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교회 비판은 지금도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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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교회 비판은 지금도 유효한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1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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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 톨스토이 지음 | 홍창배 옮김 | 바다출판사 | 352쪽
 

레프 톨스토이. 우리는 그를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을 남긴, 19세기 말, 20세기 초가 낳은 위대한 작가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변혁을 꿈꾼 ‘혁명가’이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한 ‘사회사상가’이기도 했다. 또한 톨스토이는 귀족이자 대지주로서 자신이 가진 사회 경제적 기반과 자신이 실천하고자 하는 소박한 삶 사이에서 오는 모순적인 상황에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온 인물이기도 했다. 톨스토이가 남긴 다양한 주제의 산문들은 그의 이러한 고민과 성찰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는 인생과 철학은 물론 교육과 종교, 예술과 문화, 사회개혁 등 다양한 주제의 산문을 남겼는데, 공허한 주장이 아니라 그 철학과 사상을 몸소 실천하고자 몸부림친 ‘실천가’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1884년 발표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는 톨스토이의 종교 저술 작업의 사상적 근간이 되는 산문이다. 또한 톨스토이 후기 문학작품들을 해석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한 “정신적 대변환기 이후에 재정립한 기독교적 세계관ㆍ인간관”이 작품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50대에 들어선 톨스토이는 기독교 신앙,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믿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였지만, 그는 성서를 비롯한 여러 문헌들을 섭렵하며 그 가르침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이 글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내포하는, 원래의 뜻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편의와 특정한 목적에 따라 첨삭한 가르침이 아닌,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논증하며, 스스로 변화된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톨스토이는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떻게 내가 가장 단순명료하고, 의심할 바 없이 이해 가능하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향해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했는지, 어떻게 그것이 내 영혼을 변화시켰고 내게 평안과 행복을 주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6년 넘게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천착한 톨스토이는 이 글을 통해 오히려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교회권력과 사회제도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회의 가르침에서 서로 모순되는 몇몇 구절들만을 끄집어내, 평소 교회에서 이렇게 모순되는 구절들을 마음대로 직조해 교회권력과 국가권력, 사회 조직의 방패막으로 삼는 현실을 통탄한다.

톨스토이가 이 글에서 내내 강조하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라”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세워질 것이다. 나 혼자만 따른다고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반문하는 사람에게 톨스토이는 비록 혼자서 고군분투할지라도 그것은 “모든 이들과 또 나 자신을 위해서 가장 최선을 다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끝내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사람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금지’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수동적 금지가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 행동에 방점을 두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술 취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등의 율법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더 적극적인 마음과 행동, 즉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톨스토이는 “실은 세상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위험하고 괴로운 것”이라고 명토 박는다.

톨스토이는 글의 말미에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믿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로 여기에 나의 신앙이 있다.” 톨스토이는 아울러 “이 가르침이 쉽고 기쁘게 실천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며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나는 믿는다. 이 가르침이 온 인류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나를 필연적 사망에서 구원할 것을, 그리고 여기서 최고의 복을 줄 것을. 그래서 나는 이를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비록 적어도 두려움 따위는 없다.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현재 그러한 사람들이 많든 적든 간에, 어떠한 것에도 정복당하지 않을 바로 이 교회로 모든 사람이 합류할 것이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 그것이 가져다줄 구원, 이 모든 것을 톨스토이는 이미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평생 무신론자로 살다 오십이 넘어 기독교를 믿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년에 걸쳐 옛 히브리어로 된 성경과 유대교 율법, 각 언어로 번역된 성경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반전과 평화, 비폭력과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심지어 왜곡하는 교회와 국가, 지배층을 비판한다. 국민을 전쟁터의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릇되게 가르치고, 귀족과 대지주, 지배층을 위해 가난한 사람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당시 교회의 가르침을 톨스토이는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120여 년 전 톨스토이가 교회에 행한 날카로운 비판은 우리의 삶과 종교, 더 나아가 사회가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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