mak 또는 maak으로, 민난방언에서는 bek로 실현된다. 따라서 동일한 한자어 맥국을 출신지에 따라 무쿠리로, 뵈클리로 다르게 읽고 전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돌궐비문에 보이는 돌궐족의 관칭호(官稱號) 부이룩(buyruq)을 한자어로 매록(梅祿), 밀록(密祿), 미록(媚祿)으로 표기하는가 하면 배록(杯祿)으로도 표기하였다.          

고구려는 『삼국사기』 기록으로는 668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元史(원사)』에 백제가 원나라 시대까지 존속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는 것처럼 고구려도 서역 어느 곳에선가 국가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을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 얼핏 서로 달라 보이는 명칭이 실제로는 동일 대상의 이표기임을 이해해야만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