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부끄러움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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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부끄러움은 없는 것인가
  • 이화형 경희대·국어국문학
  • 승인 2020.1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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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대가 지난다고 해서 진보되는 건 아닌가보다. 오히려 전에 들어보지 못한 갑질, 여성(남성)혐오, 아빠(엄마)찬스, 내로남불 등 반사회적인 용어들이 난무한다. 우리나라는 남편마저 ‘우리남편’으로 부르던 국가였는데, 이제 우리사회는 어디로 가는 걸까. 지성의 표상인 교수가 자녀를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로 편입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과목을 수강하게 하여 최고학점을 주는 사태를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장관 또는 국회의원 등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모습에는 한숨이 나온다. 왜들 그렇게 뻔뻔스러울까. 삶의 현실과 가장 가까운 정치 분야에서만이라도 우리가 얼마나 염치를 잃고 지내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政治正也)’이라고 공자는 말했다. 그런데 현실의 정치판은 온통 말 잔치인 것 같다. 옛 성현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하게 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인은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는 책까지 나와 있다. 정치를 꾀로 하고 말로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의 듣기 좋은 말의 유혹 속에 국민의 불신과 개탄이 깊어지고 있다. 덕이 아닌 힘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 경서에서 “덕으로 다스리는 것은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뭇별들이 저절로 북극성을 바라보고 도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다르지 않은 이치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내놓았던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는가. 요즘은 너무나 사적인 이념과 취향에 매몰되어 국민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용렬한 지도자들이 많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야심차게 출범한 역대 정권들에서 민심이 떠났던 이유 가운데는 기대했던 정치 민주화나 서민 경제의 활성화가 덧없이 사라진 실망이 크다. 집권을 한 후에는 권력자의 고향 사람과 모교 출신 숫자가 늘어 왔다. 정치부패와 불신을 예고하는 조짐이다. 세월이 흘러도 현상은 크게 변화되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위 공직자의 재산 공개와 자질 평가가 이루어지면 고위 인사들의 도덕성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인사 검증 실패 지적에는 침묵하고 의혹이 제기돼도 임명을 강행하고,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는 여전하며, 요직을 특정 지역에 편중된 ‘코드 인사’로 채우는 것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경실련은 국회의원들의 신고 재산이 국민의 5배가 넘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막대한 부동산 재산을 보유하면서 서민을 위한 성실한 의정활동이 가능할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당나라 「정관정요」에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능히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때로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수년 전 야당 대표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지금 이 나라 행정부 전체가 졸렬한 홍위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심의한 국무위원들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 많은 국무위원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통령 말에 ‘지당하십니다’라는 말만 해서야 그게 무슨 국무회의냐”고 개탄하였다.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않는 국무회의는 조선시대 어전회의만도 못하다고 쓴소리를 한 것이다.  

제나라 경공이 정치가 뭐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된다. 주어진 책임도 다하지 못하면서 욕심이나 내고 기웃거리는 모습이야말로 부질없을 뿐만 아니라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갈수록 자존감의 원천인 양심은 사라지고 마침내 염치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작은 이익에도 소신을 저버리고 눈치 보기에 급급한 태도에는 측은하기까지 하다. 특히 권력을 바라보는 소인배들의 아부성 발언, 비판의 기능을 잃은 언론의 작태 등 우리 사회의 지성집단에서 공적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쓰럽다.


이화형 경희대·국어국문학

경희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이며 중국 중앙민족대학 초빙교수, 우리문학회 회장, 한국시조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국문학에서 학문의 폭을 넓혀 한국문화 전반에 관한 연구를 해왔으며 한국문화시리즈 4권(『한국문화를 꿈꾸다』, 『한국문화를 논하다』, 『민중의 꿈』, 『민중의 현실』)을 비롯하여 50여 권의 저서가 있다. <문화일보> 주관 제1회 한국출판문화대상 특별상(2004)을 수상했다. 특히 전통 여성부터 현대 여성에 이르기까지의 여성사를 통합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꽃이라 부르지 마라』, 『여성, 역사 속의 주체적인 삶』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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