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함께하는 것입니다.”…지휘대에서 이룬 ‘조용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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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함께하는 것입니다.”…지휘대에서 이룬 ‘조용한 혁명’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0.1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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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아바도 평전: 조용한 혁명가 | 볼프강 슈라이버 지음 | 이기숙 옮김 | 풍월당 | 368쪽

탈권위적 리더십으로 현대 음악사에 새로운 장을 연 음악가, 2014년 여든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음악계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 이 책은 아바도와 수십 년을 동행한 음악 평론가 볼프강 슈라이버가 아바도의 육성은 물론이거니와 그와 함께한 음악가들의 증언을 집성하여 아바도의 음악적 행보를 세심하고 다채롭게 그려낸 인간 아바도, 지휘자 아바도의 첫 평전이다.

연대기 형식을 취한 이 책은 밀라노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빈에서의 유학 생활을 거쳐 뉴욕과 런던, 시카고, 베를린 등을 오고 갔던 아바도의 지휘 여정을 담담한 필치로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그 덕분에 독자는 음악을 사랑한 소년이 어떻게 “우리 시대의 가장 품위 있고 영향력 있는 지휘자”(요아힘 카이저)가 되었는지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지휘자는 특이한 ‘연주자’다. 지휘자의 지휘봉은 실제로 소리를 내지 않지만 수십 개의 악기에서 소리를 끌어낸다. 기호에 불과한 음표들이 음악으로 현현하는 순간은 그야말로 ‘마법’과 같다. 그래서 지휘자는 소리의 ‘마술사’라고 불린다. 한편 연주자에게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그는 또한 권위있는 리더로도 비쳤다. 지휘대의 영웅으로 군림하는 지휘자상은 이렇게 탄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이런 전통적인 지휘자상에 넣을 수 없는 새로운 인물이었다.

▲ Claudio Abbado (1933-2014)
▲ Claudio Abbado (1933-2014)

아바도는 1933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서는 언제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아바도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실내악을 연주하며 자연스럽게 음악에 친밀감을 느꼈고 음악적 사고 능력을 길렀다. 볼프강 슈라이버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성장 환경과 아버지의 독특한 교육법이 훗날 거장이 될 아바도의 음악 신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서로의 음악을 주의 깊게 듣는 행위야말로 음악을 심도 있게 지각하는 방법”이라는 아버지의 지침은 아바도가 최고의 위치에 오른 뒤에도 마음속에 늘 자리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지휘자로서 음악이 주는 천상의 감동과 침묵이 주는 죽음 같은 허무 사이의 아찔한 낙차를 늘 경험했던 사람이다. 아바도가 평생 존경한다고 밝혔던 시인 횔덜린의 시에서도 그는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시인으로서 말보다 침묵을 끌어안고, 기교보다 진실의 무게를 앞세운 횔덜린에게 같은 예술가로서 경외를 느꼈을 것이다. 침묵을 듣는 것. 이것이 아바도가 생각한 올바른 연주의 핵심이었다. 리허설에서도 그는 단원들이 악기의 다양한 소리와 그 안에서 진동하는 소리의 관계를 꼼꼼하게 인지하고 분석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음악이 울리기 전과 울린 후에, 음악이 흐르는 중에, 그리고 음악이 사라진 뒤에 여운을 느끼며 정적에 귀 기울일 것…….

아바도는 연주하는 작품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도 작품 깊숙이 들어갔다. 매번 연주할 때마다, 늘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 “작품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휘자는 끝”이라는 신념은 자기 자신을 지독할 정도로 돌아보는 그의 성격에서 비롯했다. 또한 아바도는 압박 아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예기치 못한 외압이 들어올 때, 아바도는 그의 음악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고, 노력이 여의치 않다고 느끼면 아쉬움 없이 무대를 떠났다. 그는 자신의 천성에 맞게, 다시 말해 ‘자율’을 무기 삼아 경력을 이어나갔다. 아바도는 언제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그들의 음악이 자유롭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독려했고, 그 결과물을 취합해 음악을 만들어나갔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인간을 지배하지 않으며 음악을 숭배한 음악가’였다.

아바도에게 음악은 함께하는 즐거움을 뜻했으므로 음악을 만드는 과정 역시 그러해야 했다. 그는 악단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그 즐거움을 관객과 함께 나누기를 원했다. 무대는 지휘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연주자들에게 지시하는 대신 대화를 나눴고 그들 스스로 질문을 하게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연주자들은 그저 지휘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함께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이는 그의 음악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 창단과 교육 활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바도와 제자들은 허물없이 소통하며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이처럼 아바도는 지휘자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았고 카리스마적인 지휘자상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그에게 권위를 실어주었다. 자신을 앞세우지 않을 때 생겨나는 품위와 자기 삶과 신념을 일치시킬 때 오는 감동이 그들을 매혹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권위가 주는 편의를 내던졌으므로 그의 행보에는 정당성이 있었다. 아바도가 지휘대에서 이룬 ‘조용한 혁명’은 여전히 권위주의에 기대고 싶어 하는 우리의 낡은 감성에 깊은 교훈을 준다. 비록 과묵하고 결코 요란하지 않았지만, 그가 한 것은 ‘혁명’이었다. 음악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눈을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한 듣기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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