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보는 다른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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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보는 다른 관점
  • 손경호 국방대학교·군사사(軍事史)
  • 승인 2020.1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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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군사사의 관점에서 본 펠로폰네소스 전쟁』 (손경호 지음, 푸른사상, 224쪽, 2020.09)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 494-479 BC.) 이후 성장한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이며 오랫동안 그리스 세계의 패자로 군림해 오던 스파르타 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비롯된 전쟁이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마라톤 전투(The Battle of Marathon, 490 BC)와 살라미스 해전(Salamis, 480 BC)에서 군사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리스 세계의 강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아테네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지배 영역을 넓혀갔으며 동맹국들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여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아테네 해군의 지배력은 이집트로부터 시칠리아 그리고 흑해에까지 미쳤다. 이에 비해 스파르타는 전통적인 패자로서 아테네의 부상으로 인해 그 비중이 약해지고 있었다. 스파르타가 그리스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배경은 특별한 공동체적 훈련을 통해 양성된 중장보병이 발휘하는 육상전력에 있었다. 이것이 스파르타로 하여금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지니게 하였고 동맹국들을 통제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 아테네와 달리 자유롭게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아울러 생산을 담당한 노예계급(Helot)이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내부의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어 쉽사리 동맹국들의 요청에 응해서 군사력을 운용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였다. 스파르타의 입장에서 볼 때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아니면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거북한 존재였다. 이 두 국가의 대결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최근 한국 사회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래함 엘리슨(Graham Allison)과 같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이해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제정치적인 시각, 특히 패권 경쟁 혹은 세력전 이론의 측면에서 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도가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많은 발표 논문과 세미나에서 이 전쟁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가진 ‘유명세’에 비해 정작 전쟁 그 자체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투키디데스가 전해준 전쟁보다는 국제정치적인 함의가 더욱 알려졌으며 냉전의 구조를 설명해주는 틀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투키디데스는 높은 수준의 담론만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전투와 유능한 지휘관들이 수행하였던 작전, 승리와 패배가 갈리는 전쟁을 이야기하였으며 그가 목격하고 들었던 처절한 인간의 본성을 전하고 싶어 했다. 아쉽게도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전쟁사로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얼굴이 존재한다.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무려 27년간 지속한 이 전쟁에는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으로 나뉜 그리스 세계의 대결,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경쟁과 그 사이에서 생존한 국가들의 다양한 외교술, 특히 끊임없이 그리스 세계의 정치에 개입하였던 페르시아의 황제들, 전쟁을 주도하였던 페리클레스(Pericles), 아르키다모스(Arkidamos)와 같은 걸출한 전쟁 지도자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술과 전략, 무기체계의 발달, 전쟁의 국면을 결정지은 우연과 마찰의 지배를 받는 크고 작은 전투들이 존재한다. 또한 이 전쟁은 두 걸출한 국가의 쇠퇴를 가져왔고 그 결과 테베가 잠시 군사적인 부흥을 경험하였고 궁극적으로는 마케도니아가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았다. 이 전쟁에는 국제정치적인 관점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인류가 기억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 고전기 그리스 시대 중장보병의 모습
▲ 고전기 그리스 시대 중장보병의 모습

이번에 본인은 그동안 투키디데스가 남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기록을 연구하며 발표하였던 여섯 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군사사적 측면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정리하였다. 이 책은 군사적인 관점에서 전쟁을 이해하고자 그동안 저자가 기울였던 노력의 산물이다. 각각의 논문에는 당시 전쟁을 대했던 그리스인들의 군사사상, 전쟁을 수행하고자 하였던 지도자들의 전략, 전투의 실상과 전투 대열에 참여하였던 전투원들의 역할과 한계, 전쟁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충돌(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쟁의 방향을 결정지은 시칠리아 원정의 전투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로 부상한 테베와 마케도니아의 군사혁신과 성장이 담겨 있다. 특별히 이 책은 페리클레스가 추구하였던 대전략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 내었고 우리 사회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1차 전쟁과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을 재구성하여 소개하였다.

한국 사회는 전쟁을 피상적으로 대한다. 전쟁을 총론적 관점에서 정리하고 곧장 정치적 영향과 교훈으로 옮겨가는 것이 학교의 강단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전쟁은 다양한 장면들로 이루어진 각론의 종합이다. 개중에는 치열한 장면도 있고 혹 지루하거나 때로는 돌발적인 장면도 있다. 문제는 전쟁의 전체적인 모습은 각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각론은 전략, 전술, 이를 배태한 특별한 제도와 문화를 지닌 정치적 공동체, 그리고 그 안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군사적 현실로 짜여있다. 실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인용하며 미·중 경쟁을 논한 글들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해를 반영한 진중한 주장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전쟁의 실상을 알지 못하기에 제시하는 주장도 피상적이며, 결과적으로 그 대안은 무용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군사적인 현실을 최대한 담아내고자 하였다. 아무쪼록 본인의 졸저가 한국 사회가 전쟁을 정치적인 담론이 아닌 군사적인 현실로 이해하는데 작으나마 이바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손경호 국방대학교·군사사(軍事史)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일본 방위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에서 국제관계 석사학위, 2008년 미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군사사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8년부터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과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6·25전쟁, 서양전쟁사, 전략사상사, 테러리즘과 대테러리즘 등을 강의하고 있다. 『동북아 국가들의 6·25전쟁 정책과 전략』 (2015), “The Establishment and the Role of the State-Joint Chiefs of Staff Meeting during the Korean War” War In History, Vol. 27, No. 2 (April 2020) 등 다수의 저서, 역서, 논문과 연구보고서를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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