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롤리(Maurizio Viroli)의 공화주의적 애국주의…‘나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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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롤리(Maurizio Viroli)의 공화주의적 애국주의…‘나라 사랑’
  • 박의경 전남대·정치사상
  • 승인 2020.1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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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나라 사랑을 말하다: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마우리지오 비롤리 지음, 박의경 옮김,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309쪽, 2020.09)

『나라 사랑을 말하다 For Love of Country』에서 비롤리(Maurizio Viroli)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는 분명히 다른 개념임에도 오랫동안 동의어로 잘못 사용되어 왔음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시작한다: “공화주의적 애국주의의 적이 참주정, 전제정, 억압과 타락이라면, 민족주의의 적은 문화적 타락, 이질성, 인종적 불순과 사회적, 정치적, 지적인 불화이다.” 그의 출발점은 ‘나라’, ‘조국’이고, 그 ‘조국’으로부터 ‘나라 사랑’ ‘애국심’ 개념과 나아가서는 공화주의 개념까지 이끌어 내고 있다. 그에게 조국은 단순히 ‘내가 태어난 땅’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 나에게 자유와 행복을 주는 곳’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곧 공화주의로 이어진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주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조국은 자유로운 삶의 대명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이익을 지향하는 법이 없는 곳, 공동의 이익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부가 없는 곳에 조국은 없다”는 것이 비롤리의 설명이다. 비롤리의 공화주의적 애국주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사회 공통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고, 각 구성원의 자유를 사랑하기에, 법과 제도를 통해 잘 정비된 상태를 의미하는 ‘나라 사랑’인 것이다.

즉, 자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고대로부터의 ‘나라 사랑’에 근거한 공화주의적 애국주의는 근대 이후 국가 중심의 대결구도가 강력하게 자리 잡으면서 국가를 보위하고 방어하는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민족주의로 전환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애국심의 본질인 ‘자유에 대한 사랑,’ ‘법과 제도에 대한 사랑,’ ‘공동의 이익에 대한 추구’ 등이 사라져 갔다는 것이 비롤리의 분석이다.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요소가 상실된 민족주의는 자유로운 공동체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만의 이익’이라는 배타성만으로 무장하게 되면서 타인과 타 집단에 대한 공격성까지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롤리는 공화주의가 민족주의의 독성을 해독하는 해독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과 자유에 대한 사랑,’ ‘공동의 이익’을 생각하는 공화주의에 기원을 둔 개방적 형태의 애국주의가 나만을, 내 것만을 생각하는 배타적 속성을 드러내는 파시즘과 동행하는 민족주의로 이행하게 된 상황에서, 21세기에 특히 북한이라는 대상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 공화주의와 민족주의는 사실상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이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우리가 그러한 역설적인 상황에 서 있기에, 비롤리의 논증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중적 전환이 드러나기도 한다.

누구도 통일을 대한민국의 목표로 설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이를 부인하지도 않는다. 북한도 통일을 자신들의 최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한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민족주의 감성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민족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서 그 구성원이 행복해야 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볼 수만 있다면, 사상적 통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즉, 공화주의적 체제에 대한 일치가 민족주의에 적대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민족주의가 가지는 배타성이나 공격성을 완화시키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백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바로 비롤리의 ‘민족주의 없는 애국주의(patriotism without nationalism)’에서 잘 드러난다.

사회과학 없는 자연과학은 폭력이고, 자연과학 없는 사회과학은 맹목이듯이, 지식 없는 미덕은 맹목적 열정이고, 미덕 없는 지식은 폭력적 사회악에 불과하다. 첨단 과학기술이 도덕이나 윤리의식으로부터 멀어질 때 발생하는 사례는 범죄에 사용되는 컴퓨터 해킹이나 최근의 n번 방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회의 건전한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미덕이란 지식과 진리의 합일로 자리 잡을 수 있는바, 비롤리의 애국자는 “진리와 미덕을 키워야 하고, 자유를 열정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따라서 공화주의적 애국주의가 애국심으로 타국을 공격하기도 하고, 전쟁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지배하기 위해 공격하고 자신의 생명을 걸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20세기 이후 국가중심의 배타적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민족주의와는 그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나라 사랑을 말하다』의 마지막 문단에서 저자는 좋은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시민의 미덕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시민적 미덕에 보다 강력한 추진력은 아마도 필요성일 것이다; 부패와 억압이 참을 수 없게 될 때, 시민은 때로 공적 의무감을 되살린다. 공공의 삶이 극도로 쇠퇴해가는 시기에, 민족적 또는 애국적 존엄성이나 명예가 미덕을 지켜내기도 한다”는 말속에서 현대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민주시민의 미덕이 연상된다.


박의경 전남대·정치사상

현재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사는 서양근대정치사상과 여성정치이고, 궁극적 지향점은 여성 정치사상의 정립과 민주주의의 사상적 완성이다. 저서로 『여성의 정치 사상』과 『현대정치의 위기와 비전』(공저), 『루소를 말하다』(공저), 『인권의 정치사상』(공저)이 있으며, 번역서로 『정치사상과 여성』, 『지하드 맥월드』, 『고백록』(역해)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다문화주의와 민족주의, 민주주의의 삼각구도」, 「한국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찰」, 「전쟁의 길과 평화의 나무」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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