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의심”
상태바
“선택적 의심”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 승인 2020.11.08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홍 칼럼]_ 대학직설

“선택적 정의 아닌가?”를 묻는 질문에 검찰총장은 “선택적 의심 아닌가?”로 반문했다. “과거에는 나에 대해 안 그러지 않았느냐?”는 설명을 덧붙였다. 여러 언론이 ‘거침없다’라거나 ‘맞받아쳤다’고 환호했고, 대구(對句)로 운을 맞춘 수사법을 상기하는 호사가도 있었다.

하지만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의심’은 대등한 무게를 갖는 개념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의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로마 신화의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 ‘정의’의 어원)가 눈을 가리고 있음은 정의는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 선택적 정의는 정의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반면 세상의 모든 일을 의심할 수는 없는 까닭에 의심은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그중에는 이른바 ‘합리적 의심(reasonable suspicion)’도 있을 것이고 불특정한 의심도 있을 것이지만, 선택적 의심을 탓할 일은 아니다. 총장이 이것을 모르고 말했다면 생각이 부족한 것이고 알면서 말했다면 의도를 갖고 궤변을 동원한 것이다. 어느 쪽이거나 ‘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검찰’총장으로서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다.

더욱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검찰‘권력’을 행사하는 총장이라면 ‘선택적 정의 아닌가?’의 질문에 ‘선택적 의심 아닌가?’라고 반문할 일이 아니다. 설령 그 질문이 부당한 선택적 의심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심을 해소하는 것이 공적(公的) 권력 담당자의 책임 있는 자세이다. 사사로운 자리에서는 그런 비대칭적인 말장난이 통용될 수도 있겠지만, 국민을 대신하여 국회가 진행하는, 그리고 국민에게 공개된 ‘국정감사’에서 검찰을 대표하는 총장이 이런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국민은 안중에 없다’는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검찰 권력의 주인이 국민에게 신실할 의사보다는 검찰 ‘조직’의 위신을 지키고 결속을 독려하려는 의도의 표현이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어 한 종류만을 인간으로 대접한다는 우스갯소리는 오래된 것이지만, 적어도 알게 모르게 선민의식이나 우월의식을 내보이는 검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적 특권 의식이, ‘조폭’에 비유될 만큼 폐쇄적이고 하급자를 ‘부하’라고 부를 만큼 위계적인 조직에 스며듦으로써 검찰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국가기관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이전 사정의 상당 부분은 검찰을 통치 도구로 이용하면서 그 보상으로 막강한 위세와 권력을 보장해온 (신)군부 권위주의 정권들과 특히 이명박 • 박근혜 정권에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정권과 공생하며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도 얻었던 검찰이, 정권과 밀착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검찰개혁의 추진을 ‘검찰 장악’이라거나 ‘검찰 길들이기’라며 반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검찰 개혁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옳은 말이지만, 그와 함께, 아니 그보다 먼저 검찰 자체가 막강한 권력이라는 사실을 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국가에서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승인과 통제를 받지 않는 권력은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검찰 권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제안해야 그 주장은 진정성을 갖는다. 검찰 개혁의 요구에는 침묵하면서, 개혁의 추진에 ‘검찰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제도’로서 아직 정착하지 못한 개혁을 마치 구경꾼처럼 ‘실패했다’고 비웃는 것으로는, 검찰이 보편적 정의의 실현에는 뜻이 없이 조직의 특권 보호에 몰두하고 있다는 선택적 의심을 받더라도 변론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